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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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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국민참여재판 과정에서 별다른 근거 없이 배심원 후보자들의 범죄경력을 조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민단체는 검찰이 정보인권을 침해하고, 국민참여재판의 공정성을 저해했다며 조만간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1월 13일, 검찰은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에 배심원 후보자 가운데 A씨의 기피신청을 냈다. 이날은 권문용 전 서울 강남구청장의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선정기일이다.

검찰의 기피신청 이유는  A씨가 여러 차례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는데도 '형사 처벌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 검찰은 A씨가 '배심원 후보자는 배심원 선정과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거짓 진술을 해선 안 된다'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아래 국민참여재판법) 28조 2항을 어겼다고 했다.

그런데 법원이 검찰과 변호인에게 미리 제공하는 배심원 후보자 정보에는 벌금형 전력이 없다. 국민참여재판법은 검찰에게 배심원의 범죄경력 등을 조회할 권한을 주고 있지 않다. 법이 배심원 결격사유로 정한 것은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등이다.

법원은 이 기준에 맞춰 1차로 후보자를 정한 다음, 배심원 선정기일 이틀 전까지 검찰과 변호인에게 그 명단을 보낸다. 여기에는 배심원 후보자의 이름과 성별, 출생연도가 쓰여 있다. 법이 허용한 수준은 이 정도다.

법원도 모르는 배심원의 전과, 검찰은 어떻게?

하지만 권 전 청장의 재판에서 검찰은 법원이 제공하지도 않은 벌금형 전과를 언급했다. 재판부가 모르던 내용이었으나, 국민참여재판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나온 것은 아니었다. 재판부는 '공식적으로 취득한 정보가 아니다'라며 검찰의 배심원 기피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별다른 사유가 없어도 특정 배심원 후보자를 거를 수 있는 '무이유부기피신청'으로 해당 후보자를 배심원에서 제외했다.

이름과 성별, 출생연도만 전달받은 검찰은 어떻게 A씨의 범죄 경력을 알아냈을까? 현재로선 검찰이 이 정보를 바탕으로 그의 범죄경력자료를 조회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검찰이 A씨의 벌금형 처벌 횟수까지 언급한 만큼, 이 정보를 인터넷 검색 등으로 우연히 알게 됐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검찰이 배심원의 범죄경력을 조회할 근거는 국민참여재판법 어디에도 없다. 다른 관련법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은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아래 형실효법)' 6조에 따라 범죄경력이나 수사경력을 확인할 수 있다. 단 범죄 수사나 재판, 보안업무 등에 법이 정한 경우에 해당할 때만,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수사나 재판을 받는 당사자가 아니다. 국민참여재판법이 배심원 결격사유로 정한 범위를 넘어선 범죄경력조회는 형실효법 6조를 너무 확대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범죄경력자료는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에 해당한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민감정보의 경우 당사자의 동의를 얻거나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한 경우에만 처리할 수 있으며 위반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했다. 그러나 검찰의 배심원 범죄경력조회는 근거조항이나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없다.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행위다.

'잘못된 관행'인가... "개인정보, 국민참여재판의 공정성 침해"

최근 이 사안을 접한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장여경 활동가는 6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목적에 부합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국가 감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범죄경력자료는 민감정보라 특별히 더 보호받아야 하는데 검찰이 편의적으로 (배심원의 범죄경력을) 검색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진상을 밝히기 위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조만간 고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검찰이 관행적으로 (배심원 범죄경력조회를) 해온 것 같다"며 "개인정보 침해고, 월권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범죄경력이라는 민감한 정보를 법률 근거 없이 들여다보고, 특히 배심원 결격 사유가 아닌데도 확인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또 "이게 관행이라면 더 무섭다"며 "'인권옹호'가 직무임에도 검찰이 여전히 국민들의 인권 보호에 신경을 안 쓴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의 배심원 범죄경력조회는 국민참여재판 제도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 한 교수는 "검찰이 배심원의 범죄경력 등 신상을 들여다본다면 배심원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검찰이 배심원에게)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다 알고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면, 배심원으로서 정상적으로 일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무형의 압박은 국민참여재판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침해하는 일"이라며 "검찰이 국민참여재판의 권위를 부정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태그:#국민참여재판, #배심원,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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