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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 최장기간의 한미합동 군사훈련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며, 대화 창구를 구축하고, 호혜적 교류협력을 심화한다.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며, 동북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발전을 추구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민생인프라를 구축해 북한에 복합농촌단지를 조성하며, 남북 간 보다 큰 규모의 경제협력을 하고, 북한 지하자원을 개발한다.

이상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2014년 3월 독일에서 제안한 '드레스덴 선언'의 내용이다. 듣자하니 참으로 좋다. 할 일도 많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남북관계가 상당히 진척될 듯하다. 그러나 기막히게도 이것은 빛나는 말잔치다. 실제로 실행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말로 지어올린 궁궐이다. 누가 국민을 언어에 놀아나게 만드나? 

박근혜 정부가 실제로 북에게 건네는 말은 이렇다. '핵을 먼저 포기해, 그럼 협의할게.' 이것이 진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제안은 북이 받아들일 수 없다. 이재봉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위협을 강조하며 세계 최대 규모, 최장기간의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또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일본까지 끌어들여 한미일 대북 공조를 강화하려 한다. 남한은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는 한편, 핵무기를 잔뜩 실은 미국잠수함이나 항공모함은 동해와 서해를 수시로 들락거린다. 우리는 북한의 호전성을 말하지만 북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끌어들여 합동군사 훈련을 하는 일은 없다. 이런 상황에 북한이 '무조건', 그리고 '먼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가능성 없는 얘기다."

역지사지 해보면 북한이 과연 호전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약자 입장에서 체제에 가해지는 위협이 있으니 없는 살림에 핵무기라도 보유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북의 사정이 아닐까?

"60년대부터 줄곧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고치자고 한 건 북이었다.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오히려 미국과 남한이었다. 그럼 미국은 왜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는가?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주한미군이 남아있을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남한 땅에 핵무기를 갖다놓고 중국과 러시아를 바짝 견제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9일, 이재봉 교수(원광대 정치외교학과)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 통일대박론의 허상'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 이재봉 교수 지난 29일, 이재봉 교수(원광대 정치외교학과)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 통일대박론의 허상'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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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통일로 대박? 쪽박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 

지난달 29일, 이재봉 교수(원광대 정치외교학과)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문제점, 통일대박론의 허상'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은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하 통준사)'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다.

통준사는 지난 2010년 중단된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고, 위축된 우리사회의 통일운동 역량을 회복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 의지로 창립한 단체다. 동국대 김태준 교수가 상임대표로 있으며, 이재봉 교수, 김종길 하늘벗한의원 원장, 김익완 휴먼스쿨 대표, 윤영전 평화연대 상임대표 등 10여 명의 인사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강연은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다. 통준사는 지난 2010년 중단된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고, 위축된 우리사회의 통일운동 역량을 회복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 의지로 창립한 단체다.
▲ 강연회에 참여한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강연은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다. 통준사는 지난 2010년 중단된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고, 위축된 우리사회의 통일운동 역량을 회복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 의지로 창립한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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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주년이 되는 해, 현재 남한의 통일정책은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만들어지고, 김영삼 정부 때 조금 고쳐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1단계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고, 2단계 2정부 2체제의 남북연합을 거쳐, 3단계로 '자유와 민주'가 보장되는 완전통일을 달성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한의 연합제와 북한의 연방제가 서로 공통점이 있으니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이 교수는 다른 체제와 정부를 유지하되, 대외적으로는 중앙정부를 만들어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 이보다 더 실현가능성이 높고 바람직한 통일방안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지점은 박근혜 정부가 이상의 통일정책을 따르고 실현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를 방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남한의 보수세력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북한은 타도의 대상이지 협력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수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그래서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의 괴리를 가져온다. 현실에서 북을 '주적'으로 간주하고, '친북'이나 '종북'을 처벌하는 대북정책을 견지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면상으로는 화해와 협력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적대시하는 것. 이러한 이중성이 박근혜 정부의 실체다.
 
이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 체제를 무너뜨리고 흡수통일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4년 남재준 국정원장이 "2015년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의 조국통일"을 외칠 수 있던 배경도 거기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은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북한이 무너질 것 같지 않고, 붕괴되더라도 남한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뜬금없이 들고 나온 '통일대박론'도 흡수통일일 경우엔 쪽박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했다.

북한 붕괴론은 1990년대 초부터 남한사회에서 끈질기게 불거져 나왔다. 하지만 북은 지금껏 건재하고 있다. 그 많은 설들이 진정 설로 끝난 셈이다. 이 교수는 북한 붕괴 가능성은 낮다고 전하며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었다.

"첫째, 정치적 불안은 없었다. 김일성 사후 3년 동안 주석자리가 비었어도 20년 동안 후계자 연습을 해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충분히 안정된 내치를 했다. 둘째, 식량난으로 인한 폭동도 없었다. 북한은 정보가 차단된 폐쇄적인 사회이다. 아울러 북의 빈곤은 상대적 빈곤이 아니라, 모두가 가난한 절대적 빈곤이기 때문에 폭동의 원인이 되기 어렵다. 또한 폐쇄된 사회에서는 폭동이 일어날 수 없다. 정치가 개방되고 민주화된 유럽사회에서도 대규모 저항이 일어나기 어렵지만, 북한처럼 폐쇄적인 사회에서도 폭동은 일어나기 어렵다. 셋째, 탈북자를 붕괴 근거로 드는데, 탈북자처럼 탈남자도 많다. 우리나라를 이런저런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다고 국가가 무너진다고 하는가? 넷째,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붕괴는 없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태평양 건너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남한 땅까지 건너왔다. 중국에게 북은 '안보선'이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순망치한의 관계로, 중국 자신을 위해서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교수는 북한 붕괴론은 객관적인 분석에 의한 예상이 아니라, 북이 망해야 한다는 적개심과 증오심에 바탕을 둔 희망사항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과 남한의 정보나 국방 분야 책임자들이 그들의 밥줄을 지키기 위해 퍼트리는 것이라 했다. 북한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면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럼 최소한 정보국이나 국방부의 예산이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강연은 2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청중들이 진지한 자세로 이재봉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강연은 2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청중들이 진지한 자세로 이재봉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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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붕괴하면 우리도 힘들어진다

문제는 북한이 붕괴된다면 이는 남한에도 비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교수는 실제로 북한이 붕괴했을 때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째, 북이 붕괴 위기를 맞으면 중국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 핵무기의 안전한 관리를 구실로 유엔을 내세워 점령의 명분을 세우겠지만, 중국은 안보와 경제를 이유로 북한에 먼저 들어갈 것이다. 북한과 1500㎞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북한 구석구석에 엄청난 투자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또 정부를 세운지 1년도 되지 않은 1950년에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서 한국전쟁에 개입한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북한의 붕괴가 곧 흡수통일이리라 생각하지만 국제법상 북한은 우리와 상관없는 별개의 국가다. 붕괴된다고 우리 것이 되는 게 아니다.

둘째, 북한이 붕괴 위기에 처하면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는 빨치산의 후예들인 100만 명의 병력이 있다. 이들이 모두 망명하거나 북한 지도층이 순순히 남한에 투항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한 지도자들이 통일되면 북한 통치자들에게 응당의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마당에 북한 지도층은 갈 때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결사항전에 임할 수도 있다. 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 잡지 못한 10여 명을 쫓는데 한국정부는 연인원 2만 명을 투입하고 수천억 원의 예산을 썼다. 중무장한 공비들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그런데 만약 100만 명이 저항하면 어떻겠는가?

셋째, 가능성은 낮지만 만에 하나 중국 개입도 없이, 무력충돌도 없이 흡수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대박이 터지겠는가? 우리는 그럴 경우 혼란을 수습할 능력도 없고 탈북자를 껴안을 의지도 없다. 현재도 3만 명에 가까운 탈북자가 있지만 남한사회는 그들도 제대로 껴안지 못하고 있다. 탈북자 중 남한사회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30% 미만이다. 많은 수가 제3국으로 가고 싶어 하고, 심지어 다시 북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마당에 2500만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서독을 보라. 우리보다 잘 살던 서독도, 북한보다 잘 살던 동독을 수용하는데 20년 걸렸다. 그동안 서독이 얼마나 힘들었나? 결국 흡수통일은 대박보다 쪽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가능성도 낮은 북한 붕괴와 흡수통일을 추구하느라, 중국과의 무력충돌까지 빚을 수 있는 대북 압박 정책을 펴는 것은 옳지 않다.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만이 진짜 대박이다."

이재봉 교수는 그리하여 박근혜 정부에 다만 이것을 주문했다. 제발 통일정책 좀 지키라는 것, 이전 정권들이 쭉 가져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따르라는 뜻이다. 그리고 만약 따를 자신이 없으면 통일정책 폐기하라고 전했다. 아울러 우리는 통일비용에 대해 우려하지만, 사실 천문학적인 것은 분단을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라 했다.

이 교수는 현재 남한정부의 통일정책을 따르려면 친북, 종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화해와 협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이재봉 교수 이 교수는 현재 남한정부의 통일정책을 따르려면 친북, 종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화해와 협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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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 종북 합시다!

이 교수는 현재 남한정부의 통일정책을 따르려면 친북, 종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화해와 협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북에게도 우리보다 좋은 점, 잘난 점 있지 않겠는가? 그런 건 따라야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매일 부모가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리 없다. 그런 가정은 실존하는 지옥이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갈등 상황을 없애고 가족구성원이 서로 신뢰하고 친하게 따라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친북하고 종북해야 신뢰를 쌓고 평화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간단한 상식이 왜 적용될 수 없는지 의아하다.

한국전쟁과 거리가 있는 세대들, 이즈음의 2,30대들은 남북분단이 파생시킨 적대적인 관념들, 그런 낡고 진부한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다. 주적이니, 괴뢰니, 빨갱이니 하는 언어들은 식상하고 구태의연하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가지게 된 적대감은 전 세대의 일이었지 우리 세대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경험에 기반해 남과 북을 새롭게 판단하고, 그 관계를 새롭게 할 자격이 있다. 분단을 유지하느라 청춘을 군대에 바치고 엄청난 국가예산을 군사력을 유지하는데 쏟아붓고 싶지도 않다. 그런 분단비용을 우리 세대는 진정 건설적인 곳에 사용토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엄마들이 무상급식 시위를 해도 종북이라 몰아대는 풍경을 보았다. 종북을 만능도구처럼 휘두르는 보수정치권의 행태는 상식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도대체 종북세력이 진정 존재하는지, 존재해서 이 사회에 뭐 대단한 일이라도 저질렀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남한이 견지하는 통일정책은 이렇게 말한다.

평화통일을 위해서 화해와 협력, 공존·공영하라고……. 그럼 화해와 협력, 공존·공영을 위해서는 친북, 종북해야 한다. 그러니 이제 친북, 종북합시다, 라고 말해도 된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잡아갈 것인가? 북한과 화해, 협력합시다, 라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잡아서 마른 장작 위에 올릴 것인지, 통일정책도 따르지 않으며 열심히 직무유기 중인 이 정부에 묻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5월 13일 안성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통일, #이재봉 , #친북, #종북, #통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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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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