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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역사적 이벤트 성격마저 띄고 있었던지라 유행이나 이슈에 민감한 사람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다.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역사적 이벤트 성격마저 띄고 있었던지라 유행이나 이슈에 민감한 사람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다.
ⓒ SBS 중계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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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격투스포츠 중 하나인 복싱은 한때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최근에는 어지간히 유명한 세계챔피언이 언급되어도 모르는 사람 투성이지만 과거에는 정말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7080 전후를 오가는 세대라면 한번쯤 복싱에 열광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의 주인공 홍수환은 당시 '박치기 왕' 김일(프로레슬러) 이상가는 인기스타였고 '짱구' 장정구는 파마머리 스포츠 스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80년대 초중반 토마스 헌즈, 슈거레이 레너드, 마빈 해글러, 로베르토 듀란 등 이른바 '빅4'가 펼치는 라이벌 전은 국내선수가 끼어있지 않음에도 매 경기 높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대머리 복서 해글러같은 경우는 국내에서 유달리 많은 인기를 끌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머리를 빡빡 깎은 친구가 보이면 "너 해글러같다"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였는데 대머리의 대명사같은 캐릭터가 바로 해글러였다. 각종 만화나 영화에서도 앞 다투어 복싱을 소재로 썼다.

그 뒤 국내에서의 복싱인기는 거짓말처럼 수그러들었다. 그나마 많은 이들이 동시에 관심을 보였던 복서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정도다. 헤비급치고 작은 신장이었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파고들어 꽂아버리는 한방에 거구의 상대들이 고목나무처럼 픽픽 쓰러지는 모습에서 팬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타이슨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주먹이 센 사람의 대표격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역시 타이슨이 워낙 비정상적으로 인기가 좋았을뿐 복싱 자체의 인기는 하락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해글러 시대 이후 인기스타로 떴던 '신이 빚은 복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골든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 등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지만 그들을 아는 일반 국내 팬들은 많지 않다.

반짝이지만 모두를 집중시켰던 세기의 빅매치

'팩맨(PACMAN)' 매니 파퀴아오(37, 필리핀)와 '프리티 보이(Pretty boy)'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 미국)의 웰터급통합챔피언 타이틀전이 의미가 깊은 것은 오랜만에 국내 팬들의 관심을 하나로 묶었다는 사실이다. 복싱에 굶주렸던 열혈 팬들은 물론 스포츠 자체에 관심이 적던 일반 팬들까지도 일제히 시선을 집중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복싱경기에 관심이 쏟아진 것은 과거 마이크 타이슨이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 이후 처음이다.

워낙 세기의 대결로 홍보가 된 탓도 있지만 역사에 남을 거물들의 격돌, 이웃나라 필리핀의 국민영웅에 대한 관심, 각기 다른 캐릭터가 펼치는 다양한 스토리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딱딱 들어맞았다. 물론 단발경기에 몰린 관심인지라 복싱 붐과는 큰 관련이 없을지 모르지만 복싱을 사랑하는 팬들이나 관계자들은 이 정도라도 감격스럽다는 반응일색이다.

단체 대화방 등 어딜가도 두선수 얘기가 빠지질 않았다.
 단체 대화방 등 어딜가도 두선수 얘기가 빠지질 않았다.
ⓒ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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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 없다'는 말처럼 둘의 충돌은 예상보다 강한 스파크가 나지 못하고 "실망스럽다"는 혹평만을 남기고 있다. 깔아놓은 판은 역대 최고 수준이지만 경기내용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과 관계자들은 복싱도 홍보가 잘되고 캐릭터+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나오면 얼마든지 남녀노소의 고른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현재 실정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엿보았다는 것 만으로도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부산에 거주중인 여성팬 강의정(42, 백화점 판매원)씨는 "그동안 복싱이라는 단어를 잊고 있다가 이번 경기를 통해 다시금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파퀴아오를 보면 어려운 시절 전 국민이 다함께 텔레비전 앞에서 한목소리로 응원하던 과거 복싱영웅들이 떠오른다"며 향수어린 감회를 표현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혜선(38, 학원장)씨 또한 "어른들은 물론 주변 학생들까지 큰 관심을 보이는지라 간만에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얘기를 할 수 있어 참 좋았다"고 말했다.

지역신문기자인 남성훈(33, 디지털김제시대)씨는 "경기를 며칠 앞두고는 어디를 돌아다녀도 복싱얘기뿐이었다"며 "주변 사람들이 이정도로 복싱에 관심이 많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말로 지역 반응을 전했다.

나이지긋한 60~70대 어르신들이 마을회관 등에 함께 모여 전문용어 등을 써가며 토론을 하는 것을 비롯 복싱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만 같았던 부녀회에서도 파퀴아오나 메이웨더의 이름이 언급되는 모습이었다. 카카오톡 단체방이나 밴드 등 각종 온라인 공간 역시 복싱은 최고 화두중 하나였다. 덕분에 과거의 전설적인 복서들이 다시금 회자되는 것은 물론 한국계 괴물복서 게나디 골로프킨(33, 카자흐스탄)같은 다른 유명선수들까지 덩달아 알려지는 시너지효과가 나고 있다.

물론 모든 계층이 고르게 관심을 보였던 배경에는 단순히 스포츠적인 요소 외에도 사회적 핫이슈를 같이 공감하고 즐기려는 집단문화적 이유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미 파퀴아오와 메이웨더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역사적 이벤트 성격마저 띠고 있었던지라 유행이나 이슈에 민감한 사람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번 경기의 효과가 단순히 단발성 이슈로 끝날지 아니면 골로프킨 등 다른 복서들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수십년동안 잠자고 있던 복싱에 대한 열기를 잠깐이라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태그:#복싱 관심, #파퀴아오, #유행, #메이웨더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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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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