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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 기자 말

2013년 10월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파란만장했던 한 달이었다. 10월 4일. 최종 암 선고를 받고 중중환자가 되었다. 그리고 10월 17일. 두려움에 벌벌 떨며 CT검사를 받았고 난생처음 긴 휴가에 돌입했다. 10월 21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이라는 걸 했으며 10월 22일.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 한달새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제일 바빴지만 시간 안가는 한 달이었던 것 같다.

넷째 주 월요일인 10월 21일이 입원하기로 예정돼 있었던 날이다. 입원하고 다음날인 22일이 수술. 외과 초진 때 수술하면 얼마나 입원해야 하나 확인하니 일주일 정도면 된다고 했었다. 나이 많은 노모께서 늦둥이 막내아들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큰 충격에 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차마 이야기를 못했고, 입원을 위한 일주일 동안 평소 자주 오가던 서울 출장을 다녀와야 한다고 둘러댔다.

다니던 직장에는 17일부터 병가를 제출했다. 병가 첫날인 17일은 공포의 CT촬영으로 하루를 다 보냈는데 조영제의 공포 때문에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너무 피곤했다. 18일 금요일은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께는 출장가기 전 푹쉬고 가려고 휴가를 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매번 미뤄왔던 외할머니 산소에 가자고 말씀 드렸다.

수술을 몇일 앞두고 8년만에 어머니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외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 외할머니 산소 수술을 몇일 앞두고 8년만에 어머니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외할머니 산소를 찾았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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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는 노환으로 내가 중학생 때 돌아가셨다. 외갓댁 고향이 함양인데 함양중에서도 좀 외진마을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함양에 외할머니를 모시러 갔을 때 펑펑 울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뒤로 학창시절을 다 보내고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한다고 한 번도 외할머니 산소에 가 본 적 없다가 2005년 여름휴가 때 내려와서 어머니 모시고 한 번 다녀왔다. 그리고는 또 8년간 한 번도 못 가보고 살았다. 어머니도 이제 연세가 있어 대중교통으로는 다녀오지 못할 거리인지라 나와 똑같이 8년을 외할머니를 찾아뵙지 못하고 지내셨다.

엄마는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을까?

밖에서는 똑똑한 척 다 하고 다녀도 정작 우리 집에서는 서른이 넘도록 철없이 나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아온 나. 막다른 길에 들어서서야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내 상황을 알면 얼마나 가슴아파 하실지. 아픈 것조차 불효라는 생각에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께 '보고싶은 엄마'를 만나게 해드리지 못한 것도 죄송스러웠다.

그 길로 어머니를 모시고 외할머니 산소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 3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인데 이게 뭐라고 어머니께서 그토록 그리워한 엄마를 만나게 해드리지 못한 건지. 8년 만에 간 탓인지, 외할머니 산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고 한참을 해매다 겨우 도착했다. 도착한 외할머니 묘지 주변에는 도라지가 많이 자라 있었다. 도라지 뿌리가 깊어 외할머니께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주변에 도라지들을 뽑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 한구석이 먹먹했다.

가져간 캔 식혜를 외할머니 묘지 주변에 뿌리고 어머니와 함께 절을 올렸다. 그리고 잠시 돗자리 펴고 앉아 배를 한 쪽씩 깎아 먹으며 외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어릴적 부산 영도에 사시던 외할머니를 뵈러 가면 아무도 안 주고 장농 안에 꼭꼭 숨겨둔 양갱을 꺼내 주시곤 했었다. 나는 평소 팥 들어간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 달달한 양갱이 어찌나 맛있던지.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던 '민화투'를 배우기도 했는데, 당시 '국민학생(초등학생)'이었던 난 윷놀이보다 화투치는 게 더 재밌었다.

한참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을 망설였다. 그래도 내 상황을 어머니께 말씀드려야지 않을까. '외할머니가 날 지켜주실 거야'라며 외할머니 앞에서 말씀드리면 어머니도 좀 덜 놀라지 않을까? 많은 생각들을 했다. 하지만 외할머니께 자기 아들 잘되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어머니 앞에서 '저 암이래요'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3일간의 주말은 지나갔고 월요일, 나는 암수술이 아닌 서울출장을 가기 위해 그렇게 집을 나왔다. 어쩌면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우리 집을...


태그:#갑상샘, #외할머니,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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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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