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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이 강한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웬디 셔먼의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정부가 지난 3년간 추진했던 아시아 회귀정책은 아직까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임기가 2년도 안 남은 오바마 정부로서는 성과 만들기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흔들리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

미국의 지역·양자 외교를 총괄하는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이 2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미국의 지역·양자 외교를 총괄하는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이 2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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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정책이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는 것은 한일관계에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시아 회귀정책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시절부터 일본에 대해 두가지 길로 접근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전시 성노예'라고 강력히 비판하는 한편,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화에 대해서는 미일동맹차원에서 지원했다. 한일관계를 결합시켜서 아시아 회귀정책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일관계는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일본은 2차대전의 전범이다. 올해 2차대전 종전 70주년과 한일협정 50년을 계기로 전쟁범죄를 반성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일본의 군사화에 대한 규탄이 한국과 중국에서 확산될 조짐이다.

2015년 1월에 한중일 3국을 순방한 웬디 셔먼 차관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27일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카네기평화재단에서 웬디 셔먼은 자신의 아시아 순방에 대해 언급하였다. 연설의 키워드가 '종전 70주년'이었다. 한일협정 50년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웬디 셔먼이 언급했던 'VE-Day'(Victory in Europe Day)란 유럽이 2차대전에서 나치와 싸워 이긴 승전기념일을 뜻한다. 러시아에서는 5월 9일을 승전일로 기념하는데, 올해 'VE-Day'를 맞이해서 이미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하였다. 미국은 'VJ-Day'(Victory over Japan)라고 해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9월 3일을 승전일로 기념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9월 3일에 대대적인 승전개념행사를 할 예정이다.

1월에 한중일 3국을 순방한 웬디 셔먼으로서는 종전 70주년을 맞아 일본이 일방적으로 고립될 수 있는 상황을 직감했을 것이다. 일본을 아시아 회귀정책의 발판으로 삼고 있는 오바마 정부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2015년에 아시아 회귀정책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정책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세하게 변화하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

웬디 셔먼의 연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일본에 대해 두 가지 길로 접근했던 그동안의 정책(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비판과 일본 군사화에 대한 지원)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아시아 회귀정책의 성공을 위해서이다.

웬디 셔먼의 연설은 과거사에 대해서는 양비론으로 물타기를 하고, 일본의 군사화에 대한 지원은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2차대전 종전 70년과 오바마 2기 3년차라는 시점이 아시아 정책에 대한 미국의 미세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 오는 4월 아베총리가 사상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변화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를 비판하면서 '값싼 박수'를 받는다는 웬디 셔먼의 말에는 2차대전 종전 70주년행사가 '값싼 박수'를 받기 위한 행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중국은 2차대전 승전 70주년을 대대적으로 치를 준비를 하면서 남북한과 일본의 정상도 초청할 것이다. 이 행사는 필연적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은 일본의 국방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웬디 셔먼의 발언에는 '미일 동맹에 의해서 강화되는 일본의 군사화에 아시아 국가들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웬디 셔먼은 오히려 일본 사람들이 중국 군사력의 불투명한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군사력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의 재무장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간접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일본의 군사화는 역사적으로 지속적으로 한반도를 대상으로 해왔다. 그런데도 웬디 셔먼은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했다. 미국 정부의 이런 흐름을 일찌감치 파악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본의 재무장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동아시아 특수성을 간과한 웬디 셔먼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월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월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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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셔먼은 2차대전 이후 만들어진 아시아와 유럽의 질서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간과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독일은 전쟁범죄를 사죄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사과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범죄를 사과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영화를 그리워하면서 보통국가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아시아인들에게는 일본의 사과 없는 보통국가화는 재침략의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다는 악몽과 다름없다.

웬디 셔먼이 한국과 중국도 동아시아 과거사 문제에 대해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것은 과거사를 반성하고 있지 않는 일본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발언이다. 한국 국민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발언이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인들이 웬디 셔먼의 발언을 비판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웬디 셔먼의 발언은 수많은 돈을 뿌린 일본의 막강한 대미 로비의 효과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의 대미 로비력에 대한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오바마 정부의 대아시아 정책이 일본의 로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도 워싱턴에 대한 로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로비력이 가진 효과를 과대평가하면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미세한 변화를 간과하게 된다.

웬디 셔먼은 미국 국무부에서 서열 4위이다. 미국 국무부는 우리와 달리 장관 밑에 2명의 부장관과 6명의 차관이 있다. 6명의 차관 가운데 정무차관이 수석이므로 셔먼은 장관과 두 명의 부장관 다음 서열이다. 하지만 2명의 부장관 가운데 토니 블링크는 작년 11월에 임명되었고 국무부 경험이 없다. 다른 한 명의 부장관은 회계와 사무담당 부장관으로 오바마 정부 시절 처음으로 임명하였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웬디 셔먼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국무부와 인연을 맺어왔다. 그래서 웬디 셔먼은 서열 4위 이상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국무부 정무차관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조정하는 국가안보회의(NSC)의 차관급회의(DC)의 정식 멤버이다. NSC 차관급 회의(DC)에서는 미국대외정책의 기초 자료를 입안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핵심고리(Linchpin)라고 부른다. 따라서 웬디 셔먼의 발언은 미국 정부 내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 오마바 아시아 정책 성공의 핵심키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정책'(Rebalance to Asia)이라고도 불리는 정책은 2011년 이후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정책으로 자리잡았다. 애초에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아시아 지역에서 자유로운 무역질서를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성장으로 미국 내에서 중국의 성장에 대해 우려를 갖는 '중국 포비아'(Sino Phobia)와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또 미국은 전통적으로 대륙에서 패권국가가 등장하면 미국의 이익을 위협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2차대전 이후 대소련 봉쇄정책은 이러한 인식이 배경이었다. 결국 아시아 회귀정책은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중국에 대한 견제를 핵심으로 하는 정책으로 변화되었다.

하지만 2013년도부터 미국 정부가 10년간 자동예산삭감조치(시퀘스터)를 취하게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아시아 회귀를 추진할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자동예산삭감조치에 따라서 2021년까지 국방예산 6000억 달러를 줄여야 한다. 미국 정부 내에서조차 재정적인 문제로 아시아 회귀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염려가 나올 지경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지원하면서 한미일 삼각군사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대중국 견제의 발판으로 삼았다. 한일관계를 결속시키기 위해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은 대북정책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때문에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의 차원에서 한미일 삼각관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웬디 셔먼의 발언 이후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한일관계의 개선책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오바마 정부 임기 내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미국이 희망하는 한미일 3국협력관계 구축은 불가능하다. 아시아 외교의 성과를 낼 것인가 아니면 성과 없이 임기를 마칠 것인가 하는 갈림길을 향해 오바마 정부가 달려가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임기말에 아시아 외교에서 성과를 내려고 한다면 한일관계를 결합시키는 게 아니라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북일관계가 개선된다면 동북아시아의 냉전 질서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질서 구축 과정에서 미국의 국익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 미국 행정부는 임기말에 정책 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2년차 임기 3년을 맞이한 부시 정부도 2007년에 대북정책을 전환해 6자회담을 활성화시켰던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ibd.or.kr)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이 글을 쓴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은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과 통일맞이 정책실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웬디셔먼, #오바마, #아시아회귀정책, #아시아재균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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