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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꽃문을 배경으로 앉은 동자상. 태아령을 상징하는 동자상이 빨강 털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한꽃문을 배경으로 앉은 동자상. 태아령을 상징하는 동자상이 빨강 털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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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참 빠르다. 새봄이 엊그제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봄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봄날에 화사한 벚꽃으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씻어주는 절집으로 간다. 전남 보성에 있는 천봉산 대원사다. 대원사로 가는 길에 벚꽃 만개해 4월 9일 현재 절정을 맞고 있다.

꽃길도 시와 노래가 흐르는 산책길로 만들어져 있다. 백민미술관에서 대원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경구와 시, 동요 등을 써놓았다. 그 작품 200여 점을 벚나무와 나무데크 여기저기에 걸어 놓았다. 화사한 벚꽃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감명 깊은 글귀는 대원사 경내에도 많이 걸려 있다. '분노가 쌓이면 인생이 꼬이고, 화를 풀면 인생이 풀린다' '스스로를 바꾸려면 머리를 써야 하고, 남을 바꾸려면 마음을 써야 한다' '모든 괴로움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오고, 모든 행복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에서 온다'는 등의 글귀가 적혀 있다.

'스스로를 바꾸려면 머리를 사용해야 한다. 남을 바꾸려면 마음을 사용해야 한다' 대원사 경내에 내걸려 있는 짧은 경구다.
 '스스로를 바꾸려면 머리를 사용해야 한다. 남을 바꾸려면 마음을 사용해야 한다' 대원사 경내에 내걸려 있는 짧은 경구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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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다이어트 법을 알려주는 경구. 대원사 경내 나무에 걸려 있다.
 최고의 다이어트 법을 알려주는 경구. 대원사 경내 나무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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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다이어트는 '탐욕과 집착의 뱃살을 빼고, 성냄과 질투의 속살을 빼고, 교만과 무지의 목살도 빼고, 아집과 허영의 얼굴살을 빼는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 '가장 좋은 절은 친절, 가장 나쁜 절은 불친절'이라는 웃음 짓게 하는 글귀도 있다. 하나하나가 예술작품이고 감동적인 글귀들이다.

시와 노래가 흐르는 이 꽃길에서 벚꽃축제도 펼쳐진다. 백민미술관 주차장에서 10일 농악과 가야금 연주, 초등학생들의 난타 공연으로 시작됐다. 축제는 문인들의 시 낭송, 민요와 색소폰, 통기타 동호인들의 공연, 디카사진 촬영대회 등으로 이어진다. 축제는 12일까지 계속된다.

대원사의 동자상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태아령을 상징하고 있다. 마음 짠해지는 동자상들이다.
 대원사의 동자상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태아령을 상징하고 있다. 마음 짠해지는 동자상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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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터널을 지나서 만나는 대원사는 일반적인 절집과 다르다. 분위기가 독특한 절집이다.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이다. 태아령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부모의 배에서 죽은 낙태아를 가리킨다. 대원사는 이 낙태아의 영혼 천도를 봉행하는 절집이다.

빨간 털모자를 쓴 아기 불상이 태아를 형상화한 동자상이다. 태아령은 여기서 지장보살을 어머니 삼아서 맺힌 한을 풀고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동자상을 감싸고 있는 돌탑은 부모들이 참회의 뜻으로 쌓은 돌무덤이다. 태아령을 덮어주는 돌이불이기도 하다. 마음 짠해지는 절집이다.

지난 7일 대원사를 찾은 관람객이 담장 밑에 줄지어 앉은 태아령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7일 대원사를 찾은 관람객이 담장 밑에 줄지어 앉은 태아령을 바라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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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부모공덕불.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불과 가슴을 쓸어내리는 어머니불이 모셔져 있다.
 대원사 부모공덕불.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불과 가슴을 쓸어내리는 어머니불이 모셔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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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에는 부모 공덕불도 있다. 부모의 공과 덕을 기리는 불상이다. 부모에 대한 불효나 원망을 뉘우치고 그 은혜에 눈뜨게 해준다는 불상이다. 극락전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다. 앞의 불상이 아버지불, 뒷면이 어머니불이다. 아버지불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 자국도 선명하다. 어머니불은 맺힌 게 많은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우리네 부모의 심정 그대로다.

대원사 입구 연못도 별나다. '아사달영지'라 이름 붙어 있다. 일주문 앞 빈터에 물길을 끌어들여서 조성한 인공 연못이다. 연못 주변에 솟대도 세워져 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도 있고, 돌을 쪼아 만든 돌솟대도 있다.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솟대다. 인간사의 한숨과 절망, 체념, 분노를 모두 가져가고, 희망을 물어오길 염원하는 곳이다.

대원사 풍경. 지난 7일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이 부처님 발 조각상에 떨어진 동백꽃송이를 올려놓고 물을 뿌려주고 있다.
 대원사 풍경. 지난 7일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이 부처님 발 조각상에 떨어진 동백꽃송이를 올려놓고 물을 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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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쪼아서 만든 대원사의 돌솟대. 눈 언저리에 눈물 자국이 조각돼 있다.
 돌을 쪼아서 만든 대원사의 돌솟대. 눈 언저리에 눈물 자국이 조각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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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는 철학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절집이다. '우리는 한꽃'이라 새겨진 한꽃문이 대표적이다. 태아령을 상징하는 동자상과 어우러져 있다. 꽃잎 하나하나가 서로 엮여서 꽃송이를 이루는 것처럼 자연과 사람이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문이다. 홀로 피는 꽃이 없듯이 우리의 삶도 수많은 인연으로 이뤄져 있다는 의미다.

대원사가 이처럼 독특한 가람이 된 것은 풍수지리와 연관이 깊다. 풍수지리로 볼 때 대원사가 어머니의 자궁에 해당한다. 주암호반에서 대원사로 가는 벚나무길이 어머니의 탯줄에 해당된다. 하여, 대원사 벚꽃길을 '탯줄길'이라고도 한다. 대원사가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이 된 것도 이런 연유다.

대원사로 가는 길목의 벚꽃길. '탯줄길'로도 불리는 이 길에 하얀 벚꽃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대원사로 가는 길목의 벚꽃길. '탯줄길'로도 불리는 이 길에 하얀 벚꽃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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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의 왕목탁. 손이 아닌 머리로 두드리는 목탁이었다. 목탁을 매달고 있던 사철나무가 폐사하면서 지금은 내려지고 없다. 사진은 지난해 이맘때 모습이다.
 대원사의 왕목탁. 손이 아닌 머리로 두드리는 목탁이었다. 목탁을 매달고 있던 사철나무가 폐사하면서 지금은 내려지고 없다. 사진은 지난해 이맘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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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는 본디 백제 무령왕(503년) 때 신라 고승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 자진국사 원오에 의해 중건되면서 대가람의 모습을 갖췄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10여 동의 요사채가 있었다. 한국전쟁과 여순사건을 거치면서 대부분 불에 타버렸다. 지금의 절 형태는 1990년대 들어 복원한 것이다.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대원사에 머리로 치는 목탁도 있었다. 남이 나에게 했던 나쁜 말이나 행위를 모두 용서하는 마음으로 치는 목탁이었다. 나쁜 기억들 사라지고, 나의 지혜 밝아지고, 나의 원수 잘 되라고 머리로 치는 목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왕목탁을 매달고 있던 고목이 폐사하면서 사라졌다. 사철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나이가 많았다. 왼쪽과 오른쪽 두 그루가 서로 손을 맞잡고 터널을 이루고 있어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세계를 깨닫게 하는 나무였다.

대원사 주지 현장스님은 "사철나무가 폐사하면서 왕목탁을 떼어 놓았는데, 많은 분들이 왕목탁의 행방을 궁금해 하고 있다"면서 "금명간 적당한 공간을 찾아서 왕목탁을 다시 달아야겠다"고 했다.

'가장 좋은 절은 친절, 가장 나쁜 절은 불친절'이라는 경구가 내걸린 대원사 일주문 풍경. 대원사에는 이런 경구가 군데군데 걸려 있다.
 '가장 좋은 절은 친절, 가장 나쁜 절은 불친절'이라는 경구가 내걸린 대원사 일주문 풍경. 대원사에는 이런 경구가 군데군데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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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대원사 찾아가는 길
대원사는 주암호반의 화순군 남면과 보성군 문덕면, 순천시 송광면이 만나는 경계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에 속한다. 호남고속국도 동광주 나들목에서 광주제2순환도로를 타고 화순읍으로 가서 송광사·벌교 방면으로 간다. 화순군의 경계를 넘어 오른편에 대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태그:#대원사, #태아령, #낙태아, #경구, #왕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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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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