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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고 교장 공석 등의 파행이 계속되자, 학부모들이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거리에 나섰다. 학교 앞 지하철역과 거리에서 "학교장을 뽑아주세요"라는 어깨띠를 하고 서명을 받고 있다.
 숭실고 교장 공석 등의 파행이 계속되자, 학부모들이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거리에 나섰다. 학교 앞 지하철역과 거리에서 "학교장을 뽑아주세요"라는 어깨띠를 하고 서명을 받고 있다.
ⓒ 숭실고 학부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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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시 은평구 지하철 6호선 새절역. 노란색 어깨띠를 두른 학부모 10여 명이 지하철 입구와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선전지를 나눠주며 서명을 받고 있다. 이들이 "교장을 뽑아주세요"라고 적힌 어깨띠를 두른 채 거리로 나선 건 지난 4월 22일. 학부모들은 일주일째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선전지를 나눠주고 있다.

새절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숭실고에는 교장이 없다. 2010년 이후로 쭉 없었으니, 벌써 6년째다. 기독교 사학인 숭실고엔 교장만 없는 게 아니다. 2015년 4월 현재는 정식 교감도 없고, 나아가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도 없다. 대한민국 1만1000여개 학교 중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3무(無)학교'다.

이 학교에 교장이 없어진 연유를 찾기 위해선 2010년 서울교육청 특별 감사(당시 교육감 곽노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서울교육청 특별감사 결과, 이사장과 교장, 교감 등이 정부지원금과 장학금을 횡령하고 공사 비리를 저지르는 등 2억 원이 넘는 회계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이사장은 갑작스럽게 사망해 책임을 물을 수 없었고 교장과 교감, 행정실장 등은 모두 기소되어 유죄선고를 받았다. 2012년 11월 대법원에서 교장은 '당연퇴직'에 해당하는 징역형을, 교감과 행정실장 등도 벌금 5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2010년부터 시작된 숭실고 교장 공석 사태

당시 교장이자 이사였던 민아무개씨가 '당연퇴직'으로 더 이상 교장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교장 공석 사태가 시작됐다. 교장이 없는 상태에서 또 다른 비리 당사자인 유아무개 교감이 교장 직무대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사회가 그를 교장으로 승진 시키려고 하면서 혼란이 커졌다. 교사들이 집단 반발한 것이다. 교사들은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이 책임지고 물러나기는커녕 교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말도 안 되며, 나아가 교감, 교사 자격도 없다며 퇴진 서명 운동을 벌였다.

현행 사립학교법 상 '형법 제355조 및 제356조에 규정된 죄(횡령과 배임)로 3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는 교사를 할 수 없으므로 유씨는 교장은커녕 교사도 할 수 없다.

문제는 적용 시점이었다. 유 교감은 자신의 범죄 시점이 법이 개정(2012년 1월)되기 전의 일이므로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로 버텼다. 물론 적용 시점의 문제로 당연퇴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맞지만, 교사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학교 비리와 파행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교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숭실고 교사들은 집단으로 서명을 받아 이사회와 교육청에 유 교감의 교장 승인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냈다. 교사들의 반발에도 이사회는 유 교감의 교장 임명을 강행해 교육청에 보고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내부 반발과 유죄 선고 등을 이유로 임면 보고를 반려해 버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가 결국 유 교감은 교장이 되지 못한 채 지난해 8월 퇴임했다. 그렇게 교장에 이어 교감 자리도 공석이 되어 버렸다.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이런 학교의 파행을 교내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학부모, 교사, 이사와 동문 대표들이 협의해 민주적 의사를 반영해 교장을 선임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리고 교장 선임안을 올렸지만 당시 이사장 권한대행이었던 장아무개씨는 이를 거부했다. 나아가 장 이사장은 일방적으로 다른 교사를 교장으로 선임하려고 해 이사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렇게 파행이 계속되자 숭실고 보직교사들은 거의 전원 사퇴서를 냈고, 학생들은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교장 직무대리 교감, 알고보니 교감 직무대리?

숭실학원은 2010년 서울교육청 특별감사에서 정부지원금, 장학금 등을 횡령하는 등 수억의 비리가 드러나 교장, 교감, 행정실장 등이 횡령으로 유죄선고를 받았고, 이후 교장이 없어져 6년째 교장 공석이다.
 숭실학원은 2010년 서울교육청 특별감사에서 정부지원금, 장학금 등을 횡령하는 등 수억의 비리가 드러나 교장, 교감, 행정실장 등이 횡령으로 유죄선고를 받았고, 이후 교장이 없어져 6년째 교장 공석이다.
ⓒ 서울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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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교감이 퇴임한 뒤인 지난해 9월, 교무부장이었던 임아무개 교사가 교감으로 임명되었다. 숭실고 홈페이지에는 임 교사가 교감으로 임명되어 교장직무대리를 겸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숭실고 교사들에 따르면, 그는 교감 자격증이 없어서 정식 교감이 될 수 없는 상태로, 현재 교감 자격 연수를 받고 있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 교감이 아니라 교감 직무대리인 것이다.

그가 정식 교감이 아니라 교감직무대리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우리 현행법은 이중대리나 복대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재 숭실고의 교감직무대행이 교장직무대행을 겸하는 것에 대해 불법 시비가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법 논란은 또 있다. 직무대리는 그 직무를 대행할 뿐이지 직책에 임명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교감직무대리는 교감 직무를 할 뿐이지 교감이 아니라 평교사라는 의미이다. 교장이나 교감은 현행 법규상 가산 인원이기 때문에 그를 대신하는 기간제 교원을 임용할 수 없다. 이는 서울교육청도 명확히 하고 있고, 감사에서 중요하게 지적하는 사항이다.

서울교육청은 사립학교 교원 인사 지침과 연수 자료, 감사자료 등의 '직무대리 임면 시 유의사항'을 통해 "교장, 교감은 가산(별도) 정원이기에 직무대리자를 대체하는 기간제 교원 및 시간강사 임용불가"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현재 숭실고 교감 직무대리는 수업을 한 시간도 하지 않고 있어, 불법이라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청 담당자는 "교감 직무대리의 수업을 대체하는 기간제 교사 임용은 불법이다"라며 "다만, 직무대리의 수업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총 정원 내에서 다른 이유로 기간제교사를 임용하는 것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사실 한 학교의 교장 자리를 이렇게 장기간 공석으로 놔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현행 법령은 사립학교 교장이나 교감 직무대리의 임기를 정하고 있지 않다. 앞서 감사원은 몇 차례 감사에서 '교장의 임기를 연장하기 위한 편법으로 직무대리를 악용하고 있고, 장기 교장 공석으로 인해 학교운영과 교육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등의 이유로 장기 직무대리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감사원의 이런 지적에 교육부와 교육청은 사립학교의 교장 직무대리 기한을 최장 6개월로 제한하는 지침을 만들기도 했다.

학교운영위원장 자리도 '공석'

숭실학원 비리와 교장 임명 등을 둘러싸고 파행이 계속되자 학생이 학교에 붙인 대자보. 이 대자보는 곧 뜯겼고 그 후에도 학교의 파행은 계속되었다.
 숭실학원 비리와 교장 임명 등을 둘러싸고 파행이 계속되자 학생이 학교에 붙인 대자보. 이 대자보는 곧 뜯겼고 그 후에도 학교의 파행은 계속되었다.
ⓒ 숭실고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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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황당한 것은 숭실고의 학교운영위원장 자리도 공석이라는 점이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운영의 민주화와 투명화를 위하여 교원, 학부모, 지역위원으로 구성되는 법정기구다. 숭실고 학교운영위원회 규정에 의하면, 위원장의 임기는 1년이고, 위원들의 무기명투표로 선출해야 한다.

숭실고 학운위 규정에는 예고 없이 학운위에 3회 불참하면 학운위원 자격을 상실한다고 돼 있는데, 학교운영위원장이 2014년 하반기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4번이나 연달아 회의에 불참한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이 반복되던 중 학운위원장 임기가 끝나버렸다.

이후에 새로운 학운위원장이 선출됐으면 좋았겠지만 그것 또한 원활하지 않다. 학운위 부위원장 또한 똑같은 절차상 논란에 휩싸여 있어, 합법적으로 회의를 소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장과 학운위원 1/4의 요구가 있을 때 소집한다. 하지만 현재 학운위원장도 없고, 부위원장은 자격 시비가 있고, 학교장도 없는 상태라 누가 학교운영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파행이 계속되면서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입시를 앞둔 학부모들은 해마다 "혹시 학교장 추천으로 대학을 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피해 보는 거 아니냐?"는 불안에 떨어야 하고 학생들도 "교장도 없는 학교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우리가 피해 보는 거 아니냐?"는 피해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올해 1월부터 서울교육청은 감사 지적 사항 불이행을 이유로 숭실고에 지원 예정이던 시설비 예산 지원을 유보했다.

숭실고 파행의 가장 큰 책임은 아무래도 이사회가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사장인 장아무개씨는 공정택 교육감 시절부터 숭실고 이사로 재직한 인물로, 2014년 7월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애초 숭실학원의 횡령과 비리는 전 이사장측의 전횡과 당시 이사들의 직무유기, 당시 교장과 교감 등의 방조와 협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당시 이사로 재직하고 있었던 장 이사장 또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사장에 오르기 전 이사장 대행을 맡았던 장씨는 교장 공석 등으로 숭실학원이 격랑에 휩싸여 있는데도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유죄 선고를 받은 교감을 교장으로 승진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들 사이가 갈라지고, 교사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오는 등 분란이 확대됐다.

아울러 장 이사장은 사임한 전 이사를 다시 이사로 불러들이면서 또 다른 잡음을 일으켰다(관련기사: 장학금·헌금 횡령한 기독교 사학의 황당한 분쟁). 이사들 간 빚어진 분쟁은 소송으로 비화됐는데, 최근 장 이사장이 소송비를 학교 법인회계에서 지출한 정황이 드러나 이사들이 문제 삼고 나섰다. 김아무개 이사 등 3인은 '장 이사장이 이사회 의결도 없었고, 최소한의 보고도 없이 소송비용 수천만 원을 학교법인 회계에서 지급한 것은 불법이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즉시 서울교육청이 감사에 나서고, 임원 승인을 취소해 달라'는 요구서 제출을 검토하고 있다.

숭실고와 숭실학원에 대한 특별감사 벌여야

숭실고 교사들과 학부모, 일부 이사들은 숭실고 파행의 또 다른 원인 제공자가 서울교육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교육청이 곽노현 교육감 시절인 2010년 특별감사를 통하여 숭실고의 비리를 밝혀 이사승인을 취소하고, 범죄 혐의가 있는 이들을 형사고발한 것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문용린 교육감 하에서 법적으로 문제(법원이 이사 자격이 없다고 판결)가 있는 이사를 승인해 논란을 빚었다. 이를 두고 학부모와 교사들은 서울시교육청이 지도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면죄부를 주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도 서울시교육청은 대법원 판결까지 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청 담당자는 "당시 서울교육청의 해석은 숭실학원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없어서 생긴 것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일부에서 제기되는 임원승인 취소 요구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서 당장 그럴 가능성은 없다, 변호사 법률 자문을 받아본 결과도 현 시점에서 이사승인을 취소할 경우 또 다른 법적 분란이 생길 수 있다고 해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숭실학원에 향후 분란이 지속되면 이사승인 취소 등 특단의 조치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므로 대화를 통하여 원만하게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행정지도를 수차례 내린 바 있다"고 밝혔다.

물론 허위사실을 보고한 장 이사장과 그 측근 이사들에게 일차적 잘못이 있겠지만, 서울시교육청이 불법성을 지적하며 이사승인 거부를 요구하는 교사들과 기존 이사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이사승인을 해준 것이 아직도 숭실고 파행 지속의 큰 이유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만약 서울시교육청이 그때 제대로 판단을 했다면, 지금 숭실고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들이 모두 해결됐을지도 모른다. 또 숭실고의 감사 지적 미이행에 의한 서울시교육청의 예산 중단도 없었을지 모른다.

서울교육청은 지금이라도 학부모와 교사들, 그리고 일부 이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숭실고와 숭실학원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여야 한다. 특히 이사 임명을 둘러싼 불법과 교장 장기 공석 사태의 책임, 그리고 장 이사장의 소송비 횡령 등의 문제에 대해서 명백히 밝혀야 한다.

2010년부터 시작된 숭실고의 파행 사태가 벌써 6년째를 맞았다. 학부모들까지 나섰다. 6년 동안의 교장 공백도 모자라 정식 교감도, 학운위 위원장도 없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에는 예산 지원도 보류되어 학생들의 피해는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를 방치해야 하는가? 공은 숭실고 이사회와 서울교육청으로 넘어간 상태다. 숭실고 이사회와 서울교육청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교육을 입에 올릴 자격이 생긴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숭실고, #무교장, #서울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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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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