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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다섯 살. 성인이 된 누군가는 '한창 좋을 때'로 기억하고 있을 시절이지만 요즘 아이들에겐 그 의미와 상황이 좀 다른 듯합니다. 대입의 전초전인 '고입'을 앞두고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 혹은 부모들이 있고, 또 다른 아이들은 줄 세우기, 경쟁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길을 찾는 등 애를 씁니다. 올해로 창간 15주년을 맞은 <오마이뉴스>는 세계 각국 15세 아이들의 현재와 그들의 고민을 담은 기획 '세계 속 15세'를 몇 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캄보디아 중학교 교실 전경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공립중학교 수업시간 모습
▲ 캄보디아 중학교 교실 전경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공립중학교 수업시간 모습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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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외곽 변두리에 사는 15세 중학생 나릇은 첫닭이 울기도 전에 어머니가 끓여준 쌀죽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한 후 서둘러 책가방을 챙긴다. 문밖에선 나릇의 아버지가 낡은 80cc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있다. 나릇이 3살 아래 여동생과 함께 오토바이 뒷자리에 몸을 실으면 먼지 낀 오토바이 엔진이 힘겹게 두 바퀴를 끌기 시작한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각, 먼지가 폴폴 날리는 비포장길을 따라 복잡한 골목길 여기저기를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4차선 신작로가 나왔다. 이제부터는 엉덩이도 덜 아프다. 다시 아스팔트길을 따라 시속 40km로 10분쯤 달리니, 나릇이 다닌다는 중학교가 나왔다. 나릇은 뒷자리에서 내리자마자,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쏜살같이 교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릇이 교문 안으로 사라진 시간은 오전 6시 35분.

동이 튼 지 얼마 안 된 이른 시각이었지만, 교실마다 나릇 또래 반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릇네 반 교실 학생 수는 대략 30~40명 정도로 남녀 아이들이 한 반에 섞여 있었다. 교실은 낡고, 책상마저 지저분했다. 현지에서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그나마 나릇이 다니는 이 학교가 시내 공립중학교 중 시설이 나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오전 7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도 10분이나 지난 후에야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1교시 수업은 크메르어 시간. 선생님이 낡고 빛바랜 칠판 위에 뭔가 쓴 후 설명을 하는데 앞줄에 앉은 몇몇 학생들만 집중할 뿐이었다. 선생님은 떠드는 아이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고 몇 마디 주의를 주지만, 학생들은 마지못해 조용히 하는 척만 할 뿐이다. 나릇은 칠판에서 눈을 한시도 떼지 않고 수업에 열중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4시간 수업

나릇과 반 친구들 오전 11시 학교수업이 끝난 후 나릇(왼쪽)과 같은 반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제안을 했더니, 장난기로 똘똘 뭉친 이 녀석들은 교실로 다시 들어와 갑자기 공책을 펴더니 열심히 공부하는 흉내를 내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 나릇과 반 친구들 오전 11시 학교수업이 끝난 후 나릇(왼쪽)과 같은 반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제안을 했더니, 장난기로 똘똘 뭉친 이 녀석들은 교실로 다시 들어와 갑자기 공책을 펴더니 열심히 공부하는 흉내를 내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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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공립중학교의 정규수업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4시간 수업이 고작이다. 오전반 수업은 11시쯤 끝나기 때문에 도시락을 안 싸 간다. 초중고학교 교실이 부족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업시간이 적어서 배우는 과목도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규 교과목이 13개나 됐다. 그런데 체육과 음악, 미술수업은 따로 하지 않았다. 이 학교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뛰어노는 것으로 체육수업을 대신했다.

교사들의 임금수준도 턱없이 낮은 편이다.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우가 따르지 않으니, 질 높은 수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캄보디아 학부모들의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도 굉장히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학교수업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학부모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달에 한화로 약 15만 원 남짓의 박봉을 받는 교사들이 다른 직장을 구하지 않고 교단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학부모들은 고마워하는 눈치다.

대다수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업을 사설학원에 의존하는 편이다. 일부 실력 있는 교사들이 부잣집 개인교사나 사설학원 강사로 일하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이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없다.

15살 나릇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생활에 대체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릇의 입에서 나온 반응은 의외였다. 나릇은 성적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정도의 차이일 뿐 스트레스 받지 않고 공부하는 학생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 같아 조금 민망했다. 화제를 바꿔, 학교에 오면 좋은 점이 뭐냐고 묻자 나릇은 "친구들이 많아서"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그 순간만큼은 역시 열  다섯 살 소년다웠다.

중학교 다니는 나릇, 캄보디아에선 운 좋은 편

수업이 끝났는데도 교정에선 나릇 또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난치며 놀았다. 그중에는 나릇의 반 친구들도 4~5명 있었다. 친구 녀석들은 기자가 자신의 친구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모습이 못마땅한 듯했다. 몇 가지 질문이 끝난 후 기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나릇은 기다리던 친구들과 제기차기 같은 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과 같은 순진함이 묻어날 만큼 나릇과 친구들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상상력과 잠재능력을 키워주는 그런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하는 캄보디아의 교육현실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나릇이 평생 남을 좋은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사실 중학교를 다니며 마음껏 공부하고 놀 수 있는 나릇과 같은 경우는 캄보디아에서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에 가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학교가 너무 멀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는 한국과 같이 초등 6년, 중고등 각각 3년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현지 언론과 NGO단체들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률은 95%로 매우 양호한 편이었지만 중학교 입학률은 32%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는 최근 7학년~9학년에 해당하는 캄보디아 청소년 중 10% 정도가 아동 노동자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 동티모르 다음으로 높은 수치인데, 국제인권단체들이 미성년자 노동에 대한 규제감독을 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대한 감시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네스코 자료에 따르면 가족들로부터 학업포기를 강요받고 있는 청소년도 2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부모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유로 중학생 나이의 여자아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릇과 친구들 나릇의 친구들은 대부분 학교 수업후 학원에 다닌다. 나릇도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다.
▲ 나릇과 친구들 나릇의 친구들은 대부분 학교 수업후 학원에 다닌다. 나릇도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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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릇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사탕을 만들어 인근 유원지에 내다 팔며 3남매를 키우고 있다. 어릴 적 직업학교에서 유리세공기술을 배운 적이 있어 유리 대신 색소를 입힌 물엿으로 보기에도 좋고 근사한 사탕을 녹여 판다. 어머니는 부업삼아 동네에서 조금만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지만, 아버지는 중졸의 학력을 갖고 있었다.

나릇의 아버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 킬링필드를 겪으며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만큼은 무척 높아 보였다. 그는 열심히 가르쳐 세 자녀 모두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나릇보다 5살 많은 형 삐랏은 아빠의 그런 기대에 나름 부응한 케이스다. 삐락은 나릇이 다니는 같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대학교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있다. 나릇의 아버지는 삐랏이 어릴 때부터 성실하고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 장학금도 받는다고 자랑했다. 나릇도 큰 형처럼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아버지 소망처럼 좋은 대학도 가게 되고 졸업 후, 월급을 많이 주는 번듯한 직장도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캄보디아 동네 사설학원, 하루 한 시간에 380원

나릇은 커서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이다.  나릇의 학교 성적은 대략 상위권이다. 담임은 나릇이 지난 학기에 32명 중 4등을 했다고 말했다. 별도로 개인과외를 받거나 사설학원을 다니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면 꽤 잘하는 듯했다. 나릇의 같은 반 친구들 중 절반 정도는 동네 학원을 다니고 있고, 일부 잘사는 집에서는 개인교사를 두고 공부한다고 담당 선생님은 귀띔했다.

동네 사설 학원은 하루 한 시간 수업료가 한화로 380원 정도다. 캄보디아에선 수업료를 한 달 단위가 아닌 하루치로 계산해 매일 낸다. 나릇의 친구들은 가정 형편에 따라 매일 1~4시간씩 학원수업을 따로 받고 있었다. 영어와 수학 등 주요 4과목을 들을 경우 하루에 한화 1600원 정도가 필요하다. 한 달로 계산하면 대략 3만 원이 조금 넘는다.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고급영어학원 월 수업료가 대략 한화 11만 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프놈펜 시내 평범한 중산층에게 학원비 3만 원은 그리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나릇의 아버지에게는 한 과목 학원비조차 부담스럽다. 한화로 22만 원 남짓한 한 달 평균 수입으로는 생활비는 고사하고, 큰 아들 대학등록금도 대기 벅차기 때문이다.

나릇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 이상 부모를 조르지 않는다. 얼굴은 장난기가 가득한데 철은 벌써 든 모양이다. '학원을 다니고 싶냐'라고 묻자 나릇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후 자전거나 오토바티을 타고 학교를 나서는 학생들 캄보디아도 교육열이 뜨거워 수도 프놈펜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중 절반 이상은 학원을 다닌다고 학교측은 설명해주었다.
▲ 수업이 끝난 후 자전거나 오토바티을 타고 학교를 나서는 학생들 캄보디아도 교육열이 뜨거워 수도 프놈펜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중 절반 이상은 학원을 다닌다고 학교측은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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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수도이자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프놈펜에선 요즘 영어교육이 대세다. 프놈펜 시내에는 영어로 모든 수업을 진행하는 국제학교들도 있다. 한 달 평균 수업료가 100~200만 원(한화)이나 되는 비싼 학교들도 있다. 그런 학교에는 상위 5% 이내 상류층이나 주재원 자녀들이 주로 다닌다. 국제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상류층 아이들은 현지 대학을 가는 대신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유학코스를 밟게 된다. 유학을 다녀오면 졸업 후에 고국에 돌아와서도 더 좋은 직장을 갖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 나라에 진출한 대부분의 외국계 기업들은 영어실력이 뛰어난 유학파를 더 선호한다. 따라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도 유학파에게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개천에서 용 나듯 현지 대학을 졸업하고도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나릇의 부모도 내심 그런 기대와 믿음으로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나릇 아버지도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가 필수라는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나릇을 다른 아이들처럼 영어학원에 보내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올해 말쯤 여유가 생기면, 나릇과 나릇의 여동생을 영어 학원에 꼭 보낼 예정이라고 다짐하듯 기자에게 말했다.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이 말은 듣고 있던 나릇도 순간 기자를 향해 알듯 말 듯한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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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프라자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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