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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 기자 말

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아침부터 캐리어에 옷가지들을 싸서 어머니께 서울 출장을 다녀온다고 말씀드리고 집에서 나왔다. 사실 오늘은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다. 내일이면 나는 수술대에 올라 갑상샘암 수술을 받는다. 빈 병실이 몇 시에 날지 몰라 병원에서 연락 오기만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 출장 간다고 해놓고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야만 했다. 그리고는 병원 근처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점심 시간쯤 되었을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병실이 났으니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입원이라는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첫 병원 입원이 암 수술 때문이라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입원 수속을 밟고 병실이 있는 8층으로 올라갔다. 8층 간호사실에서 낙상예방 교육을 듣고 병실을 안내받았는데 2인 중환자실이었다. 간호사는 빈 병실이 없다며 일반 병실에 자리가 나는 대로 옮겨준다고 했다. 그리고 첫날은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고 했다.

검사도 없고 식사도 없다. 그냥 알아서 나가 밥을 사먹고 오고 밤 10시 이후로 금식만 하란다. 이럴 거면 왜 하루 전에 입원을 시킨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실 침대에 앉아 몇 번을 망설이다, 친인척 형제 자매들이 모여있는 가족 밴드에 수술 소식을 알렸다.

눈물의 편의점 도시락

입원 당일. 친인척 형제자매들이 모여있는 밴드에 수술 소식을 알렸다.
▲ 가족밴드 입원 당일. 친인척 형제자매들이 모여있는 밴드에 수술 소식을 알렸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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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안을 돌아다니며 내가 일주일간 살아야 하는 공간을 구경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의 지겨움을 달래기 위해 가져간 태블릿 PC에 거치대를 꽂아 침대에 설치했다. 할 일을 다 했는데도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초저녁이었다.

아침도 거르고 나와 점심은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으로 때웠더니 배가 고프다. 환자복을 입은 채로 어슬렁거리며 병원 1층 로비로 내려갔다. 1층엔 식당도 있고 편의점도 있다. 혼자 이런 차림으로 식당에 앉아 밥 먹을 자신이 없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그러고는 편의점 바에 서서 도시락을 먹는데 충청도에 있는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는 전화기 너머에서 울먹이고 있었다. 멀리 있는 자신을 원망하는 듯했다. 누나의 그 목소리에 덩달아 나도 울컥했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의 도시락. 어쩌면 내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르는 이 소중한 한 끼를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웠다.

밥을 먹고 병실로 올라와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2인실이지만 옆 침대가 비어있어 1인실이나 마찬가지였는데 혼자 있는 병실이 더 외롭게 느껴졌다. 그 때 간호사가 '수술동의서'를 가지고 들어왔다. 혹시나 수술하다 잘못될 수도 있다는 서류. 그 서류에 보호자가 아닌 내가 직접 사인을 했다.

밤 9시가 다 되어서 외가 쪽 사촌 누나와 매형이 놀란듯 병원으로 뛰어왔다. 누나는 우리 집안에서 신통방통한 꿈을 잘 꾸는 편인데, 이상하게 얼마 전 꿈에 내가 나왔다고 한다. 누나 꿈속에서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양쪽 갈림길에 다다라서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더란다.

그리고는 길이 없는 가운데 벽을 향해 자전거를 돌진해서 부딪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또 부딪히고를 반복하더란다. 그 때 누나가 나를 발견하곤 너 뭐하냐며 나를 데리고 다른 데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안 돼서 내가 암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알렸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시계를 보니 아직 10시가 안 된 시각이었다. 우리는 병원 앞 커피숍으로 갔다. 다들 바빠서 평소엔 1년 가야 한두 번 얼굴 볼까 말까 하면서 지냈는데... 아프다고 하니 한 걸음에 달려와준 사람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가족이 최고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누나와 매형을 보내고 병실로 돌아온 나는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뒤척거리기만 했다. 몇 년 전 군대 훈련소에서 보낸 첫날밤이 이와 비슷했을까? 긴장되고 낯선 이곳. 군대 안에서 국방부 시계는 계속 돌아가듯, 병원 안 시계도 계속 돌아 수술 D-데이가 밝았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갑상샘, #입원, #수술, #도시락,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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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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