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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다섯 살. 성인이 된 누군가는 '한창 좋을 때'로 기억하고 있을 시절이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그 의미와 상황이 좀 다른 듯합니다. 대입의 전초전인 '고입'을 앞두고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 혹은 부모들이 있고, 또 다른 아이들은 줄 세우기, 경쟁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길을 찾는 등 애를 씁니다. 올해로 창간 15주년을 맞은 <오마이뉴스>는 세계 각국 15세 아이들의 현재와 그들의 고민을 담은 기획 '세계 속 15세'를 몇 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학교 수업을 마친 한 소녀가 집으로 가는 길, 퍼붓는 빗속을 자전거로 내달린다. 집에 도착해 씻은 후 싱크대에 걸터앉은 소녀에게 아빠는 생강빵을 썰어 버터를 바른 후 건네며 "맛이 어떨 것 같아?"라고 묻는다. 방금 샤워를 마치고 수건을 목에 두른 볼이 약간은 뚱하니 부어있는 아이는 그 빵을 받아먹고 나서 "맛있는데"라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짓는다.'

네덜란드의 한 제과 브랜드에서 만든 빵 광고다. 한국이었다면, 이런 광고가 나올 수 있을까? 가끔 TV를 통해 보는 광고에서도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상당한 차이가 있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처리하는 방식 또한 한국과 비교했을 때 무척 다르다.

네덜란드에선 아침 등교 시간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그건 바로 하늘을 까맣게 수놓으며 함께 나는 철새 떼를 연상케 하는 아이들의 자전거 등굣길 풍경이다. 을 기차 속에서 지켜 본 이후, 아침 햇살의 싱그러움과 함께 내 머리 속 깊이 각인되었다.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이들. 궂은 날씨에도 15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이들도 많다.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이들. 궂은 날씨에도 15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등교하는 아이들도 많다.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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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1인당 하루 평균 자전거 이용량은 12km, 1인당 자전거 보유대수 1.2대.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는 이미 교통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네덜란드 부모들은 자녀들이 중등학교에 진학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을 데리러 가지 않는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런 과정을 겪으며 삶을 배우고 책임감도 강해질 것이라 여긴다. 

특히 네덜란드 교육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아이들이 만 12세에 진로를 결정한다는 점이다(관련기사 :  대학 갈래 말래? 그걸 12세에 결정하라니)

네덜란드에선 8년 과정으로 이뤄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시험을 치르는데, 시험결과를 토대로 기술을 배울지 대학교에 진학해 학자의 길을 걸을지, 기술을 가진 상급 매니저 등으로 활동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중등학교를 선택해 진학하게 된다. 물론 처음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교육을 받는 동안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학교에 진학했던 아이가 대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학업에 투자해야 한다. 진로 변경을 선택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만 12세 때 하는 진학 결정은 네덜란드 아이들에게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자기 발로 영재학교 나와 일반학교 들어간 아이

열 다섯 살인 헤르트는 학교생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물론, 진학시험인 시토(CITO)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어 영재학교인 짐나지움(gymnasium)을 선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도 놓았고 다재다능했던 헤르트는 부모의 두뇌를 닮아 좋은 머리를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그의 아버지는 수자원 공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어머니는 지역 사회에서 필요한 일을 도맡아 하는 열렬 활동가다.

헤르트의 누나 마리스카는 모두 짐나지움에 들어갔고 누나는 올해 네덜란드에서는 이름 난 대학에 진학한다. 헤르트는 짐나지움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만 15세가 된 올해 일반 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겼다. 책만 들여다보는 학교에서 헤르트는 즐겁지 않았다. 특히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던 헤르트는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방법이 없어, 힘든 한 해를 보냈다.

네덜란드 교육 체계에서는 일반 고등학교를 나오면 예술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학교를 옮긴 그는 지금 다양한 악기에 대해 공부하며 지역 또래 모임에서 활동 중이라고 했다.

"'너는 똑똑하다'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 학교를 선택한 것 같아요. 부모님과 선생님의 의견도 그랬고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재미도 너무 없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그냥 일반 학교로 옮기는 것이 낫겠다고 하셨어요.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 학교가 끝나면 알테즈(예술학교)에 진학할 생각입니다. 물론 짐나지움에서도 (예술학교에)진학할 수 있었겠지만 굳이 부담을 가지고 공부하긴 싫었어요. 지금은 방과 후에도 시간이 많아서 악기를 배울 수 있어, 정말 만족스러워요. 짐나지움도 수업은 일찍 마치지만 과제물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굉장했거든요. 학교를 옮기고 정말 행복해졌어요."

헤르트의 어머니인 잉그리트는 "진로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판단인데, 부모는 아이가 그 판단과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순간까지 잘 이끌어주어야 하는 길 안내자다"라며 "우리 부부는 아이가 자신의 진로와 삶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때가 된 이후 진로에 간섭하는 건 아이의 자유 의지를 꺾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장 왼쪽, 뮤직 세션에서 진행한 지역 행사에서 드럼을 치고 있는 헤르트
 가장 왼쪽, 뮤직 세션에서 진행한 지역 행사에서 드럼을 치고 있는 헤르트
ⓒ 잉그리트 반 데르 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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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네덜란드 아이들에겐 한 가지 선택지일 뿐

내가 자주 이용하는 미용실 원장 엘리느는 기술학교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그 가운데 둘째인 안느는 엄마가 하는 미용실을 이어 받아 운영하고 싶어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기술학교에 진학한 안느는 어릴 때부터 또래의 아이들보다 성장이 빨랐고 친구들 보다 생각이 앞섰다.

3년 전 처음 미용실에서 안느를 만났을 때, 그는 12살이었는데 나이답지 않게 조숙해 보였다. 당시 안느의 엄마는 자신의 미용실을 안느에게 줘야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 최근에 만난 안느는 VMBO라는 이름의 기술학교 진학을 앞두고 준비과정을 공부하는 학교에 진학했다.

"엄마가 미용실을 운영하셔서 졸업한 뒤 다른 친구들보다 직업 얻기가 훨씬 쉽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점이에요. 하지만 요즘엔 다른 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패션 디자이너가 되면 어떨까? 아니면 아트 디자이너를 하기 위해 진로를 바꿔 볼까? 등등을 생각 중이에요."

네덜란드 아이들에게 대학은 반드시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다. 모든 아이들이 아닌 어떤 아이들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선택하는 곳이기는 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며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한지를 알게 되고, 스스로 내린 판단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자란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말괄량이 안느가 어떤 직업을 갖게될지, 보고 있는 나조차도 궁금하다. 

야생 동물 관찰 수업에서 찍은 사진. 왼쪽이 안느
 야생 동물 관찰 수업에서 찍은 사진. 왼쪽이 안느
ⓒ 안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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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장애인이라 집이 늘 형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난 참 슬펐어요. 그래도 형이 워낙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을 행복하게 만드는 재주가 많아, 덕분에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뭐… 될 대로 되겠지요. 내년에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생각이에요. 돈을 좀 벌어보고 싶다는 늘 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년부터나 가능한 일이니까 열심히 일할 만한 곳을 물색 중입니다."

루트허르는 우리 집과는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아들의 친구 동생이다. 그의 누나와 우리 아들이 학교 친구인데, 루트허르는 가끔 나이를 속이고 형들을 따라 늦게까지 댄스장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숨어서 담배를 피기도 한다.

큰 말썽을 피우는 아이는 아니지만, 루터허르의 엄마는 막내인 루터허르가 2남 1녀의 자녀 중 가장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자식이라고 나와 함께 차를 마실 때마다 이야기 한다. 하지만 루트허르의 경쾌한 성격과 유머 감각이 뛰어난 말솜씨는 주변 이웃들에게는 늘 칭찬 거리다.

세계 역사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두 눈을 반짝이는 루트허르에게는 약점이 있는데 바로 수학이다. 수학 시간만 되면 머리까지 아프다는 루트허르. 하지만 네덜란드에는 이런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정이 따로 있다. 기본 수학을 이수하면 더 어려운 단계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역사엔 관심이 많지만, 수학은 꽝인 루트허르의 꿈은 역사 교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교사가 누릴 수 있는 방학 기간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곳곳의 사람들과 역사를 만나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진로를 파워포인트로 사업계획서를 쓰듯 정리해둔 진짜 차돌 같은 아이이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일본과 어떤 차이가 있죠?"라고 묻는 루트허르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며 이 녀석은 과연 어떤 미래를 갖게 될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루트허르(재능이 많은 아이이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루트허르(재능이 많은 아이이다).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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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가 아이들 행복지수 1위를 놓치지 않는 이유

네덜란드의 15세들은 다양하다. 정확한 목표 없이 떠도는 생각들을 이리저리 둘러대며 말하는 아이들도 있고,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그 곳으로 직진하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성장 과정에서 커다란 진통을 느끼는 아이들도 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겪는 과정을 이곳 아이들도 똑같이 겪는다. 가정과 지역사회, 국가는 아이들이 각자의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한다. 대부분 대학이 목표가 아닌 친구들이라, 공부에 목숨을 거는 일도 없다.

열 다섯 살에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네덜란드 두 청년의 이야기는 청소년들에게 특히 귀감이 되고 있다.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인 스벤 크라머(29·Sven Kramer)는 주니어 시절 이미 스케이트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고 15세 때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따겠다는 야심찬 인터뷰를 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결국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를 달성했고 스벤 크라머는 해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꿈이었던 스피드 스케이트의 세계 최강자 자리에 오른 스벤 크라머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을 정하고 그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한 귀감으로 전해진다.

또 한 사람은 요즈음 전 세계를 강타하는 일렉트로닉 뮤직 디제이계의 블루칩인 하드벨(27·Hardwell)이다. 4살에 클래식 피아노를 시작했고 13살에 자신의 음반을 낼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고전 음악에 대한 그의 애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14살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클럽의 디제이 활동을 시작했다. 미성년자였던 하드벨은 나이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의 재능이 워낙 눈에 띄어 수차례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15세의 하드벨은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세계 최고의 디제이가 되는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그리고 그 소년은 2013년, 2014년 연달아 세계 최고의 일렉트로닉 음악 디제이 자리에 올랐고 '꿈을 이룬 청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유니세프 조사결과
 유니세프 조사결과
ⓒ 유니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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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세계 등수 데이터 속 네덜란드는 꽤 많은 분야에 걸쳐 좋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해마다 1위를 놓치지 않는 부분이 바로 '아이들의 행복지수'다. 행복을 느끼는 관점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건강과 안전, 교육과 삶의 대한 위험도 그리고 복지와 생활환경 등이 아이들의 행복 지수의 판단 근거라고 한다면 네덜란드 아이들이 행복하다는 데 동의한다.

학생들의 학업 시수가 적은 나라, 학업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는 나라 등의 등수 데이터들은 아이들이 안정적이고 스트레스 없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자료다. 네덜란드의 15세 아이들은 마음껏 꿈꾼다.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도 하고 공부도 하고 진로를 바꾸기도 하고 때론 거친 반항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돕는 조언자인 부모와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교,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최대 가치로 인정해주고 지원해주는 든든한 국가라는 울타리가 있어 네덜란드의 15세 아이들은 행복하다.

나비가 되기 위해 누에고치 속에서 준비하는 애벌레의 가장 완숙한 모습, 그것이 15세의 네덜란드 아이들의 모습과 같다. 이 아이들은 네덜란드의 미래 모습을 만들 것이다.


태그:#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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