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엔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관에 갔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왠지 보고 싶지 않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울 수밖에 없다는 그 영화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고른 영화가 <국제시장>이었다. <국제시장>과 관련한 어떤 리뷰도 보지 않았다. 그저 한국의 어려웠던 시절을 그린 영화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감상 후, 나는 애써 피하려 했던 눈물을 조금은 특별한 계기로 흘리게 되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슬프다. 6·25 전쟁으로 시작하여 주인공의 기구한 삶을 그려냈다. 전쟁통에 아버지와 막내 동생과 헤어져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덕수(황정민 분)는 가족을 위해 서독으로, 베트남으로 향한다. 그는 시대를 탓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아들이 나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음에, 자신이 희생할 수 있음에 다행이라고 여긴다.

"내는 그래 생각한다... 이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기 참 다행이라꼬."

처음부터 울진 않았다. 그가 가족을 잃고 울 때도, 탄광에서 죽을 뻔 했을 때도, 탄광에 갇힌 그를 구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영자(김윤진 분)가 한국인들의 기구한 삶을 설명할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너무나도 슬펐지만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그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덕수의 모습 위로 할아버지가 오버랩 됐다

 영화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 CJ 엔터테인먼트


내가 울음이 터진 장면은 이렇다.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으로 간 덕수는 베트공들을 피해 도망치려는 베트남 사람들을 배에 태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베트공들이 들이닥쳤고, 빗발치는 총알들 사이에서 꼬마 아이가 물에 빠지게 된다. 어릴 적 손을 놓쳐 헤어지게 된 막내 동생에 대한 죄책감이 있던 덕수는 물 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구한다. 그리고 자신도 배에 올라타려는 순간 다리에 총알을 맞게 된다. 이 장면에서 갑작스럽게 할아버지 생각이 스쳤다. 덕수는 어느새 나의 할아버지가 돼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 역시 6·25 전쟁을 겪으셨고, 직접 참전하셨다. 그 과정에서 덕수와 마찬가지로 다리에 총알을 맞으셨고, 그 이후로 걸음이 느려지셨다. 그래서인지 그 장면부터 덕수의 모습은 나의 할아버지로 오버랩됐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아프셨을까. 비로소 할아버지가 이해돼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덕수가 무사히 베트남에서 돌아와 기뻐하다가도 다친 다리를 보며 오열하는 영자의 모습에선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이미 나와 너무나도 가까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가 돼 있었다.

비로소 당신을 이해합니다

 주인공 덕수의 모습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주인공 덕수의 모습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 CJ 엔터테인먼트


술을 좋아하시는 할아버지는 항상 술과 함께 옛날 이야기를 풀어 놓으셨다. 그저 지나간 이야기를 안주 삼으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겪어보지 못했으니 모른다고만 했다. 그랬던 내 자신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더 많이 들을 걸, 더 많이 이해할 걸. 항상 옆에 있어주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한 것이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이제 더 늦기 전에 그 시대를 이해해 보려고 한다.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을 살아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누구보다 강할 수밖에 없었지만 꿋꿋히 견딘 세상의 수많은 덕수들 덕분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뜻밖의 영화로 뜻밖의 감정을 느끼게 된 오늘을 감사하며 오늘도 할아버지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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