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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희한한 대출상품이 나왔다. 은행에서 7년 동안 1%대 저리 이자를 대출받아 10억 원에 이르는 집을 살 수 있게 되었다. 7년 뒤 집값이 오르면 집주인과 은행이 차액을 나눠 갖는다. 당장 목돈이 없는 집주인이나 은행 모두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상품이다. 그럼 7년 뒤, 집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물론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대출 받은 집주인이다.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 누구일까?

은행이 아니다. 세금 내는 국민이 답이다. 7년 동안 대출 금리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 -1%포인트'로 책정되기 때문에, 은행은 대출과 동시에 2% 정도의 금리 손해를 떠안고 출발한다. 7년 뒤 집값이 오르면 차액으로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집값이 내리더라도 은행은 손해를 입지 않는다. 대한주택보증이 손실을 보전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희한한 대출 상품의 구경꾼이었던 모든 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지난 27일,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부동산을 살린다며 이상한 대책을 쏟아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5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소득에 상관없이 연 1% 대출이 가능한 수익공유형 주택담보대출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내용은 파격적이다. 대출 이자는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초저금리다. 7년 동안 1%대 이자만 내며 된다. 억대 연봉자는 물론 집이 있는 사람도 기존 주택 처분 조건으로 대출이 가능해졌다. 살 수 있는 주택도 9억 원 이하, 전용면적 102m2 중대형 아파트로 완화했다. 경제지들은 부동산 전문가의 말을 빌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1% 금리로 9억 원짜리 중대형 아파트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을, 큰 지면을 할애해 보도했다.

줄줄이 나오는 부동산대책, 근데 누굴 위한 거지?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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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평균 월세가 42만 원이라잖아, 차라리 대출 받아 집사고 월세로 이자내면 더 럭셔리(luxury)한 삶이 되지 않을까? 대학·대학원까지 7년, 그때 집 팔면 되겠네. 이보다 남는 장사가 어디 있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친구와 요사이 부쩍 통화가 잦았다. 등록금은 그렇더라도 기숙사비, 용돈에 책값까지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다. 기숙사 생활은 1년 밖에 할 수 없어 2학년 때부터는 하숙이라도 해야 된다고 걱정하는 친구에게 농담으로 대출 제도 좋으니 집사라고 권했다. 그래, 정부의 말대로라면 집을 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최저금리가 7년 동안 유지되고,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하숙과 원룸을 전전하는 것보다 남는 장사일 수 있다.

그러나 국토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이번에도 틀렸다. 집값이 계속 올라야 유지될 수 있는 정책의 한계는 분명하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국민의 세금으로 은행 수익을 보전해 줘야하고, 집값이 오른다 하더라도 수혜자는 건설업자나 부동산 재벌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현명한 정권이라면 국민들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집값을 설계해야 한다. 9억 원짜리 아파트를 저리 대출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정권이라니... 부동산 정책을 대하는 철학부터 틀렸다.

이번에 내놓은 수익공유형 주택담보대출이 갖고 있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 수도권아파트 평균 거래 가격은 3억 원 남짓이다. 서울의 경우 4억5천만 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 주택은 8840가구인데, 대부분이 강남에 몰려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1억 이상의 고액연봉자는 47만 명 정도다. 이런 고액연봉자가 1% 저리 대출을 이용하며, 서울 강남에 9억 원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게끔 하는 부동산 대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어떤 효과를 기대하면서 만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산층 이상에 눈 돌린 정부, 서민은 안중에 없다

이명박 정권은 임기 동안 부동산 대책을 22번이나 내놨다. 2008년 6·11 지방미분양대책부터 전세동향 및 안정대책부터 2012년 5월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폐지를 내용으로 한 5·10대책까지 2~3개월에 한 번 꼴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저리 대출로 은행 문턱을 낮출 테니 집사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뒤이은 박근혜 정권도 같은 행보를 반복했다. 그동안 발표한 10여회에 이르는 부동산 대책의 근간은 역시 대출권유 집값 띄우기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보다 더 노골적이다. 박 대통령은 부동산시장의 회복이 소비와 내수를 살릴 것이라며 신년기자회견에서 집값 띄우기를 천명했고, 여당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장단을 맞췄다. 서민을 대상으로 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는 정책이 별 성과를 못 거두자, 아예 중산층이나 고액 자산가를 타깃으로 한 투자 상품을 내놓았다.

지난 13일 발표한 기업형 임대주택만 해도 그렇다. 서울의 경우 한 달 임대료만 70만~80만 원에 달해 관리비를 포함하면, 한 달에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지출해야 한다. 이번에 내놓은 수익공유형 주택담보대출도 서민들의 주거 안정보다는 중산층 이상이 부동산 투자에 반응할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다.

지난주 서울의 전세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3월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전월세 시장의 불안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에 눈을 돌린 정부에게 서민들의 주거전쟁은 아예 관심 밖인가 보다.

서민 고통 가중시키는 정책,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행복 업무보고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행복 업무보고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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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율이 올라가고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연장하거나 갈아타기가 불가능해졌고 그 불가피한 결과로 미국 전역에서 담보대출의 상환불능 사태가 벌어졌다.(중략) 미국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조차 내 집을 가질 수 있고, 그래서 아메리칸 드림을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건만, 희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것이 헛된 꿈이었다는 차가운 현실만이 남았다." - <미국이 파산하는 날> 담비사 모요

서민들에게 집사기를 권하고 중산층 이상에게 투기를 하라 부추기는 사회, 은행의 손실을 국가가 보증하고, 은행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 2015년 부동산 공화국이 된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또 국가적 경제 파산을 불러왔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직전인 2007년 미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부동산 거품은 한순간에 꺼지기 시작했고 헛된 꿈은 차가운 현실로 남았다고 경제학자 담비사 모요는 적었다. 정책은 과학적 사고의 산물이다. 과정이 같은데 결과가 다르다는 것은 무지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부동산 정책 위험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이어 수차례 집값 띄우기 정책을 쏟아냈으나 약발이 먹혀들지 않으니, 초조함에 더 극단의 대책을 꺼내드는 걸 수도 있다. 경제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자는 대통령. 그러나 집값이 오르면 내수가 살아나고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고문'으로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건 누가 뭐래도 박근혜 정권의 무능한 경제 관료이다.  

대통령 지지율 20%대 추락을 두고 말들이 많다. 당연한 결과이다. 주거난에 처한 서민들은 아랑곳없이 부동산 투기의 판만 키우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와 박수를 보내겠는가. 안 하느니만 못한 일들이 종종 있다. 박근혜 정권의 부동산 정책도 그렇다. 대책이라고 내놓을 때마다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부동산 정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런 일들을 계속 하기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태그:#수익공유형 주택담보대출, #부동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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