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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대 개새끼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20대가 정치, 사회현상 등에 분노를 느끼지 못해 결국엔 사회적 불익을 당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20대의 잘못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망쳐 놓은 사회에서 20대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에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은 '스펙 부족'으로 사회에서 도태됩니다. 20대는 개새끼가 아닙니다. 어른들 때문에 고생하는 20대가 '개새끼'로 불리며 책임까지 져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언론'을 전공하고 있는 지방대생입니다. 요즘 시대 여느 대학의 문제처럼 우리 학교에서도 대학 본연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도서관 열람실이 있던 자리에는 취업을 돕기 위한 경력개발센터가 들어섰고, 학교의 정책은 하나같이 취업을 향하고 있습니다. 수업이 부족해 학습권이 침해되는 상황에도 대학의 예산은 이미지 쌓기와 친정부, 친기업을 위해 사용됩니다. 대학은 정부와 기업이 기획한 '취업 열망 축제'를 기꺼이 주최합니다.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을 논하는 곳이 아닙니다. 불쌍한 대학생들은 그렇게 '개새끼'가 되어 갑니다.

20대는 개새끼가 아니다. 어른들 때문에 고생하는 20대가 '개새끼'로 불리며 책임까지 져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20대는 개새끼가 아니다. 어른들 때문에 고생하는 20대가 '개새끼'로 불리며 책임까지 져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 제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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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나귀를 품다

제가 다니는 한동대학교는 기독교 사학으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다분합니다. 토론하기보다는 '좋게좋게' 사랑으로 보듬기를 권합니다. 대학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교내의 불미스런 사건에도 학교와 학생들은 '좋게좋게'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학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때마다 '좋게좋게' 넘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뭐든 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은 학문을 추구해야 하며, 학교는 학생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외쳐도 일개 학생의 말을 들어줄 리가 없었습니다. 공론의 장이 필요했습니다. 토론이 죽어버린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언론'이었습니다. '독립 언론' 형태의 매체를 창간하여 화두를 던지는 것. 마침 학교에서는 학생에게 '창업'을 적극적으로 권유했고, 옳다구나! 전공을 활용한 창업을 통해 공론의 장을 부활시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기사 한 번 제대로 써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매체 창간'은 막막한 일이었습니다.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46기' 수료생인 저에게는 매체 창간이 '취미'라는 오연호 대표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 대표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오 대표는 매체의 방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다른 대학에 있는 독립언론 사례도 조사했습니다. 한국외대 '외대알리', 국민대 '국민저널', 성신여대 '성신 퍼블리카' 등 이미 훌륭한 활동을 하고 있던 독립언론 선배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은 저는 2014년 겨울에 결국 매체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나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당당히 외치기 위해 '당'신과 '나'의 '귀'가 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화려한 마차가 아닌 비루한 새끼 나귀를 선택한 예수의 정신을 따르자는 기독교적 의미도 있었습니다.

<당나귀> 창간호 커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기 위해 '당신과 나의 귀'가 되다.
 <당나귀> 창간호 커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기 위해 '당신과 나의 귀'가 되다.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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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당나귀>의 탄생과 '마구간 프로젝트'

새끼 나귀의 탄생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개강 이후에 창간호를 내려던 계획은 급하게 바뀌었습니다. 방학 중 신임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부당한 이유로 탈락한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기사와 인터뷰를 준비하여 창간호를 내기 전 특별 기사를 먼저 내보냈습니다. 자세한 설명도 없이 <당나귀>가 등장하여 구성원들이 당황했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습니다.

느닷없는 '독립 언론'의 등장에 학교는 당황한 듯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창간호를 낼 때에 학교는 상당히 비협조적이었습니다. 학교는 규정상 지도교수가 없는 단체는 간행물을 발간하지 못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언론을 공부하면서 배운 '언론의 자유'에 의하면 언론, 출판은 허가나 검열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의 언론, 출판을 검열합니다. 전근대적인 위헌적 규정이 대학에 버젓이 존재합니다.

상위법인 헌법에 위배되는 규정은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2014년 3월 27일, <당나귀>는 배포되어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부족한 콘텐츠임에도 많은 학생들이 호응해줬습니다. "이런 언론이 나오길 바랐다", "학교에 이런 목소리도 필요하다"라는 칭찬이 들려왔고, "<당나귀>가 나오게 되어 정말 기분이 좋으니,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며 후원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응원에 힘입어 <당나귀>는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교내의 문제적 인물을 인터뷰했고, 학교에 떠도는 루머의 사실관계를 파악하여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려 했습니다. 또한, 이사회 회의가 '만장일치'로 일관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와 '이명박 도서관 건립' 논란이 있을 때에 담당 보직 교수를 인터뷰하는 등 민감한 사안을 다뤘습니다. 덕분에 학교에서 <당나귀>는 더욱 불온한 단체로 인식되었습니다. '취재 거부'를 당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기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더 많은 학생이 직접 참여하고 관찰할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구간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마구간'은 세상 어떠한 곳보다도 초라한 곳이지만 예수가 탄생의 장소로 선택했으며, '당나귀'가 서식하기에 어울리는 곳입니다. '마구간 프로젝트'는 소외된 이웃과 불의한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마구간 프로젝트' 1탄으로는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200명이 넘는 학생이 참석했고, 네 시간가량 유가족의 말을 들으며 울고 분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관련기사 : "사망 원인을 몰라서 사망신고를 못해"). 2탄에서는 간담회를 통해 교내의 비정규직 문제, 특히 간접 고용되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청소, 경비 노동자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당나귀> 구성원과 참석한 일부 학생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체를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마구간 프로젝트' 1탄&2탄 포스터. 1탄은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2탄은 비정규직 간담회 '미안해U'
 '마구간 프로젝트' 1탄&2탄 포스터. 1탄은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2탄은 비정규직 간담회 '미안해U'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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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자 버티자 이기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합니다. 헌법 1조를 봐도 그렇고, 적어도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이 국가의 노예가 됩니다. 소수의 국가 권력을 위해 국민이 희생됩니다. 하기야 헌법재판소가 정당을 해산하는 시대에 헌법 가치가 무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는 대학교에서도 주객전도가 일어납니다. 학교는 리더십과 기업을 위해 존재합니다. 학교의 주인인 학생에겐 주권이 없습니다. 주체와 객체가 제멋대로 바뀌는 세상입니다. 어떻게든 주권을 뺏어오고 싶었습니다. 대학생으로서 빼앗긴 권리를 찾아오려고 몸부림치는데 생각보다 쉽진 않습니다.

<당나귀>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동지라고 믿었던 학생들의 불신과 비난입니다. 학교 리더십이나 교직원들은 애초부터 감찰의 대상으로 삼았던지라 어떤 '핵폭탄'이 날아와도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학생들에게서는 작은 '돌멩이' 하나만 날아와도 겁이 납니다. 그럴 때면 '왜 내가 굳이', '나도 스펙이나 쌓을걸'이라는 생각이 침투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솟구칩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비정규직 이야기를 다룬 인기 웹툰 <송곳>의 명대사입니다. 지금은 국가가 국민을 존중하지 않고, 학교가 학생을 존중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나귀>는 어떻게든 학교가 우리를 두려워하도록 몸부림쳤습니다. 학교가 본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두려움을 심어줄 것입니다.

tvN 드라마 <미생>에서 오상식은 회사를 떠나며 장그래에게 말합니다. "버텨라. 그리고 이겨라" <당나귀>는 미약합니다. 제대로 교육받은 기자도 없고, 조직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별다른 기사를 쓰지 않아도 학교는 <당나귀>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이 <당나귀>에겐 가장 큰 임무입니다.

어른들께 장그래처럼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만 하면... 저도 개새끼 말고 사람새끼 되는 거죠?" 버티다 보면, 누군가에겐 두려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두려운 존재가 되면 국민이 주인인 국가, 학생이 존중받는 학교가 만들어지리라 믿습니다. 장그래씨, 그리고 '개새끼'로 불리는 이 땅의 모든 20대 여러분, 우리 힘냅시다.

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태그:#청춘기자상, #당나귀, #매체창간, #한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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