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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을 흐르고 있는 미뉴(Minho)강. 강 한가운데 로마시대에 지어진 다리의 잔해가 있다. 서기 2세기에 지어진 다리였다.
▲ 포르토마린(Portomarin) 포르토마린을 흐르고 있는 미뉴(Minho)강. 강 한가운데 로마시대에 지어진 다리의 잔해가 있다. 서기 2세기에 지어진 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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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5일, 여행 3일째

순례팀은 전날 기차를 타고 갈리시아 지방에 있는 사리아(Sarria)에 도착했다. 사리아는 순례길의 종료점인 산티아고 시에서 동쪽으로 약 1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굳이 사리아에서 순례여행을 시작한 이유는 '완주증' 때문이었다. 100km만 걸어도 정식으로 발급되는 완주증을 받을 수 있다.

원칙적으로 하면 순례길의 메인이라고 불리는 프랑스길(Camino Francés)의 전 구간, 즉 800km를 다 걸은 이에게만 완주증이 발급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00km 이상 걸은 이에게도 발급한다는 건 그만큼 더 순례길을 대중화시키겠다는 이야기다. 여건상 전 구간을 종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일정 부분에 도달하면 '완주'를 인정해주겠다는 뜻이다.

사리아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동쪽으로 약 110km 정도 떨어져 있다.
▲ 사리아 사리아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동쪽으로 약 110k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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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짐은 고행의 지름길

아침부터 계속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비를 부실한 걸 챙겨와서 그런지 입어도 변변찮았다. 트레킹 첫날 오전부터 '삐끄덕'거리는 느낌이다. 비도 그랬지만 가장 문제였던 건 짐이었다.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배낭에 한 가득이었다. 배낭을 제대로 못 닫을 정도로 짐이 넘쳤다. 인천공항 수하물 코너에서 무게를 체크 할 때는 12㎏이었다. 그때는 그럭저럭 버틸 만 했는데 오전에 배낭을 매어보니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전날 마트에서 과소비(?)를 해서 그랬던 것이다.

스페인의 물가는 다른 유럽국들보다 더 저렴했다. 그래서 손에 잡히는 대로 식료품을 구매한 것이다. 우유, 치즈, 버터, 요거트, 빵 등은 한국보다 더 저렴해서 그런지, 한가득 집었는데도 8유로(1유로: 약 1400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필자는 자칭 빵돌이, 치즈돌이인 터라 매우 흐뭇하게 마트에서 나올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콧노래를 부르며 그것들로 저녁을 먹었고, 다음 날 점심에 먹을 도시락도 준비했다. 버터를 바르고 치즈도 넣고, 딸기잼으로 마무리 한 특선 도시락을 넉넉히 준비하였다. 또 남는 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배낭 속에 넣었다.

'무겁더라도 다 가져가야지. 어떻게 먹을 것을 버리고 가나!'

산티아고 카미노를 걷고 있는 순례팀.
▲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카미노를 걷고 있는 순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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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배낭이 무겁지! 배낭 무게는 자신의 몸무게의 10%를 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배낭이 30리터든 60리터든 빈 공간을 다 채우려고 드는 것이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심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것저것 다 챙겨 넣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필자는 원래 짐에다 부식까지 잔뜩 더 짊어졌기에 어깨를 늘어뜨리며 걸어야 했다.

과도한 짐들은 어깨를 내리 누르고, 허리와 무릎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즐거워야 할 도보여행길은 고행길로 바뀌게 된다. 물론 순례자라면 일정 정도 고행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과도한 고행은 도보여행 자체를 망칠 수도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순례길을 여행하려고 스페인에 왔지, 골병들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니까. 

어깨는 짓눌리고, 뱃속은 부글부글...

어쨌든 필자는 첫날, 고행과 더불어 고역을 겪어야 했다. 과도한 짐무게로 어깨는 내려앉을 것 같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배까지 아파왔기 때문이다. 유제품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엄청 배불리 먹었다가 탈이 난 듯싶었다. 과유불급이라고 적당히 사고, 적당히 먹었어야 했는데...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뱃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배낭은 어깨를 짓누르고... 그러다보니 주위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무척 아름다운 풍광이 연이어 이어졌지만 필자의 눈은 그저 화장실을 찾는 데 혈안이 됐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노상방변(?)까지 심각하게 고려를 했을까.

바르(bar) 사장과 '밥도둑'들
▲ 바르(bar) 사장 바르(bar) 사장과 '밥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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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점까지 100km가 남았다는 표지석을 뒤로 하고 바르로 내달렸다. 'bar'를 영어로는 '바'라고 하지만, 스페인어는 발음 기호가 없이 로마자 그대로 읽어 '바르'라고 한다. 스페인도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공공화장실 개념이 희박하다. 마드리드 지하철역에도 화장실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여행 중에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바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아주 시원하게 일을 처리했다. 10년 묵은 체증이 밀려나가듯 무척 후련했다. 박재동 화백이 저술한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에서는 아침 인사말이 '화장실을 잘 갔냐?'였다. 해외여행을 하면 긴장감 때문에 일을 시원하게 못 보기에 그런 인사말이 오갔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순례길을 걷는 첫날부터 아주 유쾌하게 처리했다. 역시 도보여행은 화장실 '도우미'다.

'밥도둑'들에게 도시락을 빼앗겼다

비웠으니 다시 속을 채울 때였다. 전날 준비했던 특선 도시락이 빛을 발했다. 1유로 짜리 커피 한 잔과 함께 도시락을 펼쳐놓았다. 이제 맛있게 점심을 즐길 시간이었다. 그런데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밥도둑'들이 몰려들었다. 그 녀석들은 순식간에 주위를 감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길 닦아놓으니 뭐가 먼저 지나간다고, 도시락 뚜껑을 여니까 누렁이랑 야옹이가 먼저 달려드네!'

표정이 참 거시기해서 빵조각을 안 줄래야 안 줄 수가 없었다. 앉은 자세도 참 거시기했다.
▲ 밥도둑 누렁이 표정이 참 거시기해서 빵조각을 안 줄래야 안 줄 수가 없었다. 앉은 자세도 참 거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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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치즈, 잼을 골고루 넣은 빵맛이 좋았나 보다. 한두 점 떼어주면 그것만 먹고 돌아설 줄 알았더니만 그게 아니었다. '밥도둑'들은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도시락 통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녀석들 빵맛을 아는구먼!'

그런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안양 삼막사에 있는 토종개 삼총사가 생각났다. 밥 때에 맞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공양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토종개들...

그렇게 버릴 건 버리고, 채울 건 채웠더니 그제야 주위 풍광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 순례팀이 도보여행을 시작했던 사리아와 대성당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모두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 속해 있다. 갈리시아는 이베리아반도 북서쪽에 위치해 있는데 왼쪽 면에는 대서양과 맞닿아 있고, 기후는 다른 스페인 지역과 달리 대체로 습하다. 또한 비도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한 지역 주민이 소떼를 몰고 있다. 소들도 이런 산책(?)이 익숙한 듯 나름대로 진영을 갖춰 이동을 하고 있었다.
▲ 소몰이 한 지역 주민이 소떼를 몰고 있다. 소들도 이런 산책(?)이 익숙한 듯 나름대로 진영을 갖춰 이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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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제주 올레길을 떠올리다

필자도 나름대로 도보여행가라 이 곳의 지형을 자세히 살펴봤다. 갈리시아 지역은 대체적으로 산악지형이었다. 여행기 2편에서 이슬람 무어인들에 의해 서고트 왕국이 멸망당했고, 옛 귀족들이 규합하여 반도 북부에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설립했다고 언급했다(관련 기사 : 산티아고에 '산티아고'가 없다고?).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산악지형을 이용하여 이슬람 세력의 침공을 가까스로 막아냈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이 곳의 지형은 경사도가 가파르지 않고 무척 순했기 때문이다. 산악지형이긴 했지만 산들은 완만한 언덕배기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급격한 경사도를 나타내는 지형은 거의 없어 보였다. 방어력을 높여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천혜의 요새를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험준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코르도바 왕국은 반도 북부지역을 점령할 의지가 없었다고 기술한 역사책도 있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지형을 방패삼아 방어를 잘 한 것이 아니라 애초 이슬람인들에게 북부지역은 관심권 밖이었다는 이야기다.

넓은 평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
▲ 돌담 너머 보이는 목초지 넓은 평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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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완만한 지형과 풍부한 강수량 때문인지 갈리시아 지역은 오래전부터 목축업이 잘 발달되었다. 드넓게 펼쳐진 목초지에서 소와 말들이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는 풍광은 갈리시아 지역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 모습들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아름답고, 시원스러웠다.

순례팀은 약 25km를 걸어 포르토마린(Portomarin)에 도착했다. 미뉴(minho river)강을 넘어 다다른 포르토마린은 그 자체로 절경이었다. 미뉴강의 흐름으로 생성된 완만한 협곡 지형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지금이야 현대식 교량으로 미뉴강을 넘지만 중세시대의 순례자들은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교량을 넘어 도시로 진입했다. 그 교량은 서기 2세기 경에 만들어졌는데 아직도 강 한복판에는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정겨움이 가득한 돌담들 너머 소와 말들이 한가롭게 초원을 누비는 모습, 미뉴강이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고 있는 포르토마린까지 보고 있자니 제주도가 생각났다. 또한 자연스럽게 올레길도 연상됐다. 필자가 산티아고에서 제주 올레를 떠올리듯, 유럽 출신 순례자들이 제주 올레를 걷는다면 산티아고 카미노를 떠올릴지 모른다. 필자는 평소에 지론이 하나 있다.

'아무리 지역이 다르더라도 아름다움은 서로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포르토마린에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다리가 있었다. 중세시대 순례자들은 그 다리를 넘어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사진에서 보는 잔해물들이 그 다리의 일부다.
▲ 포르토마린 포르토마린에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다리가 있었다. 중세시대 순례자들은 그 다리를 넘어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사진에서 보는 잔해물들이 그 다리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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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1. 필자는 짐을 꾸릴 때 3-3-3 원칙을 썼다. 속옷 3, 양말 3, 상의 3. 이런 식으로 짐을 꾸렸다. 순례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서 그런지 일부 순례자들 중에는 '단벌신사'들도 있었다. 하여간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으니 옷을 너무 많이 휴대하지는 말자. 가벼운 짐은 순례여행을 더 알차게 만들 것이다.

2. 배낭이 커지면 꾸역꾸역 채워 넣으려고 하는 게 사람의 심리다. 그러니 배낭은 40리터가 넘지 않는 것을 구매하는 게 좋다. 여성순례자들이라면 30리터짜리 배낭을 메는 것도 좋을 듯싶다. 

3. 스페인의 11~12월은 우기라고 한다. 하루에도 비가 계속 오락가락한다. 그러니 꼭 우비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침낭도 필수다. 침구류가 없는 알베르게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4. 도시락용 플라스틱 용기를 준비하자. 의외로 많은 순례자들이 자신이 만든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대신했다. 바르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먹는 도시락도 그럭저럭 괜찮다.

덧붙이는 글 | 안녕하세요?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태그:#산티아고순례길, #갈리시아, #포르토마린, #밥도둑, #짐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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