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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에세이 <내 생애 단 한 번>에서 읽은 내용이다. 숨 가빴던 한 학기가 끝나고 장영희 교수는 수업 자료들에 '2000년 1학기'라는 꼬리표를 붙여 파일 박스 안에 집어넣다가 문득 손을 멈췄다. 파일 박스 속에는 '1985년 1학기'에서 시작해 '1999년 2학기'까지, 서른 개의 폴더가 차곡차곡 꽂혀 있었다.

귀국하고 젊은 여선생으로 시작해 강단에 선 지 15년. 어느덧 흘러간 세월이 실감나 장영희 교수는 허무하고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 세월 동안 장영희 교수만 나이 든 것은 아니었다.

"오후에는 신촌에서 우연히 몇 년 전에 졸업한 남학생을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대뜸, '선생님도 늙으셨네요'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도 늙으셨네요' 매우 비외교적인 말이지만, 따지고 보면 재미있는 말이기도 하다. 즉 선생님은 안 늙으실 줄 알았는데 늙었다는 실망의 말도 되고, 아니면 나도 늙었는데 선생님도 늙었다는 안도의 말도 된다. 아마도 전자 쪽에 속하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심 놀란 것이, 두세 살짜리 여자 아이를 안고 예쁜 아내를 동반한 그 졸업생은 어느덧 몸도 불고 머리도 벗겨지기 시작하여 그야말로 '아저씨'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늙으면 지혜로워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생애 단 한 번>(장영희 지음 / 샘터사 펴냄 / 2010.01 / 1만원)
 <내 생애 단 한 번>(장영희 지음 / 샘터사 펴냄 / 2010.01 / 1만원)
ⓒ 샘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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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란 단어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장영희 교수가 말한 제자의 모습이 바로 내 친구들 모습 같았다. 내 친구들도 어느새 그야말로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몸도 불고 머리도 벗겨진 것이 영락없이 그랬다. 가장 예쁘고 팔팔했던 시절. 이십 대 초반에 만난 우리들은 미처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친구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내 나이를 실감하게 될 줄은. 친구의 부푼 배를 쿡쿡 찌르며 그것이 재미있게만 느껴지지 않게 될 줄은. 친구의 패이기 시작한 주름을 안줏거리로 삼게 될 줄은. 내가 '아줌마'가 될 줄은. '늙음'에 대해 생각하게 될 줄은.

삼십 대는 자신의 나이 앞에서 가장 어리둥절한 시기인 것 같다. 처음엔 나이가 나를 추격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나이가 나를 추월하려고 한다.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나이만 앞서 질주하는 기분이다. 질주하는 나이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비로소 '진짜' 성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성인은 나이 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나이를 곱씹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요 며칠 나는 나이를 곱씹고 있다. 개그맨 유세윤 때문이다. 나와 나이가 같은 유세윤은 텔레비전 속에서 늙은 사람 취급 받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고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젊은' 친구들이 알아서 유세윤을 모셨다. 물론, 예능이었다. 재미있게 꾸며진 그림이었다. 문제는, 유세윤이 늙은 취급 받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이십대 친구들이 내게 '극존칭'을 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내가 늙을 줄은 꿈에도 모르던 시절, 나는 나이든 사람에 대해 오해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더 지혜로워질테고, 좌충우돌하지 않을 것이며, 안정되고 여유로워 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 힘이 들 땐 그들에게 뭐라도 물어 답을 구할 수 있겠다는 기대 또한 있었다. 실제로 답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이든 사람들 또한 본인이 내어준 답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그들의 답 또한 언젠가는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흑백 영화 같은 중년의 삶? 그의 삶은 재치로 빛났다

장영희 교수도 여전히 방향 감각 없이 길을 헤매고 있는 자기 자신이 서글프다고 했다. 거기다 아름다운 꽃을 봐도 심드렁하기만 하고, 사람들을 봐도 반갑지 않고, 의욕도 느낌도 없이 습관처럼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 또한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슬픔에 빠진 장영희 교수는 기어코 중년의 삶을, 화려함을 잃은 흑백 영화에 비유했다.

"누군가 내 지나간 삶의 소중하고 특별한 순간들을 영화 필름에 담는다면 나의 십대와 이십대는 다양하고 경이로운 경험과 열정으로 가득한 컬러 무비가 될 테다. 하지만 중년에 들어서부터는 아마도 뿌옇고 불분명한 그림자로 채워진 흑백 영화나, 아니면 완전히 공백 필름이 될 것이다."

위의 글을 읽자 그렇게 되는 건가 싶었다. 정말 다 끝난 건가. 내 삶 역시 이대로 점차 흐릿해져 흑백 영화가 돼버리고 마는 건가. 내 삶도 조만간 흑백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확신은 본인의 삶이 '공백 필름'이 되어버렸다고 토로하는 장영희 교수의 삶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의 책들에는 그녀의 삶이 녹아나 있었다. 한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고, 이후 목발을 집고 다니게 됐으며, 악바리처럼 공부해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후, 서강대학교 영문학 교수가 되었다는 것. 길치이고, 지각을 잘 하고, 성질을 잘 냄과 동시에 반성도 잘 하며, 잘 웃고, 학생들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 무엇보다 단 한 번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 그녀의 책을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삶이었다.

2001년에 발병한 암을 누구도 모르게 치료했고, 다시 재발한 암을 치료하는 중에도 사랑과 긍정이 담긴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항암 치료를 이겨내고 다시 강단에 섰을 때는 순간순간 살아있음을 기뻐했다는 것 또한 그녀의 글을 통해 알게 된 그녀의 삶이었다.

그녀의 삶은 결코 '흑백 영화'같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젊음에서 늙음으로 넘어가는 과정 중에 있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장영희 교수의 삶은 매일의 번뜩이는 재치 속에, 순간의 예리한 관찰 속에, 사랑이 담긴 눈웃음 속에,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글 속에 있었다. 순간순간을 기쁘게 살아낸 그 자체가 장영희 교수의 삶이었던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죽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기쁘게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삶이 진하게 묻어나는 그녀의 글을 읽을 때면 나는 자연스레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매일 속에, 순간 속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고. 삶을 구분 짓는 건 나이의 적고 많음이 아닐 것이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순간들을 어떻게 살아냈는지에 따라 삶은 구분 될 것이다.

가끔은 이런 저런 이유로 나이를 생각하게 된다. 더는 어리지 않단 생각에 괜히 위축되고, 슬프고, 한숨도 난다. 뭐, 이래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나이에 대해 생각하고 나면 나이에 걸맞는 깊이를 조금은 지니게 되는 것 같아서이다. 나이에 대한 생각이 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조금은 우울하게 '센치'해져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센치'해진 끝에 장영희 교수도 이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내일 죽는다 해도 오늘은 언제나 지상에서의 내 나머지 인생을 시작하는 첫날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내 생애 단 한 번>(장영희 지음 / 샘터사 펴냄 / 2010.01 / 1만원)



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샘터사(2010)


태그:#장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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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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