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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중국으로 떠나기 전 많은 걱정들에 잠을 못 이뤘건만 왜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미디어에서 접한 중국 요리의 풍부한 식재료와 한국에서 항상 먹어왔던 중국집 짜장면을 생각하며 막연히 '맛은 있겠지'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2011년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학교 방문차 처음 중국에 갔을 때였다. 선양(沈阳)공항에 도착하니 '훅' 하고 각종 향신료 냄새가 밀려들었다. 퀴퀴한 낡은 공항 건물까지 어울려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지금이야 새로 지어져 깨끗하지만 2011년만 해도 선양공항은 우리나라 80년대 시외버스터미널의 비주얼을 자랑했었다.

하지만 중국본교를 방문했을 때 안내해 주시던 선생님들이 신경 쓰고 엄선해주신 음식들은 제법 괜찮았다. 향도 얕고 먹을 만했던 것. 그곳에서 지냈던 날짜도 짧았거니와 토마토계란탕, 만두, 꿔바로우(锅包肉) 등 냄새가 날 리가 없던 음식들이었다.

당시에는 "이것이 중국의 음식! 역시 대륙의 향은 다르다!"며 감탄까지 하며 음식을 즐겼다. 돌이켜보면 꿔바로우만 해도 탕수육이랑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중국 현지에서 먹는다는 특별함에 도취됐던 것 같다.

생각지 못한 향신료의 장벽

1년 후인 2012년 2월 중순, 드디어 한국을 등지고 본격적인 유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 늦은 나이에 떠나는 유학의 기대감과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앞으로 음식 때문에 고생할 것은 상상도 못한 채 해맑은 표정을 짓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학교에 도착하여 선생님의 통제가 없이 보내는 진짜 유학의 날이 시작되었다. 학생식당에서 스스로 밥도 먹고 밖에 나가 학교 주변에 있는 가게에서 음식들을 사먹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뭣도 모르고 시키다보니 향신료 범벅들이었다.

고수가 올라간 왕번데기. 먹어 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고수가 올라간 왕번데기. 먹어 볼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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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화장품 냄새와 혀를 찡하게 자극하는 아린 맛 등 상상도 못한 냄새들의 향연이었다. 쯔란(孜然), 산초, 고수 등의 강한 향은 식사 자체를 방해했다. 그중 압권은 고수다. 언제라도 장식용으로 반드시 음식 위에 얹어 나왔다. 거기에 고수탕, 건두부 고수말이 등의 독창적인 고수 콤비네이션 음식 또한 이곳의 일상이었다. 한국에도 고수를 즐기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이곳의 고수 사랑에는 두 손을 들게 될 것이다.

중국에 온 지 몇 년이 지난 후 같은 학번 한국아이들과 수다를 떨던 중 스치듯 고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고수는 말이야. 일 년 안에 먹는 습관이 들지 않으면 나중에도 못 먹는 것 같아."

나는 무릎을 쳤다. 학교 내 한국 유학생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온 한국인 전체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진저우(锦州)시에 위치한 이 학교 안에서는 딱 들어맞았다. 대단한 것도 아닌 사실이지만, 서로 엄청 공감을 했다. 특히 나는 지금까지도 그 풀에 적응을 못했다. 지금도 식당에서 주문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쓰는 말이 있다.

"不要放香菜!(부야오팡 시양차이 : 고수를 넣지 마세요)"

물론 향신료 문제만은 아니다. 알다시피 중국음식은 거의 대부분 튀기거나 볶는다. 엄청난 양의 기름을 사용하는 것. 일반 가정에서도 식용유는 대용량으로 구비해 놓고 쓸 정도로 애용한다. 한국은 식용유 몇 숟갈을 뿌리는 수준이지만 중국은 그냥 '들이붓는다'는 표현이 더 알 맞는다. 볶음요리를 먹고 나면 접시바닥에 기름이 그득 남는다.

음식이 바뀌니 몸에서도 반응이 바로 왔다. 약 한 달을 위아래로 열심히 쏟아냈던 것 같다. 항상 밥을 먹으면 느끼했고 속이 더부룩했다. 이제 더 이상 맛도 없고 쳐다보기도 싫었다. 고역이고 모든 중국음식이 질렸다.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

과제는 중국에 나를 맞춰 나가는 것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던 된장찌개.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던 된장찌개.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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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지 얼마 안돼 한국 음식점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거기다 진저우시는 상하이나 베이징만큼 유명관광지가 아니라 한국식당이 많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여러 한국식당을 찾긴 했지만 대부분 한국의 맛과는 차이가 있었다.

결국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어렵게 한국에서 공수 받은 된장을 놓고 머리를 모았다. 양파, 감자, 고추를 다듬고 호박도 썰어 넣었다. 다행히 학교 옆 시장에 채소거리가 있었다. 유학생 기숙사에는 주방이 구비되어 있어 요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어설픈 된장찌개를 한 술 뜨는 순간 그 행복감이란! 눈물까지 핑 돌 맛이었다. 그렇게 근근이 또 한 달을 버텨냈다. 이렇게 중국에 적응하는 첫 난관은 먹는 것. 일명 물갈이를 시원하게 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음식을 가리지 않았고 해외여행도 몇 번 다녀왔던 터라 음식 때문에 고생하리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해외생활을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이다. 여행과 주거의 차이는 이토록 큰 것이었다.

비단 음식뿐일까. 모든 생활이 불편하고 알려주는 이가 없어 하나하나 스스로 알아가야 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렇게 서서히 중국에 나를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중국 음식 특유의 향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중국에 도착하고 음식 때문에 살이 쭉쭉 빠졌었다. 몸은 힘들었던 반면 생각지 못한 다이어트로 날씬해져 속으론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현지음식을 거뜬히 소화하면서 한국에서 보다 5kg의 살을 덤으로 얻었다. 그만큼 현지화가 되었다고나 할까. 글을 쓰는 지금도 한동안 먹지 못한 마라샹궈(麻辣香锅)나 꿔바로우가 당기는 것을 느낀다.

중국의 향이 그리도 진했던가

갖가지 재료를 골라 마라소스로 볶아낸 음식인 마라샹궈. 알싸한 매운맛이 일품이다.
 갖가지 재료를 골라 마라소스로 볶아낸 음식인 마라샹궈. 알싸한 매운맛이 일품이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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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올 때 중국의 온갖 양념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입국했다. 마라샹궈와 훠궈 등 평소 즐겨먹는 중국음식을 가족에게도 맛보여 주고 싶어서였다. 집 옆 마트에서 갖은 재료를 사와 정성껏 요리를 해 가족과 지인 분들 앞에 내놨다.

그런데 모두의 표정들이란! 다들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눈은 당황함이 섞인 미묘한 표정이었다. 강한 향료냄새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정성껏 차려냈다고 하니 차마 뭐라 할 수 없는 상황. 모두 "맛있다"며 연신 젓가락을 놀리는데 좀처럼 음식은 줄지 않았다. 이 메울 수 없는 간극, 이것이 바로 각 민족의 음식문화다.

중국에는 깨를 갈아 걸쭉하게 만든 소스가 있다. 마쟝(麻酱)이라고 하는데 순수 100% 깨로 만들기 때문에 고소하고 맛도 진하다. 이것 또한 비닐에 밀봉해 한 병 가지고 들어왔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집에서 중국 냄새가 난다며 호들갑을 떠신다.

중국의 깨소스 마쟝. 훠궈를 먹을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장이다. 취향에 맞게 여러가지를 첨가해서 입맛에 맞춰 먹으면 된다.
 중국의 깨소스 마쟝. 훠궈를 먹을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장이다. 취향에 맞게 여러가지를 첨가해서 입맛에 맞춰 먹으면 된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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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해서 팔을 들어 올려 여기저기 몸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아무런 채취도 느낄 수 없었다. 그사이 엄마는 계속 킁킁거리다 결국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냈다. 다름 아닌 거실에 꺼내놓은 황토빛깔 마쟝이 담겨있던 병이었다. 어째서 깨소스에서 대륙의 냄새를 캐치해 내신건지 의아할 뿐이다.

결국 마쟝은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는 내 방 구석으로 유배를 오게 됐다. 저런 조그만 소스 하나에 기겁을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사실 엄마는 지난 번 이후로 중국 음식 트라우마에  걸린 것 같다고 한다. 그런 엄마를 보니 '나도 이 정도였던가' 하고 돌아보게 된다.

그럼에도 어머니에게 자주 중국음식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음식이야말로 현지의 전통과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 결정체이다. 직접 모시고 가보진 못해도 요리로나마 현지의 향을 느끼게 해드리는 것. 그게 가난한 유학생이 할 수 있는 나름의 효도 아닐까.


태그:#중국유학, #중국, #진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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