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 한장면.

영화 <국제시장> 한장면. ⓒ 영화 <국제시장>


인연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보기 전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운명의 1도>, 그 책은 에드워드 L. 로우니라고 하는 미국의 퇴역군인이 쓴 것을 번역한 것인데 놀랍게도 해방 후 남북이 38선으로 분할될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록한 것이었다.

맥아더의 부관으로서 인천 상륙작전에 깊숙이 관여했던 유일한 생존자의 육성이 그대로 담긴 그 책을 읽으면서 어이가 없었던 것은 그런 역사적 사실을 왜 나는 그리고 우리는 교육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정작 비극의 당사자이면서도 우리만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허탈함은 굳이 세월호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지금의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휴전이 된 지도 60년이 넘었건만 6·25로 정점을 찍은 우리 현대사는 그 '비극의 마일리지'가 현재도 꾸준한 진행형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국제시장>은 거기에 오버랩 된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미리 말하건대, 노스탤지어를 부르는 복고(復古)가 신파에 머물지 않은 것은 분명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정 반대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영화를 둘러싼 논쟁의 일각에서 쟁점이 되는 이데올로기를 언급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것은 그 전에 '역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국제시장>이 태평양을 건너 온 <포레스트 검프>의 한국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견해가 한 몫 한다.

여기서 은근 슬쩍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가운데 이번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을 포함해서 빅3라 할 수 있는 세 편의 영화 개봉 당시 나는 각각의 흥행 여부에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이었다. 참고로 그 빅 3 가운데 나머지 두 편은 바로 <명량>과 <인터스텔라>다.

<명량>의 포스터나 티저 영상을 볼 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런 영화가 과연 흥행할 수 있을까하는 당연한 의문을 가졌다. 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역사물에 비록 최민식이 출연한다고 해도 다큐 이상의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가 못내 의아스러웠다. 심지어 <활>로 재미를 좀 본 김한민 감독이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구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당시 내 눈에는 거의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해보였던 것이다.

그런데다 무려 200억 원이라는, 한국 영화 시장 규모를 놓고 볼 때 실로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알고 나서는 입을 담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기우도 아닌 아주 부질없고 허망한 망상이었음을 <명량>은 실제 스코어로 증명해 보였다. 물론 거기에는 필설로 밝힐 수 없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어쨌거나 그건 작년 말 개봉한 <국제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뭐 이런 신파가 있나? 누가 이런 걸 본다고?'

개봉 전의 포스터와 티저 동영상을 보면서 교만하게 비웃던 나의 부족함은 그러나 극장 문을 나서기도 전에 곧바로 수정되었다. 아니 교정되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렇다 할 흥행요소라고는 없어보이던, 무려 180억 원짜리 수표가 부도나기 직전의 영화라 생각했던 <국제시장>은 정말 나의 별 볼일 없는 안목을 나무라지도 않고 그대로 껴안았다.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이 영화를 보는 내내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대체 왜 나는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 그냥 슬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세대의 치열 이상의 처절했던 생존을 위한 분투에 대해서 당시 핏덩어리였던 내가, 열외자 혹은 비주류도 아니었던, 겨우 가설의 세계에서나 존재했을 무자격자가 감히 그 정서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것은 최선의 교육으로도 절대 안 되는 것이다.

진정성이란 결국 영혼을 담는 것인데 그것은 내가 그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물려받은 지금의 사회는 배턴 터치가 어찌 되었든 간에 절대로 그 끈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싫고 좋고를 떠나서 그건 천륜이라는 말로 대체할 때 비로소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국제시장>의 흥행 이유는 단순히 복고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뛰어넘는 그와 같은 '울림' 때문이 아닐까 한다. 거기에는 세대를 아우르는 묘한 힘이 스며있다. 그걸 교감이라고 해도 좋고 소통이라고 해도 좋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 너무나 급격하게 성장위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삶의 방향성도 몰고 갔기에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한 템포 쉴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자아성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돌아봄에 대한 집단의 무의식적 요구는 결국 우리 사회 전반의 피로도가 그만큼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기에 한편으로는 가슴이 무겁다. 그것은 20세기에 부모세대가 경험한 파독광부와 간호사 그리고 월남전 참전이 바로 21세기의 우리나라에서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가 지금의 토대를 닦았다면 우리 세대는 그것을 유지 발전시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는데 불행하게도 그것은 내부에서의 '전쟁'으로 변질되어 진행 중이다. 남북의 대치 상태에서 동서와 여야의 지긋지긋한 또 다른 분열과 대립 그리고 흥남철수가 기업의 노동자 해고로 형태만 바꿔서 전개되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의 이산(離散)을 부추기는 악행이 아닐 수 없다. 제 살 깎아먹기로 시작하는 존재의 할인 경쟁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비극은 어떤 화학적 변화를 거치더라도 절대로 희극이 될 수 없다. 이 영화의 흥행요소중 하나인 시나리오가 <포레스트 검프>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안다면 왜 우리의 현대사가 비극의 마일리지를 업데이트 중인가도 수긍하게 될 것이다.

비록 역사의 주류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해방 후 남북이 38선으로 분할될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작년에서야 처음 알게 된 것처럼 교육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던, 우리 현대사에서 청춘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걸어온 세월의 내막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속살을 들여다보고 겨우 수긍하고 공감하는 것을 보더라도 세대 간에 현실적인 간극과 단절의 장벽은 분명 지금 이 순간도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과거형에 대한 것들은 시차를 통해서 확보한 거리로 객관적일 수가 있다고 하지만 이 현재진행형은 시야확보가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툼이 그치지 않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럴 때 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의에 의한, 초점화된 미래가 아닐까? 그럼 지금 이 순간의 좌충우돌은 훗날, 우리 후손들이 도달한 안온한 세계에서 미래를 물려줄 지금의 우리가 최고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이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동안 악순환으로 되물림 되어온 이 기형적인 배턴 터치를 이제 제대로 된 선순환으로 바꿔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국제시장>이 들려주는 교훈이라면 적어도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비난 받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달 중순에 1000만 돌파를 했는데 과연 어디까지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해운대>로 이미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윤제균 감독은 이번에 이 영화로 다시 1000만 돌파를 한 공로로 쌍천만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호불호가 어찌되었든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라고 하니 순수하게 축하할 일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그의 뚝심이 앞으로도 좋은 영화로 우리 곁을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후아이엠>에도 실렸습니다.
국제시장 윤제균 해운대 아버지 포르세트검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