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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국 경찰에 의한 비무장 흑인의 총격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 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경찰의 테이저건을 빼앗아 달아나던 흑인을 쏜, 정당방위 사건으로 조용히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사건은 발생 며칠 만에 극적으로 반전됐다. 당시 근처를 지나던 한 시민의 휴대폰 영상이 <뉴욕타임스>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백인 경찰 마이클 토머스 슬레이저(33)는 차량 후미등 파손을 이유로 흑인 운전자 월터 라머 스콧(50)의 차를 세우고 조사했다. 네 자녀의 아버지로 양육비 미지급 건으로 가정 법원 체포 영장을 받고 있던 피해자는 경찰 심문 중 도망을 쳤고, 경찰은 그의 등 뒤로 연속 8발의 권총을 쏘았다.

게다가 영상엔 총에 맞아 쓰러진 흑인 옆에 경찰이 문제의 테이저 건을 가져다 던져 놓는 장면까지 포착되어 있었다. 이 제보 동영상이 없었으면 이슈도 논란도 없이 묻혔을, 또 하나의 비무장 흑인에 대한 경찰의 총격 사망 사건이었다.

'유색인종을 향한 경찰의 총격은 일상의 공포다.'
 '유색인종을 향한 경찰의 총격은 일상의 공포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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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지하철에서 만난 리치 이튼은 가슴에 낡은 사진 한 장을 걸고 있었다. 사진 속 흑인 아이들은 분노와 공포의 모습으로 '쏘지 마'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었다. "무슨 의미냐" 했더니, 자신을 포함한 모든 흑인들이 백인 경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 했다.

단지 흑인이란 이유로 경찰에 의해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자신들의 처지를 향한 자조라고도 했다. 조지아텍 학생인 씽도 같은 유색인종으로서 그의 메시지에 공감했다. 한 달 전 이웃 알라바마 주에서도 경찰이 인도 노인을 폭행해 반신불수로 만든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최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백인 경찰의 흑인 총격 사건 소식이 이들에겐 남의 일일 수 없었던 것이다.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의 총격 사건은 큰 공포"

손가락을 꼽으며 우리가 뉴스에서 들었던 또는 처음 듣는 여러 사건들을 설명하는 리치에게 "네가 아는 그 수많은 사건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은 뭐였니?"라고 물었다.

"작년에 있었던 너무 많은 사건 중에 하나인 타미르 라이스 건이야. 혼자 집 근처 공원에서 장난감 총을 갖고 놀다가 출동한 경찰의 총에 숨진 사건이지. 당시 타미는 겨우 12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고. 그런데 경찰은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에게 여지없이 총을 발사해 죽게 했어."

리치가 말한 사건을 포함해 경찰의 흑인 사망 사건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2014년 7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 시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마이클 브라운(18)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부검 결과 머리 2발 포함, 적어도 6발의 총탄을 정면에서 맞은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청년은 총격 후 4시간이나 거리에 방치되었다.

같은 시기인 지난해 7월 17일, 뉴욕 스테튼 아일랜드에서 낱개 담배를 팔던 에릭 가너(43)가 체포 중 목이 졸려 숨졌다. 당시 찍힌 영상에 의하면, 경찰은 그의 목을 누르며 체포를 시도했고 가너는 여러 번 '숨이 막힌다'고 호소하다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전국적인 분노를 일으켰던 또 하나의 사례로 2012년 2월, 트레이번 마틴(17)도 있다. 후드 티에 달린 모자를 눌러 쓰고 군것질거리를 사 가지고 오던 이 소년은 백인 자경단원의 총에 사망했다.

익히 들었던 이 사건들의 피해자는 모두 '비무장 흑인'이다. 그리고 가해자는 '백인 경찰'이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어이없고 충격적인 사건인 탓에 전국적인 소요와 데모, 항의 집회 등이 벌어진 큰 사건이었지만 이들 사건에 연루됐던 경찰 대부분 '무죄 방면'됐다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FBI 통일 범죄 통계 보고서에 의하면, 2013년 정당방위란 이유로 경찰에 의해 시민이 목숨을 잃은 '정당살인(justifiable homicide)'은 461명에 이른다. 예상하듯 숨진 이들 대부분은 '흑인'들이다.

2013년 최고치를 기록한 미국 경찰의 정당 살인 상황
 2013년 최고치를 기록한 미국 경찰의 정당 살인 상황
ⓒ FBI's Crime in the US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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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교육·문화에서 소외되는 흑인

지난주 나이지리아 출신 한 고교생이 아이비리그 대학 8곳에 모두 합격했단 뉴스가 나왔다. 난민으로 이주해 와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다. 그 기사에 달린 한 댓글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흑인 동네를 지나면서 이런 곳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이 있다면 훨씬 더 인정해 줘야 한다 생각해요. 미래 대신 가난과 범죄만 가득한 그 곳의 아이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든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일은 뉴스에 나올 만큼 매우 흔치 않다.

미 교육부에 의하면 미 공립학교의 흑인 학생 비율은 18%, 하지만 한 번이라도 정학을 받은 학생 중 흑인의 비율은 42%라고 했다. 유색인종 중고등학교의 1/3은 화학과목 자체가 없을 정도로 수업의 질도 매우 열악하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교육정책 'Race to the Top'으로 학교간 경쟁이 심화되면 교사의 질과 학업 열정 모두 상대적으로 열악한 흑인 지역 학교의 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런 우려를 구체화시키는 통계가 지난해 8월 <이코노미스>지에 실렸다. 잡지는 최근 10여년 동안 나타난 우려할 만한 흑백 통계를 소개했는데, 그 중 흑인 가계 소득이 백인 가계 소득 평균의 58%에 불과하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나는 흑인 영아의 비율은 75%, 또 17세 흑인학생의 읽기 쓰기 능력은 13세 백인학생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통계에 의하면 마약 소지로 흑인이 체포될 확률은 백인의 3.6배나 됐다. 무엇보다 놀라운 통계는 30~34세 흑인 10명 중 한 명이 현재 감옥에 수감된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미국 흑인의 많은 수가 가난한 비혼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마약과 범죄에 노출되다 감옥에 간다는 것이다. 당연히 감옥에 다녀온 기록은 구직에 약점으로 작용하고, 이러한 악순환은 대물림 된다. 전체 미국 인구의 18%에 불과한 미국 흑인 비율에 비해 살인범죄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흑인이란 점은 그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인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여기에 흑인 지역에 대한 이중 잣대도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낳는다. 미국 법무부가 지난달 발표한 <퍼거슨 사태 최종 보고서>는 미주리 주 퍼거슨 시 경찰의 인종 차별이 극심했음을 보여준다. 퍼거슨 전체 인구의 흑인 비율은 67%지만 지난 2년간 체포 비율은 93%, 검문 당한 차의 85%가 흑인 운전자였다.

백인이 절대 다수인 시 정책 구성원들은 '흑인이 4년간 안정된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4년 임기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조롱 메일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 한편, 흑인들에게 걷는 벌금과 보석금은 퍼거슨 시의 부족한 재정을 메우는데 사용되고 있었다.  경찰과 법원 등 공권력에 대한 퍼거슨 흑인들의 오랜 분노가 마이클 브라운 사태로 폭발했다고 유추할 수 있는 보고서였다. 이는 흑인이 다수인 다른 남부 도시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형국으로 소요의 불씨는 어디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이처럼 문화, 환경, 교육, 복지,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흑인들은 쉽게 범죄에 노출된다. 태생적으로 열악한 경제적 조건과 선입견, 고정관념까지 더해 흑인들은 미국 경찰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억울한 목숨을 잃고 있다. 젊은 흑인 남성이 젊은 백인 남성에 비해 경찰의 총격으로 숨질 확률이 21배나 높다는 통계는 지금 미국 사회의 문제와 그늘을 설명해 주기 충분하다.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만이 바꿀 수 있다

"경찰은 살인을 멈춰라!"
"더 이상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지 마라!"

지난 3월 13일, 애틀랜타 CNN 본사 옆에 모인 일군의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매서운 꽃샘바람만큼이나 이들이 목소리는 마르고 거칠었다. 이들이 들고 있는 포스터엔 수십 명의 얼굴이 박혀있었다. 최근 미국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에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성별, 나이, 직업은 다양하지만 모두 유색인종, 절대 다수가 흑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터킹의 고향 애틀란타 한 복판에서, 여전히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시위대를 만나는 기분은 묘했다.

애틀랜타 CNN 앞에서 경찰의 유색인종 '학살' 규탄 시위대가 4월 14일 총파업을 제안하고 있다.
 애틀랜타 CNN 앞에서 경찰의 유색인종 '학살' 규탄 시위대가 4월 14일 총파업을 제안하고 있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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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의 대변인인 티 스턴은 계속되는 경찰 총격 흑인 사망사고의 원인은 바로 '무 처벌과 법의 관용'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작년 공식적으로 보고된 사건만 460건이 넘어요. 왜 매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법원이 살인 경찰들에게 자꾸 면죄부를 주니 살인을 무서워하지 않는 겁니다. 법은 어디 있는 건가요? 왜 감옥엔 흑인들만 가득한 건가요? 왜 법은 백인들에게만 인자한 건가요? 대부분의 살인 경찰은 처벌받지 않았어요. 우리는 이 사태를 '대량학살'이라 부를 겁니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응당한 처벌을 압박해야 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과자를 사 가지고 오던 17살 소년 트레이븐 마틴 사건의 경우 경찰은 가해자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여 44일간 체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7월에 있었던 재판에서 플로리다 주 배심원단은 가해자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미주리주 주지사는 18살 마이클 브라운 사건이 발생한 퍼거슨시에 주 방위군을 투입하며 시위대를 자극했다. 이들은 인질 구조 작전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기동대(SWAT)를 투입하고 전시에나 사용하는 탱크와 기관단총으로 시위대와 대치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세인트 루이스 대배심은 소년을 살해한 백인 경관을 소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뉴욕주에서 경찰에 의해 목 졸려 숨진 에릭 가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경찰들을 모두 불기소 하기로 결정했다.

법원의 이러한 결정 뒤에 또 다시 벌어진 백인 경찰의 흑인 총격 사망 사건, 그 충격은 생생한 동영상만큼이나 매우 크다. 이번에는 과연 백인 경찰이 살인죄로 기소될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당살인이 억울한 죽음이었을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미국 시민들의 분노가 높은 이유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피의 일요일'

애틀랜타 마틴루터킹 기념관, 재연한 셀마 행진 인형 사이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애틀랜타 마틴루터킹 기념관, 재연한 셀마 행진 인형 사이로 아이들이 놀고 있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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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7일,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한 남부 앨라바마주를 찾았다. '셀마 행진'에 함께 걷기 위해서였다.  두 딸과 아내와 장모까지 함께 한 이번 행진은 50년 전 흑인들의 참정권 쟁취를 위해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행진했던 그 날을 기리는 행사였다.

투표권을 요구하던 흑인들은 당시 에드몬드 페터스 다리 위에서 경찰의 무자비한 최루탄과 곤봉 세례를 맞아야 했고 그날은 '피의 일요일'로 불렸다. 그 피의 대가로 쟁취한 흑인들의 참정권은 흑인 대통령의 탄생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미국 사회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불합리한 사건들을 보며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평등,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자괴하게 한다.

대통령으로 행정부의 수장인 오바마 대통령의 고민은 누구보다 깊어 보인다. 셀마 행진 50주년 기념식장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은 말했다.

"…곤봉에 맞고 매질 당하고 최루 가스에 눈을 못 뜨고 짓밟히면서도, 피를 흘리고 뼈가 부러져도 정의를 향해 행진을 계속했던 평범한 미국인들의 용기를 축하하기 위해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퍼거슨 보고서의 기록은 인권 운동을 했던 시민에 대한 폭력과 무시와 매우 흡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퍼거슨에서 일어난 사건이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 모두 건국 당시의 평등 선언을 죽은 문장으로 만들지 말고 실천합시다. 지금 우리들은 모두 50년 전 행진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잊지 맙시다."

역사의 발전을 믿는 미국의 흑인 대통령은 우린 지금 힘차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번 총격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가 중요한 이유이다. 흑인이란 이름으로 대변되는 모든 소외 받는 이들이 미국 사회에 외치고 있다. "Black Lives Matter"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 편집ㅣ최유진 기자


태그:#사우스캐롤라이나, #퍼거슨, #트레이브마틴, #에릭가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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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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