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 해리는 주점에서 주인공 에그시을 위협하는 동네 불량배들을 처리하기 위해 문을 잠그면서 말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 해리는 주점에서 주인공 에그시을 위협하는 동네 불량배들을 처리하기 위해 문을 잠그면서 말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 20세기폭스 코리아


영화 <킹스맨>을 보고 나온 관객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뭐냐고 묻는다면 혹자는 콜린 퍼스가 선보이는 교회 안에서의 액션(혹은 살육)신을 꼽을 것이고, 혹은 인간이 폭죽처럼 터져 오르는 그로테스크한 엔딩 장면, 혹은 특이한 갈고리 다리를 지닌 가젤(소피아 부텔라 역)이 선보이는 매력적인 액션신을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견없이 해리(콜린 퍼스)가 주인공 에그시(태론 에거튼)를 위협하는 동네 불량배들에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고 한 말을 꼽을 것이다. 해리는 중세식 영어인 이 대사를 의미심장하게 뱉으며 순식간에 불량배들을 처리한다.

이 대사는 영국 옥스퍼드 뉴 칼리지와 윈체스터 칼리지의 모토이자, 두 학교의 설립자인 위컴의 윌리엄의 모토이다. 말 그대로 매너가, 즉 세련된 교양이나 예절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대사는 마지막 장면에서 에그시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반복된다. 영화의 초반과 엔딩을 장식하는 이 대사는 결국 영화 <킹스맨>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가? 영국 신사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단순히 매너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러한 매너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인간답지 않다 혹은 더 나아가서 인간이 아니다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렇다면 이것이 영화 <킹스맨>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일까? <킹스맨>은 바로 이 매너라는 것의 허위와 위선적인 상류층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패러디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매너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관객에게 던진다.

민주주의가 태동된 나라답지 않게 여전히 신분제 사회인 영국에서는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이 철저하게 구분되며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 취미나 여가생활, 교육, 주거 등이 나누어져 있고 좀처럼 서로 섞이는 일이 없다. 영국의 비밀 첩보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킹스맨>에 등장하는 해리를 비롯한 여러 비밀요원들은 훌륭한 교양과 세련된 매너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값비싼 고급 와인을 즐기고, 정중한 몸가짐과 태도가 몸에 배어 있으며, 정확한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는 신사들이다. 무기 역시 신사들의 필수품인 만년필, 고풍스러운 우산 따위를 사용한다. 반면에 에그시로 대표되는 하류층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여자를 때리거나, 욕지거리와 저속한 말을 일삼는 거리의 불량배들로 묘사된다.

그리고 해리는 그런 하류층 불량배들에게 린치를 가하면서 "매너가 인간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때 해리가 말하는 매너는 19세기 비평가 매슈 아널드가 <교양과 무질서>에서 말했던 교양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널드는 당대 빅토리아 시기의 혼란상의 원인을 교양의 부재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하류층들에게 교양을 가르쳐서 계몽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가 말한 교양은 결국 상류층의 가치관과 매너들을 이야기했다.

이후 아널드의 주장은 지나친 엘리트주의이자 백인중심, 남성중심, 서구중심의 사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해리가 이야기 하는 '매너' 역시 이런 아널드식 교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매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층을 구분 짓는 수단이자 매너를 갖추지 못한 이들을 타자화시키고 배제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닌 '인간성 회복'

 영화 <킹스맨>의 해리와 에그시

영화 <킹스맨>의 해리와 에그시 ⓒ 20세기폭스 코리아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세련된 교양과 매너를 갖춘 상류층과 그렇지 못한 하류층 중에 과연 누가 더 도덕적이고 인간다운지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평민 출신인 에그시의 아버지는 수류탄으로부터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자신의 몸을 던져 희생한다. 그리고 에그시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영문도 모른 채 사고뭉치 문제아로 성장한다. 껄렁껄렁한 몸가짐과 말투를 사용하며, 스냅백을 쓰고 저지를 입고 다니는 에그시는 그런 귀족들의 매너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죽은 에그시의 아버지의 옛 동료인 해리는 문제를 일으켜 경찰에게 잡힌 에그시를 풀어주며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킹스맨(영국의 비밀 첩보국 비밀요원)에 지원하도록 독려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충실한 집사역을 맡았던 마이클 케인은 킹스맨의 수장 아서로 등장하는데, 그는 에그시 아버지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에그시를 비천한 출신이라며 탐탁치 않아 한다.

킹스맨 선발을 위한 테스트 중에도 귀족 출신 경쟁자들은 제대로 된 대학을 나오지 못한 에그시를 끊임없이 조롱하고 따돌리며 훼방을 놓는다. 그러나 훌륭한 매너를 갖춘 상류층들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들의 목숨과 안위만을 챙기다가 테스트에서 떨어지게 된다. 결국 최종까지 남는 것은 그들이 따돌리던 하류층인 에그시와 그런 에그시를 따돌리지 않고 챙겨주던 록시 두 사람뿐이다.

해리는 에그시에게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1964)>와 <귀여운 여인(1990)>을 아느냐고 질문한다. 여기서 영화 <킹스맨>의 메시지는 다시 한 번 드러난다. 각각 오드리 햅번과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했던 이 두 영화는 표면상으로는 남자를 통해 신분 상승한 두 여인을 그린 신데렐라 영화로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위선적이고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주인공들이 순수한 여주인공들을 만나 인간성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컨대 <귀여운 여인>의 남주인공인 에드워드 루이스(리처드 기어)는 어려움에 빠진 기업을 싸게 사들인 다음 쪼개서 팔아 이득을 남기는 비정한 기업사냥꾼이다. 그러나 순수한 비비안 워드(줄리아 로버츠)를 만나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잃어버린 순수와 인간성을 다시금 회복하며 매입하려던 기업을 살려주기로 결정한다.

영화 <킹스맨> 역시 위의 두 영화처럼 일견 희망 없이 살아가던 하류층인 에그시가 해리를 만나 멋진 킹스맨으로 신분 상승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위선적이고 비인간적인 상류층에 대한 고발, 인간성 회복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이다.

진정한 매너의 의미

미치광이 천재 악당 발렌타인(사뮤엘 L. 잭슨)은 점차 고갈되고 뜨거워져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며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훌륭한 교양과 세련된 매너를 지닌 킹스맨의 수장 아서나 혹은 기업가, 정치가, 상류층들은 이 주장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동조한다.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치인이나 왕족들이 앞장서서 기꺼이 발렌타인을 지지하는 모습이나, 자신과 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주를 죽여도 상관없다는 스칸디나비아 정치가의 모습에서 한국의 정치인들이 겹쳐 보이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 <킹스맨>의 발렌타인

영화 <킹스맨>의 발렌타인 ⓒ 20세기폭스 코리아


물론 그 잔혹한 학살의 대상 범주에서 자신들은 제외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여기는 그들에게 매너를 갖춘 자신들은 존엄성을 갖는 인간이지만, 매너를 갖추지 못한 하류층과 빈민들은 제거되어도 무방한 대상에 불과하다. 이런 귀족과 정치인들 그리고 기업가들의 위선과 아이러니는 학살이 시작될 시간을 기다리며 파티를 열고 술을 마시며 기뻐하는 장면에서 그 극에 달한다.

아서처럼 적극적으로 발렌타인에게 동조하거나 가담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방 안에 유폐된 스칸디나비아의 틸디 공주(한나 엘스트롬)처럼 무기력하다. 국경을 넘나드는 인공위성의 전파와 생화학무기 앞에 킹스맨이 지닌 우산이나 만년필이나 구두 따위의 고풍스런 무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영국 신사다운 냉철한 이성과 절제력, 부단한 훈련과 극기로 이루어진 강인한 육체와 정신 역시 초라할 뿐이다.

해리는 발렌타인의 음모를 추적하기 위해 미국의 한적한 교회로 가지만 발렌타인의 함정에 빠져 그의 실험에 이용당한다. 해리의 수많은 무기들과 강한 육체, 화려한 기술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그리고 영국의 본부에서 그걸 지켜보는 다른 킹스맨들은 커다란 집무실에 앉아 무기력하게 한숨지을 뿐이다.

발렌타인은 자신만이 옳다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청바지를 즐겨입고 자유분방한 발렌타인의 캐릭터나 그의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은 애플의 전 CEO였던 고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킨다. 발렌타인은 자본과 기술의 힘을 바탕으로 전 지구적인 재앙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재앙을 막는 건 매너 좋은 상류층이 아니라 평민 출신 에그시였다.

에그시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술집에 있는 불량배들과 다시 맞닥뜨린다. 문을 잠그며 해리가 그랬듯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때 말하는 에그시가 말하는 '매너'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해리가 말했던 '매너'와는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그것은 겉으로는 인간다움과 예절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실은 위선적이고 가진 자만을 위한 허례로서의 매너, 혹은 계급을 구분짓고 타자를 배제하는 수단으로서의 매너가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매너,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대신 에그시의 아버지와 에그시가 그랬듯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로서의 매너를 의미한다.

영화 <킹스맨>은 에그시의 입을 통해 그러한 매너야말로 진정한 매너이고, 인간을 비로소 인간으로 만드는 매너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말은 이렇게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매너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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