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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XX동 천마아파트 가나요?"
기사 "XX동 쪽으로 돌아가는 데요."
승객 "얼마나 걸려…"
기사 "일단 타세요!"

버스기사의 목소리가 꽤나 퉁명스럽다. 질문을 한 50대 여성이 버스에 오른다. 50대 여성의 얼굴엔 무안함과 뾰로통한 모습이 섞여 있다. 기사는 버스 문을 닫고 황급히 출발한다. 어느 마을버스 안의 흔한 풍경이다.  

마을버스 기사들은 보통 불친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몇몇은 참지 못하고 볼멘소리를 내뱉기도 하지만, 이젠 익숙해져 '그러려니'하는 사람도 태반이다. 불친절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속사정을 직접 만나 들어봤다.

우리 이야기도 한 번..."식사는 30분, 휴식 아예 없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마을버스 기사들이 고통받고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마을버스 기사들이 고통받고 있다.
ⓒ 양원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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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안 가요."

23일 오전 9시 반, 경기도 인근에서 만난 한 마을버스 기사 A씨(남·58)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을버스 기사들이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온 대답이다.

A씨는 "승객들은 자기가 불편한 점만 얘기하고, 연착이나 무정차 같은 문제에 어떤 운행 사정이 있는지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불만만 늘어놓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해진 시간 내에 종점에 도착하지 않으면 다음 정류장의 승객들이 기다리게 되니 확실히 타겠다는 의사 표현을 하지 않으면 지나치는 거지 그냥 무정차하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착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며 "사고가 난다든지, 회사에서 버스를 빼라고 한다든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다든지 해서 조금씩 (도착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승객들은 그 잠깐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답한 듯 토로했다.  

경기도 인근에서 마을버스 운전을 하는 이아무개(남·37)씨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이 동네 주변에는 어르신들이 많아 아무래도 탑승 시간이 좀 길다"며 "그러다 보면 조금씩 앞차와 간격이 벌어지고 결국 몇 분씩 늦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버스가 자꾸 늦어지면 우리도 신경이 쓰이고, 때때로 운전이 험악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승객들은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왜 늦었느냐', '언제 가느냐' 채근만 한다"고 말했다.

"도둑질하듯 화장실 다녀온다"

현재 수도권 마을버스 기사들 대부분은 휴식 시간 없이 하루 10시간 이상을 운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북부 지역 마을버스 3개 노선을 조사한 결과, 하루 쉬고, 하루 일하는 격일제의 경우엔 꼬박 17시간을 운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로 보장된 식사시간이 없어 식사는 길어야 30분 내외거나 아예 못 먹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휴식시간이 없으니 생리현상 해결도 곤욕스럽다고 호소했다. 앞서 이씨는 이를 두고 "마치 도둑질하듯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표현했다.  

서울 마을버스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21일 만난 서울 인근의 마을버스 기사 B(남·50)씨는 "휴식시간이나 식사시간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휴무도 한 달에 2번이고, 쉬는 시간 없이 13바퀴(1바퀴는 기점을 떠나 종점을 거쳐 다시 기점으로 돌아오는 걸 의미한다)돈다"며 마을버스가 '열악한 노동환경이 맞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B씨의 조수석엔 과일 몇 조각이 든 비닐이 있었다. 간식을 자주 드시냐고 묻자 그는 "한 번 (근무를) 나가면 식사를 못하니 간식을 챙겨온다"며 "이렇게 해야 그나마 허기를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수준 월급…"실수령액 140만∼150만원"

열악한 노동환경도 문제지만 운전 시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도 기사들을 지치게 만든다. 경기도에서 마을버스를 운행 중인 김아무개(남·38)씨는 "한 달 월급은 실수령액으로 140만원에서 150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2교대 근무를 하는 김씨는 하루 10시간씩 버스를 운전한다. 휴무는 3번(1달 기준)이고 한 달 중 한 번(일요일)은 17시간을 운전해야 한다. 그는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서울 인근의 마을버스 기사 C씨(남·43)도 "만근 기준으로 수습기간 때 월급이 130, 수습이 끝나면 150만원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많이 열악하다"며 "시내, 시외버스 대우가 좋으니 마을버스를 경력 삼아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2014년 마을버스 기사들의 만근(26일 출근) 기준 월급은 189만 1000원이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2300만원 정도다. 시내, 광역버스 기사의 60∼70% 정도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3호봉(근속 4~7년)인 서울 시내버스기사 연봉은 4021만원이다. 상여금이 포함된 금액이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 330만 원 정도다.

또 시내버스나 광역버스는 휴식시간과 식사시간도 보장된다. C씨는 "한 바퀴를 돌고 차고지에 오면 30분에서 한 시간 가량의 휴식시간이 있고 점심시간도 따로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마을 버스 기사들처럼 허겁지겁 식사를 할 필요도, 꾸역꾸역 생리현상을 참아야 할 필요도 없는 셈이다.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도 '양극화'

마을버스 업체 측은 '운송원가'의 현실화 없이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마을버스 운송원가는 유류비, 인건비, 운행실적, 정비비 등 버스 운영에 필요한 최소 원가를 의미한다.

서울시 마을버스운송조합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시내버스의 운송원가는 67만 원이고, 마을버스는 37만 5천원이다"며 "원가가 반이니 기사 월급도 반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기사 임금은 거의 '배' 차이가 난다. (시내버스 업체와 마을버스 업체는) 양극화가 됐다"고 답했다.

관계자는 "운송원가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마을버스 기사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180만원을 받기 위해 여기에 말뚝 박으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태그:#마을버스, #시내버스, #광역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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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를 꿈꾸는 대학생입니다. 미생입니다. 완생은 바라지도 않고, 중생이나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 21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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