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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한승오님이 쓴 산문책 <삼킨 꿈 - 땅에서 배운 십 년>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기에, 한승오님 글에는 시골내음과 흙내음이 흐릅니다. 시골에서 겪은 이야기를 쓴 글이고, 시골에서 바라보는 사회를 돌아보는 글입니다. 흙을 만지면서 배운 이야기를 쓴 글이며, 오래도록 흙을 만진 이웃 할매와 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옮겨 적은 글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살기에 땅한테서 배웁니다. 시골에서 나무를 만지면서 살면 나무한테서 배워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한테서나 배우고, 모두한테서 배웁니다. 풀 한 포기한테서도 배우며, 나비 한 마리와 벌레 한 마리한테서 배워요.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에서부터 배울 수 있다

<삼킨 꿈 - 땅에서 배운 십 년>(한승오 지음 / 강 펴냄 / 2012.05 / 1만2000원)
 <삼킨 꿈 - 땅에서 배운 십 년>(한승오 지음 / 강 펴냄 / 2012.05 / 1만2000원)
ⓒ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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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농사만 지어 다섯 자식을 키운 팔순의 할머니가, 고추가 흙냄새를 맡았다고 그랬다... 과연 저 어린 모가 생명의 춤을 파랗게 출 수 있을까... 그 딱새가 작년과 같은 딱새인지 그 새끼인지는 모르겠다. 꼭 그 집에 날아들어 빈집을 고치고 거기에 다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 본문 11·13·20쪽 중에서

딱새를 바라본 한승오님은 딱새한테서도 삶을 배웁니다. 그럼요, 그렇지요. 제비를 보았으면 제비한테서 삶을 배우고, 까치나 까마귀를 보았으면 까치나 까마귀한테서 배웁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예부터 지구별 모든 곳에서는 모든 이웃을 곁에 두면서 배웠습니다. 둘레에 있는 이웃사람도 나를 가르치는 숨결이고, 내가 먹는 밥도 나를 가르치는 숨결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뿐 아니라, 새와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도 우리를 가르치는 숨결이에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학교만 다니면서 학교에서만 배웁니다. 학교 바깥에서 '우리는 둘러싼 모든 이웃사람'하고 '모든 숨결'한테서 배우는 길이 가로막힙니다. 더욱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학교에서 쓰는 교재와 교과서 언저리에서만 배워요. 다른 책이나 스승한테서 배울 길이 막힙니다.

"땅을 잃은 사람들은 돌아갈 땅이 없다. 땅을 떠난 사람들은 땅에 돌아가리라는 마음을 망각한다... 대문 밖 벽에 걸어둔 호미가 없어졌다. 벽에 못을 박아, 거기에 삽, 낫, 호미 따위를 걸어두었더니, 이웃 아주머니가 도둑이 훔쳐갈지 모르니 그러지 말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는, 설마 어떤 도둑이 낫이나 호미를 가져갈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호미가 없어졌다." -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 본문 56·73쪽 중에서

스승이 훌륭하면 제자가 훌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이 훌륭하더라도 제자는 안 훌륭할 수 있습니다. 한편, 스승이 안 훌륭하더라도 제자가 훌륭할 수 있어요.

학교를 다니면 학교에서 배웁니다. 스승한테서 배우려 하면 스승이 보여주는 몸짓과 말짓과 삶을 고스란히 배웁니다. 더 나은 배움이 없고, 덜 떨어지는 배움이 없습니다. 모두 배움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배움이든 받아들이는 사람 몫입니다. 배우려 하는 마음이 없다면, 스승이 아무리 훌륭하거나 책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아무것도 못 배워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더라도 흙빛과 흙내음과 흙결을 제대로 살피려 하지 않는다면, 열 해를 살거나 백 해를 살거나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있다면, 시골내기 아닌 도시내기라 하더라도, 흙 한 줌을 만지면서 이 땅이 우리한테 가르치려 하는 숨결을 넉넉히 배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도시에서도 땅을 배우고, 시골에서도 땅을 배워요. 우리는 대학생으로서도 배우고, 어린이로서도 배웁니다. 젊은이로서도 배우며, 할머니나 할아버지로서도 배웁니다.

"사오년 전 우연히 보았다. 볍씨를 물에 담글 때 비닐하우스 옆 작은 벚나무가 꽃망울을 하얗게 터뜨리는 것을. 그것은 날짜의 옷을 훌훌 벗어던진 시간의 알몸, 바로 생명의 시간... 지난봄 나에게 땅을 건네던 날, 최소한 오 년 동안은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나의 말에 그는 말했다. 오 년이고 십 년이고 계속 지을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아내와 내가 일 년 농사 끝에 그 많은 피를 다 뽑아 놓으니 이제 와서…." -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 본문 81·87쪽 중에서

한승오님은 시골에서 땅을 빌려서 피를 뽑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해 동안 애써서 피를 죄다 뽑았더니, 이듬해에 땅임자가 그 땅을 내놓으라고 했대요. 이런 일은 시골에서 흔히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 해이고 스무 해이고 빌려주겠다고 하지만, 막상 한 해가 지나서 입을 싹 씻는 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운 꿈을 꾸다

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삶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땅임자를 탓할 수 없어요. 빌린 땅이고, 땅을 빌리면서 '문서'로 몇 해 동안 빌리겠노라 하고 밝히지 않았으니까요. 문서로 밝혔다 하더라도, 땅임자가 우격다짐으로 나서면 손을 들어야 합니다. 땅임자가 우격다짐으로 나서지 않아도 '시골에서 살려'면 땅임자 말을 들어야 하기도 합니다.

"언제 옥수수를 따야 하는지를 몰라 허둥대는 내게 옆집 아주머니가 그랬다. 옥수수수염이 잘 익었을 때 따라고... 펌프는 고장이 났다. 이번 한 번만 물을 대면 되는데, 고장 난 펌프를 뜯어내 읍내까지 가서 고쳐 오는 일이 번거로웠다. 대신 비를 기다리기로 작심했다... 아주머니의 농약과 화학비료가 그 물에 섞여 내 논으로 들어온다. 나는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한 점 논에 뿌리지 않건만, 내 논은 어쩔 수 없이 농약과 비료에 몸을 섞는 것이다."  -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 본문 98·145·153쪽 중에서

그런데, 한승오님은 '빌린 땅에서 애먼 품 팔기'뿐 아니라, 웃논에서 흘러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겪습니다. 참말 한승오님한테는 왜 자꾸 이런 일이 닥칠까요? 시골에서 아름답게 삶을 짓고 싶은 사람한테 왜 이런 가시밭길이 끝없이 일어날까요?

시골살이가 힘들다는 뜻일까요? 그렇지만, 도시에서도 이처럼 힘든 일이 있어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안타깝거나 슬픈 일이 툭툭 불거집니다.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일도 샘솟고, 밉거나 괴로운 일도 찾아옵니다.

<삼킨 꿈 - 땅에서 배운 십 년>을 덮습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누구나 '내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내 땅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집'을 누구나 숲으로 가꾸면서, 열매도 얻고 장작과 나무도 얻어서, 손수 집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마다 스스로 삶을 알차게 지으면서 이웃이 서로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부터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기쁘게 지으면서 다 함께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쓴맛을 보면서 꿈을 삼킵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이루고 싶기에 새롭게 꿈을 꿉니다. 슬픔이 찾아오면 슬픔대로 받아들이면서 삭입니다. 이러면서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서 웃습니다. 왜냐하면, 땅은 늘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기다리거든요. 우리가 스스로 다시 일어나서 흙을 살뜰히 보듬어 주기를 기다려요.

덧붙이는 글 | <삼킨 꿈 - 땅에서 배운 십 년>(한승오 지음 / 강 펴냄 / 2012.05 / 1만2000원)

이 기사는 최종규 시민기자의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삼킨 꿈 - 땅에서 배운 십 년

한승오 지음, 강(2012)


태그:#한승오, #삼킨 꿈, #시골살이, #농사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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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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