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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가 터졌을 때 나는 유산 후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 애꿎게도, 11월 초 두 번째 유산을 하고 나자 세월호 수중 수색을 종료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몸조리가 끝나면 무엇이든 하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다.

몸이 회복될 무렵 '416 기억저장소'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글이 에스엔에스(SNS)에 올라왔다. 조심스럽게 참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27일 경기도 안산으로 향하는 전철을 탔다.

안산 시내에 걸린 세월호 추모 현수막
 안산 시내에 걸린 세월호 추모 현수막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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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과 베개로 가득한 416기억저장소에서

고잔역에 내려 담당자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갔다. 기억저장소 2호관이었다. 창고 같은 사무실엔 이불과 베개가 가득했다. 416기억저장소에서 기록물 관리를 맡고 있는 오윤택씨가 "며칠 전 진도에서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에 수도 없이 등장한, 진도체육관에 펼쳐져 있던 바로 그 이불이다.

이미 오씨와 자원봉사자 한 명이 150개가 넘는 이불을 일일이 접어 끈으로 묶어놓은 뒤였다. 나는 비닐봉지에 베개를 다섯 개씩 꾹꾹 눌러 담고 봉하는 일을 맡았다. 베개는 깨끗했고 막 세탁한 듯한 냄새가 났다.

한 시간 남짓 베개들과 씨름을 하다 보니 어느새 끝이 보였다. 그날 기억저장소 2호관에서의 일은 이것으로 마무리했다.

일 주일 후 다시 안산을 찾았다. 이번 장소는 안산합동분향소에 있는 작업장이다. 안산 분향소는 처음 가 본다. 자원봉사를 하기에 앞서 먼저 조문을 해야겠다 싶어 분향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검은 양복을 입은 이가 검은 리본을 건네며 안내를 했다. 수녀 서너 명이 조문을 하고 있을 뿐 분향소 안은 너무나 한산했다.

수많은 영정사진을 마주하고 보니, 감히 어떤 생각도 떠올릴 수가 없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이 땅에서 벌어졌구나, 하는 참담한 마음뿐이었다. 국화 한 송이를 쥐고 영정사진 앞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서로 간의 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선생님에게 학생들이, 친구에게 친구가, 아이에게 가족들이 보낸 쪽지가 가득 놓여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자리에서 걸음이 멈췄다. 내가 찾은 바로 그 날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엄마가 보낸 편지였다. 잘 참고 있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손에 있던 국화를 내려놓았다.

조문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마음을 추스르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다. 분향소를 나와 근처 컨테이너에 있는 기억저장소로 향했다. 지난주에 함께 자원봉사를 했던 이를 다시 만났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온 주부 김경애씨였다.

"망각하려는 자와 기억하려는 자 사이의 싸움"

자원봉사자 김경애 씨가 A4용지에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자원봉사자 김경애 씨가 A4용지에 메모지를 붙이고 있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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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내가 할 작업은 시민들이 접착식 메모지에 적은 추모글을 하나하나 A4용지에 옮겨 붙이는 일이었다. 메모지를 반듯하게 편 후 글이 적히지 않은 부분을 골라 테이프를 붙여야 한다. 양이 많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작업을 하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그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와 서명운동을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이번엔 실질적으로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얼마 전 기록에 관한 강의를 들었는데, 교수님이 '세월호 사건은 망각하려는 자와 기억하려는 자 사이의 싸움이다. 역사를 만드는 건 기록과 기억'이라는 말을 하시더군요.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 의미 있을 것 같아 자원봉사를 하게 됐어요."

멋진 말이다. 갑자기 전율이 돋는다. 그러고 보니 컨테이너 안이 무척 춥다. 전기난로 하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오윤택씨가 걱정됐다.

"많이 열악하죠. 그래도 할 수 없죠. 유가족분들도 계신데…."

오윤택 씨. 416기억저장소에서 기록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오윤택 씨. 416기억저장소에서 기록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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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대학원에서 기록관리학을 전공하고 논문을 쓰던 중 이 일을 맡았다. 안산에 살고 있던 그에게 담당 교수가 제안했다. 5월부터 안산 지역을 돌아다니며 추모기록물의 위치를 파악했다. 6월엔 안산분향소에 천막을 치고 본격적으로 기록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명칭이 '시민기록위원회'였어요. 천막을 설치하니 사고 관련 가족들이 이것저것 물품을 갖다 주시더라고요. 각지에서 위로편지나 종이학, 종이배들이 들어오면 우선 가족들이 받아본 후에 우리에게 넘겨요. 저희는 그걸 잘 보관하는 거죠."

416기억저장소에서 중요하게 관리하는 기록물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우선 추모기록이다.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보내온 편지와 리본도 그 중 하나다. 길거리에 나붙은 메모지나 리본, 현수막을 훼손되기 전 수거해 보관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희생자 개인의 기록물이다. 사고가 나던 순간 가지고 있던 유품이나 유류품, 사고 당일 친구들 사이에 오갔던 핸드폰 메시지 내용과 사진, 그리고 가족이 가지고 있는 희생자의 물품 등이 그 대상이다.

세 번째로 세월호 사건의 진상과 관련한 것도 포함된다. 진도 VTS 항적자료와 레이더 영상 데이터 등 진상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를 유가족 중심으로 모으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활동 기록이다. 진도에서부터 광화문, 국회 농성 등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들이 해온 활동,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활동도 중요한 기록 대상이다.

기록물을 모으는 일은 주로 기록수집팀에서 담당한다. 기록물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서 수거해오는 방식이다. 컨테이너와 기억저장소 1·2호관은 이들이 수거해 온 기록물을 관리하고 보관하는 공간이다.

한참 메모지를 붙이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메모지에 적힌 내용이 비슷한 것이 많은데 굳이 다 보관할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 것만 보관하고, 나머지는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가 혹시 나중에 필요할 때 비슷한 내용으로 새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뜬금없는 질문인지 오씨가 난감해 했다. 그러자 옆에서 묵묵히 메모지를 붙이고 있던 김아무개씨가 대답을 했다. 그도 오씨와 마찬가지로 대학원에서 기록관리학을 전공하고 잠시 일을 돕는 중이라고 했다.

"내용만 복사해도 정보를 인식하고 활용할 수는 있죠. 하지만 실제 현장에 있던 원본이 가진 느낌까지 전달할 수는 없어요. 기록을 저장하고 관리한다는 건 망각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겨 있어요. 유가족들은 누군가 자신들을 기억한다는 데에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고요. 또 기록저장소가 사고로 상처받은 이들이 모이는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죠. 기록이 가진 다양한 역할과 기능이 있어요."

오씨는 그동안 모은 기록물이 컨테이너로 하나 가득하다고 했다. 종류도 크기도 다양하다. 그중에서 오씨의 마음을 건드린 것은, 바다에서 건져 올려 축축한 채로 전달된, 희생자 학생의 유품이었다.

"축축한 옷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정신이 멍해지더라고요.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몸으로 생생히 느낀 순간이었요. 처음엔 유품 받고 울컥할 때가 많았죠. 지금은 많이 적응한 것 같아요.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그냥 냉정하게 생각하고 작업하려고 노력해요."

원본이 가진 느낌이라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오는 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컨테이너 문이 열렸다. 한남대학교 심성보 교수였다. 그는 416기록저장소 기록관리팀장을 맡았다. 일 주일에 두세 번은 이곳에 온다고 했다.

그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이렇게 기록을 모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역사를 만들기 위한 거죠. 기억해야 싸울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용지는 시민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은 그냥 기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를 호소한 유가족들의 목소리이자 이 자체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 재발방지를 위한 커다란 외침이기도 하거든요. 활동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고요. 이런 것들이 기록으로 남아야 역사가 되겠죠."

그 많은 이불로 과연 무엇을 할까

지난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구조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구조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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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 많은 이불과 베개들이 떠올랐다. 조금 전 오씨의 이야기론, 심 교수가 이불과 베개를 그대로 보관하자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그 당사자가 나타났으니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진도실내체육관의 풍경이 세월호 사건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사고가 난 후 가족들이 가장 먼저 모인 곳이고, 그 안에서 진상규명을 외쳤고, 자식이 돌아오지 못함을 슬퍼했고,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했죠. 만일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진도체육관 하면 무엇을 먼저 떠올릴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바닥'에 깔려 있던 이불이 아닐까 싶어요."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이불로 과연 무엇을 할 생각일까?

"저는 꼭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서 유가족들이 안전사회를 이루는 데 중요한 힘을 보탰으면 좋겠어요. 잘 된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고 험난한 과정이 될 수도 있잖아요? 또다시 길거리에 나설 수도 있는데, 그 과정에 이 이불이 쓰였으면 좋겠어요. 싸움에서 이기고 난 후엔 가족들과 동고동락한 이불이 승리의 상징이 될 거예요. 또 언젠가 세월호 사건을 기리기 위해 진도실내체육관 장면을 재현하는 전시를 할 수도 있고요. 그때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메모지를 붙이는 일도 마무리됐다. 세 시간 사이에 몸은 꽁꽁 얼어버렸다. 잠바를 여미고 문을 나섰다. 분향소 위로 초저녁 달이 떠올랐다. 집에 오는 길, 심 교수의 마지막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았다.

"유가족들은 지금도 여전히 시민들의 연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시민들이 잊지 않았다는, 지지하고 있다는 연대의 표현, 그것이 가장 절실해요."

이날 추운 곳에서 너무 오래 있었는지, 몸살이 나 버렸다. 결국 자원봉사는 한 주를 걸렀다. 아직 모아야 할 것도, 정리해야 할 것도 많다고 했다. 몸이 좋아지면 다시 그곳으로 가야겠다.

안산합동분향소 위로 달이 떴다.
 안산합동분향소 위로 달이 떴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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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후원·자원봉사 문의 : 031-410-0416
자료수집 이메일 : 416archive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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