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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 황산면 남리장터. 시골마을의 재래시장이지만 제법 북적인다. 장이 걸판지다.
 해남군 황산면 남리장터. 시골마을의 재래시장이지만 제법 북적인다. 장이 걸판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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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매섭다. 할매들이 두꺼운 겉옷과 목도리로 온몸을 칭칭 감았다. 눈만 빠끔히 내놓은 채 푸성귀 한 소쿠리를 앞에 두고 앉아 있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 위에 빈 사과 상자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그 모습이 안쓰럽다.

뿌연 연기를 연신 뿜어내는 화롯불 주위엔 할배 네댓 명이 모였다. 화롯불 위에 올려진 석쇠에선 굴과 조개가 올려져 있다. 정치와 생활에 대한 얘기로 주된 화젯거리다. 얼핏 들려오는 얘기를 듣다보니 사뭇 진지하다. 엿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날씨는 차갑지만 남도장터 특유의 활기와 질펀한 삶의 모습이 펼쳐지는 해남 남리장의 모습이다. 지난 18일이다. '땅끝' 해남의 우항리 공룡박물관으로 가는 길목,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서 만난다.

해남공룡박물관 전경. 남리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다.
 해남공룡박물관 전경. 남리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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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남리장터 전경. 시골마을의 그저 그런 장터일 것이라는 건 선입견에 불과하다.
 해남 남리장터 전경. 시골마을의 그저 그런 장터일 것이라는 건 선입견에 불과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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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장은 큰 도로변에 선다. 이와 다르게 남리장은 도드라진 언덕배기에 펼쳐진다. 명량로를 따라 줄지어 선 차들이 아니면 몰라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변변치 않은 시골장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금물이다. 장꾼만도 100여 명이 훌쩍 넘는다. 널따란 장터가 비좁아 보일 정도다.

장터 입구에 포장마차가 보인다. 탁주 한 사발로 추위를 달래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시장을 가로질러 시등로 쪽에선 의류전과 잡화전, 신발전이 제법 위용을 뽐낸다.

갯가를 지척에 둔 덕분인지 어물전도 걸다. 장터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숭어가 펄떡펄떡 뛰고 있다. 짭조름한 새조개와 꼬막, 조개, 문어도 푸지다. 달보드레한 낙지도 보인다. 연녹색 감태와 녹색의 파래도 나와 있다. '미운 사위에게 준다'는 매생이에서는 진녹색의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다.

회색빛의 굴과 홍새우의 붉은빛은 난장을 형형색색 물들이고 있다. 오늘은 숭어와 매생이가 잘 나간다. 육질이 단단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 물메기도 장꾼들이 추천하는 갯것이다.

남리장 풍경. 장터 옆 빈 공간을 활용해 콩이 널어져 있다.
 남리장 풍경. 장터 옆 빈 공간을 활용해 콩이 널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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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리장터에 나온 숭어. 육질이 단단해 맛있게 생겼다.
 남리장터에 나온 숭어. 육질이 단단해 맛있게 생겼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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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건 숭어와 새끼 숭어인 모치다. 좌판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흔하면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만 원이면 비닐봉지 하나가 터질 만큼 담아준다. 숭어가 가장 맛있을 때도 지금이다. 하얀 속살의 회는 쫀득쫀득 차지면서 고소하다.

오죽하면 '겨울 숭어가 앉았다 나간 자리의 펄도 맛있다'는 옛말이 생겼을까. 숭어는 30센티미터가 넘는, 큰 것이 맛있다. 모치는 10센티미터가 안되는, 작은 것이 맛나다. 비늘을 벗기고 등지느러미와 내장을 뺀 다음, 묵은 김치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만이다. 화롯불에 구워먹어도 별미다.

"지대로 맛을 볼라믄 간장만 살짝 찍어 먹어야 써. 씹을수록 단맛이 나거든. 그래야 쫄깃한 숭어회 맛을 제대로 볼 수 있어."

옆마을 화산에서 온 할매의 숭어 요리법이 흥미롭다. 그 모습을 본 다른 할매가 모치 한 마리를 집어 들더니 능숙한 솜씨로 초장을 두른다.

남리장터 풍경. 재래시장의 흥정이 그대로 살아있다.
 남리장터 풍경. 재래시장의 흥정이 그대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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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에 나온 갯것들. 굴과 비자락 등이 펼쳐져 있다.
 어물전에 나온 갯것들. 굴과 비자락 등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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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암 것도 아녀. 금호방조제를 막기 전에는 말도 못하게 걸었어. 시방하고 비교헐 수 없을 만큼."

40년 넘게 장터를 지켜왔다는 최씨 할머니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문다. 할머니의 말처럼 남리장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송지장과 함께 손가락에 꼽는 큰 장이었다. 진도로 가는 삼지원 나루터를 끼고 해남, 목포, 영암, 문내, 화원으로 가는 육상교통로의 목이었다.

만호바다에서 나오는 낙지와 꼬막, 바지락과 산소리 포구에서 잡은 싱싱한 갯것들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해남뿐 아니라 진도, 강진, 장흥 등지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와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남리장터 풍경. 북적거리는 옛 전통시장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리장터 풍경. 북적거리는 옛 전통시장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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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굴. 장터에서 가까운 갯벌에서 할매들이 직접 캔 것이다.
 자연산 굴. 장터에서 가까운 갯벌에서 할매들이 직접 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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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마을에서 온 박씨 할머니의 마음이 편치 않다. 벌써 10시가 넘었지만 아직 마수걸이를 하지 못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갯가에서 쪼아온 굴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뭍의 장터라면 게눈 감추듯이 팔릴 자연산이지만 여긴 다르다. 고객 대부분이 촌로들인 탓이다.

"갯가에 널린 것이 굴인디, 굴이 팔리겄소? 품목을 잘 선택해서 갖고 와야지. 굴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캘 수 있는 거 아닌가?"

주변 할매의 핀잔이 이어진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사이 매생이를 가져온 다른 할매가 자리를 떨고 일어선다. 11시가 넘어어자 비교적 젊은 새댁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장터가 다시 활기를 띤다.

새댁들이 할매의 굴을 찾는다. 장터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사이 굴이 가득했던 함지박도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장터에 나온 할매와 할배들도 모두 환하게 웃는다. 

남리장터 풍경. 점심 때가 가까워오면서 젊은 아낙네들이 장터로 몰려들었다.
 남리장터 풍경. 점심 때가 가까워오면서 젊은 아낙네들이 장터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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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남리장, #전통시장, #재래시장, #남리장터, #어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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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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