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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Book and Culture Club의 2015년 첫번째 모임이 명동 해치홀에서 진행되었다.
▲ 고은과의 만남 - 서울 책과 문화 클럽(2015/1/25) Seoul Book and Culture Club의 2015년 첫번째 모임이 명동 해치홀에서 진행되었다.
ⓒ 김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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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서울 책과 문화 클럽 (Seoul Book and Culture Club)의 첫 번째 모임이 1월 24일 토요일, 명동의 글로벌 문화센터 해치홀에서 열렸다. 서울 책과 문화 클럽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배리 웰시(숙명여대 언어교육원 객원 교수)에 의해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다국적 독서모임으로 이번 행사에는 고은 시인이 초대되어 외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기울였다. 한국 문학 번역가로 유명한 서강대학교 안선재 명예교수(Brother Anthony)가 사회를 맡고 동시통역사가 함께 행사를 진행하며 외국인들과 한국인들 모두가 고은 시인의 말에 경청할 수 있도록 도왔다.

13년 연속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고은 시인은 행사가 시작되고 자신의 시 낭송을 하기에 앞서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고은 시인: 1월은 음에서 양으로 옮겨지는 시기, 즉 어두움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옮겨지는 시기이다. 이렇게 '시작'이란 규정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T.S Eliot은 '끝이 시작이다'고 말했지만 나는 '시작'이란 시작 없는 시작이며 지금 이 시간이 과거와 함께 미래를 잇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이 의미는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은 시인은 '라싸에서', '어떤 기쁨', '1인칭은 슬프다' 등을 낭송하였고 고은 시인의 낭송에 이어 안선재 명예교수가 영어로 낭송하였다. 고은 시인은 음절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 힘 있는 낭송을 하여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안선재 명예교수 또한  강조해야 하는 곳을 놓치지 않는 힘있는 낭송으로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에는 미리 질문을 준비한 안선재 명예교수가 고은 시인에게 질문을 대신했다.

안선재 교수: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에 성장했는데 한국어 학습은 어떻게 할 수 있었나?
고은 시인: 근대 식민지 역사 중 언어까지 지배하려 했던 나라는 일본이 유일했다. 난 몰래 공부했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그리고 언어는 너무나도 약한 것이어서 항상 지켜주고 아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가 지나면 한국어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아랍어, 중국어, 스페인어, 영어가 세상에서 쓰이는 유일한 언어들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때가 오더라도 난 무덤 속에서 한국어로 시를 쓰겠다.

안선재 교수 : 고은 시에는 '폐허'의 이미지, '허무주의'가 많이 묻어있다. 한국전쟁, 80년대 독재시절이 그것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고은 시인: 오늘 우리가 모인 이 명동도 한 때는 폐허였다. 우리나라의 모든 곳이 폐허였다. 그것을 빼고는 논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허무주의는 폐허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변한다는 진리를 믿고있다. 70년대는 전태일의 죽음으로 인해서 사회에 눈을 뜬 사람이 많았고 나 또한 그랬다. 나와 함께 있던 감옥에 있는 자들 모두가 전태일로 인해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사회에 큰 파도가 치고 있는 시기였다. 감옥에 감으로써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믿었다.

안선재 교수: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은'이 있었을까, 또한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은'이 생길까?
고은 시인: 생각해보자. 파도가 한 번 일렁일 때는 70만번의 물결이 일렁인다. 종달새는 하루에 3000번을 운다. 남자는 하루에 2만5000마디를 하고 여자는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은 3만 마디를 한다. 하루에 400페이지짜리 책이 130권이나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난 55년동안 150~160권의 책을 냈을 뿐이다. 위대한 낭만주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굉장히 많은 책을 냈는데 그 중에는 위대한 시들도 많다. 하지만 한국 시인들의 경우 많은 시를 세상에 보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자들이 많았다.

청중 질문: 자신의 작품이 번역된 것을 검토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은 시인: 어느 순간 번역된 작품을 보며 소스라치게 혼자 놀랐던 적이 있다. 실은 나도 번역자였던 것이다. 나 또한 세상의 진실을 사람들에게 시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시 속의 '나'는 나 자신이 아닌 세상의 '나'들, 사람들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하는 번역이며 그렇기에 작자와 역자의 구별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한 마디.
고은 시인: 내 문학의 목표는 '애도'이다. 수많은 죽음을 딛고 살아난 나이기에 그렇다. 시인은 달 앞에 비춰지는 빛과 그 뒤의 어둠을 함께 봐야하는 불운을 타고 났다. 애도야말로 미래를 개척하는 가능성이다. 죽은 자에 대한 사랑없이 산 자에 사랑은 없다. 모든 죽음에는 우리 삶의 씨앗이 들어있다. 대학에서 시학 강의 첫 시간에 늘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거절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시를 최초로 논하자.' 우리 모두가 시 그 자체이다.

고은 시인과의 만남
▲ 고은과의 만남 - 서울 책과 문화 클럽 고은 시인과의 만남
ⓒ 김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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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살든 그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한국문화를 외국인에게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겠다며 모임을 만든 한 영국인 교수로 인하여 24일 명동 해치홀에 모였던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문학의 세계의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모인 사람들의 인종은 무척이나 다양했으나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문학이라는 하나의 깊은 세계에 깊숙이 빠져 공감하는 듯하였다. 그것이 고은 시인이, 문학이, 문화가 주는 힘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고은 시인은 한 손에 자신의 시집을 들고 줄 서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눈을 맞추며 사인을 해주고 사진까지 함께 찍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 내내 그와 같은 시인이셨던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울컥했던 나 또한 그에게 다가가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고 그는 가벼운 포옹과 따뜻한 눈빛으로 악수를 건네주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을 가져다 준 행사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따라잡기 힘든 세상에 숨이 찰 때면 문학은 우리에게 여유와 삶의 본질이 주는 강한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또한 분명 한국문학에는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가 묻어있는 그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며 이번 서울 책과 문화 클럽과 같은 행사를 통해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노력이 앞으로도 꾸준히 필요하다.

어떤 기쁨 
                    고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했던 것 
울지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 것 
울지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막 생각하려는 것 
울지마라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세계에서 이 세계의 어디에서 
나는 수많은 나날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수많은 남과 남으로 이루어졌다
울지마라


태그:#고은, #고은 시인, #어떤 기쁨, #한국문학, #서울 책과 문화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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