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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보통 사대부고라고 부르는, 공식 명칭으로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가 있는 네거리에서 시청 방향으로 내려간다. 지금은 별로 눈여겨 볼만한 것이 없는 길이다. 하지만 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길에, 1971년까지는 엄청난 역사 유적이 있었다. 그 이름 '대구교도소'.

그러나 대구교도소라는 이름이 쓰인 것은 1961년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대구형무소'였다. 대구형무소 터는 사대부고 네거리에서 대각선으로 경북대학교병원 부근에 이르기까지 아주 넓었다. 이곳에는 수인번호 264번을 죄수복에 명찰로 단 독립운동가 이활도 투옥되어 있었다. 이활은 뒷날 이 수인번호를 필명으로 시를 발표하기도 한다. '청포도', '광야', '절정', '교목' 등의 시인 이육사가 바로 이활인 것이다.

이육사가 갇혀 있던 대구형무소... 지금은 어디에?

대구형무소가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본래는 중부경찰서 뒤에 있었다. 1908년 '대구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는데, 중부경찰서 뒤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그 당시 중부경찰서가 그냥 경찰서가 아니라 지금으로 치면 대구경찰청이었기 때문이다.

대구감옥이 삼덕동 대구형무소 위치로 확장되면서 옮겨온 때는 1910년이다. 그 때부터 대구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다시 1961년 대구교도소가 되었으며, 1971년 현재의 달성군 화원읍으로 이전되었다.

대구교도소, 아니 일제 강점기의 민족정신을 증언하는 '대구형무소의 건물과 고문 장소 등이 삼덕동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걷는다. 4·19혁명의 시금석으로 평가받는 대구 2·28학생의거 기념탑이 발원지 명덕네거리에서 두류공원으로 옮겨진 이래, 그 탑만이 아니라 대구의 민주주의 정신까지 시민들의 기억에서 차차 멀어졌다.

이를 감안하면, 대구형무소 유적이 본래의 삼덕동 자리에 보존되어 있었면 자라나는 미래 세대의 교육에 얼마나 좋았을까, 따져보는 것이다. 이는 잘 보존되어 세계인의 주목과 답사를 이끌어내고 있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형무소가 극명하게 증언해준다.

관음사
 관음사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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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형무소가 사라진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샛길 같은 도로가 나온다. 네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샛길 같다고 표현한 것인데, 이 샛길을 들어서면 곧장 모습이 조금 생소한 절이 하나 나온다. 언뜻 눈으로 살펴보아도 일본풍 냄새가 술술 풍겨나는 일본식 사찰이다. 이곳에 일본식 사찰이 세워진 까닭은 삼덕동 일대가 강점기 때 주로 일본인이 거주한 곳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헤아려진다.

물론 이 일대에 포진해있던 대구형무소, 법원, 학교 등에 근무하는 일본인들과 그 외 조선인들이 주로 이 절의 신도였을 터이다. 하지만 1916년경에 세워진 이 사찰의 본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절이 관음사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동화사의 원명 스님이 주지로 부임해온 1968년부터라고 한다. 거리문화시민연대가 펴낸 <대구 신택리지>는 관음사 건물이 본래 일본인 사찰로 지어졌지만 그 이후 한국인 사찰로 고스란히 명맥을 유지한 대구 유일의 절이라고 평가한다.

관음사 앞을 지나 샛길을 끝까지 가면 경북대병원이 도로 너머로 나타난다. 도로 건너편에 병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지만 차량은 직진을 하지 못한다. 모양만 네거리지 실제로는 네거리가 아닌 셈이다.

오랫동안 걷고, 오랫동안 기다리는 도보여행의 맛

따라서 이런 길에서는 길을 건너지 말고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굽어서 걸어야 한다. 물론 이곳에서는 왼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국가사적 422호인 경북대병원 건물을 감상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왼쪽에 보이는 국채보상공원 옆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를 바라보며 100m 가량 내려가면 경북대병원으로 넘어가는 횡단보도가 나온다. 여기서 잠깐 뒤를 본다. 지금은 무심히 지나쳐도 무방한 보통의 건물이지만, 한때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던 생명의학연구원 건물이 도로에 바짝 붙어 서 있다.

미문화원
 미문화원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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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학연구원'이라는 간판으로 보아 단숨에 경북대병원 부속기관이라는 사실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경북대가 인수하기 이전까지는 대구동부교육청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전에는 대구 미문화원이었다. 이 건물이 이름을 떨친 건 미문화원으로 쓰이고 있던 중이었다.

1983년 9월 22일 이곳 대구 미문화원 정문 앞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1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직전 해인 1982년에 부산 미문화원 폭파 사건이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일어났기 때문에 이 사건 직후 대구 출신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검거 선풍이 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1983년 부산 다대포 해안에서 체포된 남파 간첩 이상규 등의 증언에 의해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졌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제 횡단보도를 건너면 삼덕3가로 들어간다. 삼덕3가의 대표 답사지는 경북대병원이다. 사대부고의 공식 명칭이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이듯, 경북병원의 공식 명칭 역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다.

사대부고에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학생들이 실습을 하듯, 경대병원에서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이 실습을 한다. 그러나 환자들은 병 때문에 경대병원을 찾지만 답사자들이 경대병원을 찾는 것은 아파서가 아니라 그 병원 건물이 국가 사적이자, 해방 직후 일어난 '10월'의 역사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이윽고 파란 불이 왔다. 도보여행은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걷기도 오랫동안 걸어야 한다.


태그:#삼덕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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