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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경, 대전 골령골 내 유해매장 5추정지에서 발견된 유해. 하지만 이 유해는 2015년 사라졌다.
 2007년 4월 경, 대전 골령골 내 유해매장 5추정지에서 발견된 유해. 하지만 이 유해는 2015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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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 민간인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암매장 추정지 일부가 통째로 사라졌다.

기자는 지난 23일 오후 민간인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대전 산내 골령골 현장(대전 동구 낭월동)을 찾았다.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감 사상범을 대상으로 대량 학살(1차 : 6월 28~30일 1400명, 2차 : 7월 3~5일 1800명, 3차 : 7월 6~17일 1700~3700명)이 벌어진 곳이다. 당시 희생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1, 2, 3 순으로 유해 매장 추정지를 차례로 둘러보다 두 눈을 의심했다. 대전산내희생자유족회에서 붙인 5번째 유해매장 추정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누군가 중장비를 이용해 유해매장지로 추정해온 경사진 산기슭을 밀어내고 평평한 농경지로 개간했다. 그곳에 농작물을 심어 놓았다. 해당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점으로 볼 때 불법공사로 짐작됐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맥이 풀려 다리도 휘청거렸다. 유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헤집어봤지만 허사였다.

골령골 내 5번째 매장 추정지(아래, 5추정지)는 2007년 취재과정에서 기자가 처음 유해를 확인한 곳이다. 2007년 4월 어느 날, 골령골 내 알려지지 않은 유해매장지를 찾기 위해 나섰다. 근처 마을에 사는 한 주민이 동행했다. 평생을 인근 마을에서 살아온 이 주민은 유해매장지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전해줬다. 기자를 직접 이끌고 다니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유해매장 추정지를 한 곳 한 곳 일일이 일러줬다. 당시 이 주민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유해매장 추정지는 모두 5곳이었다. 5추정지도 그중 하나였다.

2007년 새로 발견한 유해매장 추정지

농지로 개간돼 사라진 대전 산내 제 5 유해매장추정지
 농지로 개간돼 사라진 대전 산내 제 5 유해매장추정지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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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 골령골 내  5번째 유해매장 추정지(붉은 원안)
 대전 산내 골령골 내 5번째 유해매장 추정지(붉은 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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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민은 5추정지에 대해 애초 인근 계곡 옆에 매장돼 있던 유해를 수년 후 다른 사람들이 수습해 옮겨 놓은 것이라고 했다. 처음 있던 유해가 소달구지가 다니던 오솔길 옆에 있었는데 얕게 묻혀 드러나자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계곡 윗쪽 산 위로 옮겨 묻었다는 것이다. 해당 주민은 정확한 유해 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대략 10여 구에서 수십 구 정도로 추정했다. 옮겨 묻은 구덩이 크기는 3~4미터쯤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여러 날을 오가며 주변을 뒤졌지만 정확한 구덩이 위치는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기자는 주민이 일러준 부근에서 사람의 머리뼈를 발견했다. 낙엽 위에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두렵기보다는 반가웠다. 그리고 의아했다. 두개골이 놓인 땅바닥은 단단했다. 땅속에서 솟아오를 리도, 하늘에서 떨어져내릴 리도 만무했다. 주변을 살폈다. 4~5미터 위쪽 풀숲을 헤치자 농구공 크기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반지르르한 것으로 보아 너구리 크기의 동물이 빈번히 오가는 길목으로 보였다. 오가다 통행을 가로막는 두개골을 아래쪽으로 밀쳐낸 것으로 짐작됐다. 구멍 안으로 손을 넣어 확인해 보았다. 또 다른 유해가 드러났다. 유해 매장이 확인된 순간이었다.(관련기사 : 땅 속에 묻힌 진실 파헤친다)

또 다른 유해매장 추정지에서도...

산내 골령골에서 부친을 잃은 유가족(왼쪽)과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
 산내 골령골에서 부친을 잃은 유가족(왼쪽)과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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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7월, 정부기구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아래 진실화해위원회) 해당 주민이 증언한 소규모 유해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발굴을 시작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당시 2곳의 유해매장 추정지에서 모두 30여 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하지만 5추정지에 대한 유해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토지소유주와 연락이 되지 않아 토지사용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대신 골령골 곳곳에 있는 미발굴 '유해매장 추정지'에 현장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진실을 알리고 현장 훼손을 막으려는 응급조치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9년 2월, 현장 안내판 설치비와 관리비를 전액 지원하기로 하고 대전시를 통해 관할 대전 동구청에 의견을 물었다. 산내희생자유족회에서는 대전 동구청장을 직접 면담하고 현장훼손 방지를 위한 안내판 설치를 거듭 요청했다. 이 자리에 기자도 참석해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전 동구청은 지역주민들의 정서와 지가하락 등을 이유로 '현장안내판을 설치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대전 동구청은 이듬해인 2010년에도 안내판 설치를 또 외면했다. 물론 구청장의 뜻이었다. 그때 대전 동구청장이 지금의 새누리당 이장우 국회의원(대전 동구)이다. 당시 안내판 설치를 거부한 자치단체는 전국에서 대전 동구청이 유일하다. 골령골 현장 안내판 설치 예산은 희망하는 다른 자치단체에 배정됐다.(관련기사 : 진실 '안내'조차 외면하는 대전 동구청, 대전동구청, 집단희생지 안내판 설치 또 '외면')

기자 자신에게 화가 난다

대전 산내 골령골 내  5 유해매장추정지가 사라져 농지로 변했다.
 대전 산내 골령골 내 5 유해매장추정지가 사라져 농지로 변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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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터덜 산을 내려오는 길, 산 아래 제2 유해매장 추정지에서도 한 주민이 농사를 짓고 있다. 이곳에도 유해매장 추정지임을 알리는 현장안내문이나 경고문이 없다.

이 의원이 원망스러웠다. 당시 안내판만 설치했더라면 유해매장 추정지가 유실되는 허망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현택 현 대전 동구청장(새정치민주연합 소속)도 야속했다. 한 구청장은 올해 초 희생자 유가족들의 유해훼손 방지를 위한 안내판 설치 등 긴급조치를 요구했지만 "국가사무이고 구청장의 권한을 벗어나는 사안"이라며 거절했다. 대전 동구청은 지난해까지 15년째 희생자 위령제 참석과 추도사 요청마저 외면하고 있다.(관련기사 : 대전 동구청장 "민간인 희생자 문제는 국가 사무" "잊을 건 잊자".. 막무가내 행정의 '종결판')

지금은 기자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사비를 들여 불법으로라도 현장 안내판 하나 세워두지 않은 데 대해.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내점 산내 골령골, #유해매장 추정지, #유해발굴, #이장우 국회의원, #한현택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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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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