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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13년. 결혼 초기 비슷했던 생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확인하면서 '다르게 바라보기'를 서로의 관점에서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르게 들리지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 남자 이야기는 남편 지용민 시민기자가, 그 여자 이야기는 아내 박보경 시민기자가 썼습니다. - 기자 말

[그 남자 이야기] 신도림역 '괴물' 숭배자는 다름 아닌 내 모습

지난 토요일에 가족과 함께 식당에 갔다. 메뉴를 보던 중 시끄러운 소리에 주위를 둘러봤다. 저 너머 테이블에 앉은 유치원생이 스마트폰으로 만화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 역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신성한 무언가를 보는 듯, 아이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그 덕에 부모들은 편안한 모습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옆 테이블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중학생으로 보이는 두 자녀와 함께 앉아 있었다. 도란도란 가족 간 대화? 없었다. 엄마가 메뉴를 고르고, 음식이 나오는 20여 분 동안 두 아이는 거의 말이 없었다. 스마트폰만 볼 뿐이었다. 또 다른 우리 옆 테이블 역시 중년의 남녀가 마주 보고 앉았지만 역시 손에 든 스마트폰만 주로 볼 뿐이었다.

문득 지난해 여름 신도림역에서 경험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신도림역에서 하차했다. 문이 열리자 지하철을 타기 위해 양옆에 두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은 지금까지도 내게 괴기스럽게 기억된다. 서 있던 모두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한밤중 환히 빛나는 20여 개의 액정은 내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나는 어떠한가.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 놓인 스마트폰을 들고 이메일과 간밤의 뉴스를 확인한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같다. 괴물과도 같은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나의 일상은 반복됐다. 신도림역에 두 줄로 서 있던 스마트폰 숭배자는 다름 아닌 내 모습이었다. 나는 내 모습에 전율했던 것이다.

'괴물'에 집착하게 된 아이들의 모습... 변해야 한다 

신도림역 사건 이후 '괴물'에 집착하는 사람들 모습에 주목하면서 나는 놀랄 만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이 괴물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스마트폰을 보지 않을 때면 아이들은 호시탐탐 내 스마트폰을 노렸다. 혹시라도 허락해줄까 싶어 만지작 만지작을 반복하지만 매번 힘없이 돌아설 뿐이었다. 올해 8살이 된 큰 애는 조금 더 배짱 좋게 초등학교 입학 선물 겸 3월에 있는 생일 선물로 "전화기 사주세요"를 되풀이하고 있다.

술자리에서 들었던 어느 집 얘기가 생각났다. 40대 부부만 사는 집에서 저녁을 먹은 지인의 얘기다. 저녁을 먹은 후 잠시 늘어지는 분위기였다. 한방에 있던 남편은 컴퓨터를, 부인은 TV를 보면서 가끔씩 '카톡'을 하는 모습이었단다. 이 지인도 TV를 보며 '카톡'을 했기에 그들의 모습은 평범한 일상처럼 받아들여졌단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아~ 청소는 네가 좀 해!" 하면서 소리를 질러 당황했다고 한다. 그 부부는 한 방에서 카톡으로 대화를 했던 것이다.

왼쪽이 지금 사용하는 폴더폰. 카톡 등 일부 스마트한 기능이 있다. 직전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오른쪽)과 비교할 때 화면 크기가 현저히 작다. 손에 쥐고 보기도 어렵다. 그런 이유로, 사용 석달째 "대만족"
▲ 폴더폰과 스마트폰 왼쪽이 지금 사용하는 폴더폰. 카톡 등 일부 스마트한 기능이 있다. 직전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오른쪽)과 비교할 때 화면 크기가 현저히 작다. 손에 쥐고 보기도 어렵다. 그런 이유로, 사용 석달째 "대만족"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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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나는 괴물과도 같은 스마트폰으로부터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2년 약정이 끝나는 12월에 폴더폰으로 기기를 변경하기로 말이다. 점점 더 스마트하게 진화하는 전화기를 걷어차고 나는 예전의 통화와 문자만 주고받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로 했다. 결국 나는 석 달 전 전화기를 바꿨다.

내가 스마트폰으로부터 해방되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장난 혹은 놀이가 많아졌다. 대화가 더 많아진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더불어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출·퇴근하는 2시간 가량 나는 책을 읽는다. 매월 3만 원 가까이 하던 스마트폰 기기값을 절약하게 된 것과 비싼 요금제를 아낄 수 있게 된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경제적 이득이다.

다시 지난 토요일 식당. 시끄럽던 소리에 주위를 둘러봤고 모든 아이들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음을 확인했다. 내 앞에 앉은 두 아이는 전화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됐다. 석 달 동안 아빠가 전화기를 전화기로 대하니 아이들 역시 그러했다. 이제 나는 누군가 돈을 준다며 스마트폰을 사용하라고 해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 여자 이야기] 아이에게 '키즈폰' 대신 '가족 책상'을 선물하니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는 며칠 전부터 선물로 '키즈폰'을 사주면 안 되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몇몇 친구들은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키즈폰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은 사주는데 왜 엄마는 사주지 않느냐고 제법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길래 엄마마다 생각이 다른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뒤로도 아쉬운 듯 "엄마마다 생각이 다른 거죠?"라고 여러 번 확인했다.

사실 내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준비한 것은 책상이었다. 크고 튼튼한 책상. 우리 집 거실에 놓을 수 있는 책상을 마련하고 싶었다. 우리 집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그 자리에는 신혼 때부터 끌고 다닌 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즉, 거실이 서재인 것이다. 그 중에 하나씩 골라 들고 아이들과 모여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책상을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아이를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가 소위 명문대학교에 진학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혹시라도 운이 좋아 명문대에 입학한 들, 그로 인해 행복하게 살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그 불확실한 확률을 위해서 아이가 느껴야 할 오늘의 행복을 뺏을 권리가 부모에게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오늘의 행복'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책상을 찾아 나섰다. 남편과 을지로 가구 거리를 헤매고 다닌 게 몇 번이었지만, 마음에 쏙 드는 책상을 만날 수가 없었다. 덕분에 근처에 위치한 맛있는 냉면집을 찾아냈지만 애당초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많은 고민 끝에 가족책상을 구입해 거실 한 가운데 놓았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큰 아이는 책상에 앉는 버릇을, 누나 바라기 둘째 역시 책상에서 누나를 바라본다. 둘째의 보금자리는 책상 아래다.
▲ 거실의 중심, 책상 "아이들이 좋아할까?" 많은 고민 끝에 가족책상을 구입해 거실 한 가운데 놓았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큰 아이는 책상에 앉는 버릇을, 누나 바라기 둘째 역시 책상에서 누나를 바라본다. 둘째의 보금자리는 책상 아래다.
ⓒ 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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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홍익대 주변에서 가구를 맞출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남편과 홍대로 향했다. 역시 홍대는 예술의 거리였다. 단번에 마음에 드는 책상을 만났고, 제작에 들어갔다. 책상은 2주를 기다려야 만날 수 있었다. 한동안 못 만난 애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책상을 기다리는 그 시간은 설레고 기대됐다.

책상이 도착한 날 아이들은 눈 오는 날의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왜 아이들은 기쁨의 표시를 꼭 '달리기'로 하는 것인지 지금도 이해는 되지 않는다. 의자까지 내려놓고 일이 마무리 되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큰 아이는 곧바로 책을 들고 와 자리를 잡았다. '누나 바라기' 둘째는 그 근처에서 호시탐탐 누나를 탐색했다. 

가족 책상 사용 석 달째, 그 놀라운 변화

책상을 사용한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우리 가족은 책상을 120% 활용하고 있다. 우선 남편과 나의 책상 활용도가 높다. 남편이 일찍 들어온 저녁이면 마주 앉아 책도 읽고, 그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남편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 나는 아이들과 지냈던 일을 나누며 낄낄거린다. 책상 한 귀퉁이에는 그동안 사놓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쌓아놓고 있는데 저녁에 마주 앉아 책을 보게 되니 그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 큰 아이도 옆 자리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린다. 우리가 보기엔 똑같은 그림인데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그렸다며 어떤 것이 더 잘 그렸는지 물어본다. 책상 위에서 볼 수 없는 둘째는 책상 아래를 독차지 하고 있다. 온갖 종류의 '로보트'로 책상 아래를 요새로 만들어 나름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어디선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틀림없이 둘째의 '로보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자식 문제를 놓고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성적과 입시' 등의 문제가 아직 먼 일이라 쉽게 생각하고 이야기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문화'를 선물하고 싶다. 가족과 함께 있는 문화, 가족과 함께 책 읽는 문화, 가족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문화를 자연스레 만들어 주고 싶다. 그게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내 생각이 흔들림 없기를, 팔랑거리는 내 귀가 이번만큼은 굳건하게 닫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폴더폰,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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