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천우희, 품격있는 자태 배우 천우희가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35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청룡영화상' 천우희, 품격있는 자태 배우 천우희가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35회 청룡영화상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올해도, 청룡영화상의 선택은 여전히 흥미로웠다. 작품상의 <변호인>이나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 얘기가 아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주시는 상인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린 천우희의 여우주연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나영, 임수정, 한효주 등 일찍이 젊은 여배우의 발굴에 공을 들여온 청룡영화상이다. 

이날 <한공주>로 트로피를 거머쥔 천우희는 또 "앞으로도 배우를 하면서 의심하지 않고 정말 자신감 가지고 열심히 배우 하겠다"며 "그리고 앞으로 더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관심과 가능성이 더 열렸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여우조연상 후보였던 조여정은 청룡영화상 다음 날인 18일 오전 자신의 SNS에 "포기하지 말라고 주시는 상이라는 그녀의 수상소감은 모든 여배우에게 건네는 큰 위로와 응원이었다. 아침에 다시 생각해도 울컥"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신인급 여배우의 여우주연상 수상, 거기에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인 수상으로 천우희는 올 청룡영화제의 아이콘이 됐다. 축하할 일이다. 천우희는 시상식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포털 검색어를 장악했다.

<써니>로 눈도장을 찍은 이래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젊은 여배우의 수상은 그러나 이례적인 경우에 속한다. 올 한 해 역시, '여배우들'의 활약은 미비했다. 조여정과 함께 시상식 사회를 본 김혜수가 '울컥'한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위로'를 받아야 할 여배우들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지 않았을까. 한국갤럽의 '올해를 빛낸 영화배우' 조사를 보면 이러한 '위로'가 왜 필요한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단 한 명의 여배우도 없는 '올해를 빛낸 영화배우' 명단의 의미

 배우 문소리가 연출한 단편영화 <여배우>의 한 장면.

배우 문소리가 연출한 단편영화 <여배우>의 한 장면. ⓒ 서울독립영화제


최근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올해를 빛낸 영화배우'를 발표했다. 10월 25일부터 한 달여간 전국 만13세 이상 남녀 1703명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거두절미하고, 1위부터 5위까지 명단을 보면 앞선 여배우들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명량>의 최민식이 42%로 지지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변호인>으로 청룡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가 2위(22%), <명량> <표적>의 류승룡이 3위(10.5%)이, <군도: 민란의 시대>에 이어 <허삼관>의 감독 겸 주연을 맡 하정우가 4위(9%), <협녀: 칼의 기억> 개봉을 앞둔 이병헌이 5위(4.5%)를 차지했다. 6위부터 10위 역시 죄다 남자 배우로, 6위 강동원(4.2%), 7위 설경구(3.7%), 8위 정우성(3.6%), 9위 현빈(3.3%), 10위 김수현(3.2%) 순이었다고 한다.

흡사, 남자 배우 순위를 보는 듯한 착각이 인다. "올해는 10위권 내에 여배우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간 여배우의 존재감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갤럽 측의 설명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확인 사살에 가깝다.

청룡영화상 남녀주연상 후보만 놓고 봐도 이러한 상황은 감지되고도 남는다. 남우주연상 후보작인 <변호인> <제보자> <신의 한 수> <끝까지 간다> <명량>에 비해 <한공주> <공범> <수상한 그녀> <우아한 거짓말> <집으로 가는 길>은 분명 작품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흥행이나 화제성 면에서 중량감이 떨어진다.

비슷하게, 올 한해 여주인공의 역할이 확실했던 흥행작은 아마 손예진의 <해적:바다로 간 산적> 외에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나마 전도연, 김고은의 활약이 기대를 모았던 <협녀: 칼의 기억>은 주연 이병헌의 스캔들로 인해 개봉 일정이 밀려 버렸다. "여배우를 위한 시나리오가 없다"는 여배우들의 고충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2014년의 상황은 실로 심각한 지경이 아닐 수 없다.

중저예산 영화들이 활발하게 제작돼야 하는 이유

 영화 <한공주>의 공식 포스터.

영화 <한공주>의 공식 포스터. ⓒ 무비꼴라쥬


배우 문소리가 연출한 단편 <여배우>는 그런 점에서 여배우들이 겪는 현실을 기막히게 반영한 수작이다. 문소리가 실명으로 등장해 스스로를 연기한 이 작품에서 여배우 문소리는 매력보다 미모를 신경 쓸 수밖에 없고, 제작자와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그래서 더 감정의 기복이 심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한 여배우의 처지를 감독 문소리는 절박하게, 그리고 블랙 유머에 녹여 묘사한다. 어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 중 하나가 여배우로 보일 정도다. 이 짧은 단편에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노고가 압축적으로 담겨 있는 셈이다. 아마도 영화인들은 물론이요, 여배우들이 가장 공감할 만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위로'와 '응원'을 모두 품은.

다시, 천우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한공주>는 다양성 영화로 분류된다. 제작비는 2억 수준. 이러한 2억 이상 10억 미만의 중저예산 영화 제작이 활기를 띄어야 한다. 그래야 흥행 부담에서 벗어나 여배우들이 조명을 받을 수 있는 작품들이 늘어날 가능성도 조금은 높아 질 수 있으리라. 모두 여배우들이 문소리처럼 단편을 연출하며 자기 목소리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부디 <한공주>와 천우희가 받은 스포트라이트가 바로 꺼지지 않고 좀 더 오래 지속되기를.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여배우들이 중심에서 활약할 수 있는 작품들이 활발하게 제작되기를. 그럴 때 '하향평준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들려오는 한국영화계에 개성 있고 다양한 영화들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을 테니. 우리는 2015년에 더 많은 '천우희'들을 보고 싶다.  

천우희 한공주 손예진 조여정 청룡영화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