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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선고에 서 박한철 헌재소장이 '정당해산'을 선고하고 있다.
▲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선고에 서 박한철 헌재소장이 '정당해산'을 선고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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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은 끝내 헌법의 이름으로 19일 해산당했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8명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결과였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선고를 시작하며 "부디 이 결정이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종식시키고 대한민국 미래와 희망을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듯하다. '해산 결정'을 받아든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헌재 결정이 '다름'을 탄압하고, 진보의 입을 막을 것이라 우려했다.

[헌법학계] "표현의 자유 없는 헌법은 사상누각인데..."

헌법을 다루는 학자들은 '8대1'이란 숫자에 놀란 듯했다.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헌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헌법을 얘기해야 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또 이름을 밝히지 않은 A교수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헌재 판결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사건"이라고 잘라 말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인 헌재가 스스로 '1987년 체제'를 부정했다는 의견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이번 결정은 또 다른 긴급조치"라며 "더 이상 진보좌파의 담론을 늘어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오동석 아주대 로스쿨 교수 : "(압도적인 표차는) 전혀 예상 못했다. 저는 5대4로 해산을 면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헌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헌법을 얘기해야 할지….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헌법은 사상누각과 같다."

A 로스쿨 교수 :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헌재의 판결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사건이지 뭐... 더 이상 얘기할 게 없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열린 어버이연합등 보수단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인공기를 찟고 있다.
▲ 인공기 찟으며 진보당 해산 자축하는 보수단체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열린 어버이연합등 보수단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인공기를 찟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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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로스쿨 교수 : "헌재 5기 재판부가 공안검사 출신 2명, 고위법관 출신 7명이어서 재판부 보수화를 우려했는데, (해산 결정은) 그 결과다. '8대1'은 (헌재에) 의견의 다양성이 확실히 결여됐음을 확인해줬다. 또 내란음모사건의 모임 성격 등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 안 한 상태에서 헌재가 그렇게 판단한 것은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17만 쪽에 달하는 방대한 증거 서류를 제대로 분석했을까.

또 노무현 정부 이래로 우리 사회에서 정치의 사법화, 즉 정치문제를 사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계속 문제돼 왔다. 신행정수도 특별법,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등. 이번 정당해산심판 청구 자체가 이 '정치의 사법화' 완결판이다. 헌재는 거기에 기여했고. 그 부분에선 심히 유감스럽다.

앞으로 표현의 자유는 굉장히 위축될 것이다. 민주적 기본질서는 기본권 보장과 다를 바 없다. 기본권 보장에서도 특히 표현의 자유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그것은 결국 정부와 정책을 비판할 자유를 뜻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야당을 제도적으로 배제했다는 것은, (헌재 결정) 자체가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려한다지만 모순적이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 : "우리 정치가 1958년 진보당 사건 시절로 완전히 퇴행한 것이고, 1987년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최종적으로 부정당한 것이다.

나는 또다른 긴급조치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논의의 지평을 완전히 절반으로 줄여 놓았다. 이제 진보좌파의 담론을 더 이상 늘어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이든 북한과 연결만 시키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할 수 있게 됐다. '막걸리 보안법'의 부활이 멀지 않았다. '1987년 체제'의 종말이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 : "이석기 의원 관련해서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이 문제를 봐야하는데, 진보당이 이석기와 결별을 안 했다는 것을 해산 근거로 삼는다면 논리적 비약이다. 또 헌재 다수는 자주파(NL계열)가 당을 장악했다고 봤는데, 통합진보당의 진성당원은 3만 명이 넘고, 당비를 내지 않는 이들까지 합하면 10만여명이다. 그런데도 다수파가 당을 장악해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할 수 있을까.

이번 판결은 전가의 보도로 쓰일 것이다. 북한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정치세력을 공격하기에 딱 알맞다. 흑백논리가 통하는 사회에서 이번 심판의 근거들은 앞으로 생각이 다른, 특히 새누리당 정책에 반대하는 소수파들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통합진보당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해산 결정 난 통합진보당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통합진보당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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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그렇게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는 아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이 아직 뿌리 내린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위험하다. 한 번 문턱을 넘으면, 다시 넘는 건 더 쉽다. 아마 툭하면 위협할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도 (여당이) 상대 후보들을 공격하기 위한 논거로 쓰일 수 있다. '예전 선거 때 통합진보당이랑 손잡지 않았냐' 이런 식으로."

[시민사회] "헌법재판관들, 한국 민주주의에 치명상 입혀"

시민사회들은 잇따라 낸 성명에서 통분을 감추지 못했다. 참여연대는 "헌재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치명상을 입혔다"며 "헌법재판관들의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헌재 스스로 다양성이란 민주주의 가치를 저버렸다고 했다.

국제사회도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날 로젠 라이프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 이름으로 성명을 내 "이번 결정을 보면 한국 정부가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존중하고 지킬 의지가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며 "결코 안보에 대한 우려를 이용해 다른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결코 동의할 수 없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치명상을 입힌 헌재를 규탄한다. 이는 헌법재판관들의 폭력이다. 헌재 결정이야말로 스스로 밝힌 '사회적 다양성과 상대적 세계관을 인정해야 유지 가능한 우리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것이다. 또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념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헌재의 기존 입장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민주적 기본질서와 헌법을 부정한 헌재라면 존재 의미가 없다. 강제해산을 청구한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와 권위주의 세력에 맞섰던 국민들의 지난한 저항을 통해 그나마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제 헌재와 정부가 이를 부정해버렸다. 그들의 폭력으로부터도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현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국제앰네스티(로젠 라이프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 : "이번 결정을 보면서 한국 정부가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존중하고 지킬 의지가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선) 표현의 자유를 누릴 공간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당국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을 억누르고,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개인을 기소하고 있다. 결코 안보에 대한 우려를 이용해 다른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헌재 결정은 대한민국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사법살인이며 정치권력에 편승한 헌재의 정략적 결정이다. 우리는 헌재 결정을 통한 메카시즘 열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해산)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우리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특히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 우리가 이뤄온 '이 만큼'의 민주주의조차 이렇게 조종을 울리고야 말았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 "정당해산제도는 이승만 정권이 행정처분으로 진보당을 해산한 전례를 반성하며 정권이 함부로 정당을 해산하지 못하도록 도입됐다. 그러나 이 제도가 헌법의 이름으로 다시 진보당을 해산하는 정치적 도구로 악용됐다.

헌재는 자의적 결정으로 소수당에 대한 정부의 폭력행위에 동조했다. 헌재가 오히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할 일이다. 헌재에 의한 헌법의 사망으로 주권자는 다시 민주주의로부터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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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통합진보당, #정당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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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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