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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첫날, 함께 만든 조끼를 입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끼를 만들었다. 다 만들고 나서 함께 입고 첫 인증샷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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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끼 만드는 세 여인 단식 첫날, 미싱이 있는 이웃의 집에 함께 모여 단식 조끼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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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아침, 전북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 아이들은 '평화로운 에너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2주간의 길 걷기에 나섰다. 밀양, 부산 고리 원전, 경주 월성 원전과 방폐장 등 에너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거나 대립이 일어나고 있는 곳들을 둘러보고, 우리들에게 생필품이 된 에너지에 대해 '평화'의 관점에서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기 위한 여행길이었다.

바로 그날 비슷한 시간, 진도 앞바다에서는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325명을 포함해서 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 중이었다. 조금 늦게 사실을 접하게 된 나는 304명이나 희생 당한 그 명백한 사실을 한동안은 현실로 받아들이질 못했던 것 같다. 크게 슬프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국정 최고 지도자이자 구조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호소하려는 가족들을 막아서는 경찰을 보았고, 대통령을 만나지 못한 채 거리에 방치된 가족들을 보아야 했다. '도대체 여긴 누구의 나라지?'라는 의문과 함께.

한참이 흐른 뒤에 대통령은 가족들을 불렀고,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언제든 찾아오라며 한 엄마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제스처를 취했다. 길거리에 방치된 가족들의 모습을 몇 번이고 본 나로서는 대통령에게서 진심이 느껴지질 않았다. 마치 유가족들에게 '내가 부를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내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어가야 했는지를 밝혀 달라며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하던 유민 아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나선 아빠들,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유가족들을 헐뜯고 조롱하는 사람들, 정치적 계산으로 분주한 정치권 등 우리 사회의 정말로 다양한 모습들을 보면서 나 역시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4월 16일까지, 마을에서 릴레이 단식을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마음만 무거운 채로 한동안을 보내다가 8월 어느 날, 학교 동료 교사 셋이 머리를 맞댔다. '우리 마을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릴레이 단식을 해보자. 그리고 그 기간은 일단 내년 4월 16일까지로 하자'. 8월 25일, 이 셋이 모여 각자 노란 단식 조끼 한 개씩을 만들면서 우리 산내 마을(전북 남원)의 릴레이 단식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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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끼 앞면 그날 만든 조끼 중 하나의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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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끼 뒷면 세 개의 조끼 중 하나의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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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조끼를 건네주고 건네받으면서 우리의 단식은 이어져왔고, 지난 12월 2일 100일째를 맞았다. '아, 우리가 이렇게 마음을 모으니 100일이 가능하구나' 싶은 마음에 함께 하는 분들이 고마웠다.

솔직히 단식 신청을 하고 단식 일지를 올리고 밥을 굶으면서도 '우리의 이런 조그마한 움직임이 어떤 의미가 있지?'라는 절망감이 닥쳐올 때도 적지는 않다. '우리가 알아서 적당히 할 테니 가만히 있으라'는 세력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가만히 있는다면, 이 사회는 또 다른 참사를 준비하는 참사 공화국이 될 것이다. 가만히 있음으로써 나 역시 참사 공화국을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차례가 되면, 날짜가 적힌 단식 조끼를 갖춰 입고,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먹는 행위를 의식적으로 멈추고,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한 기도와 다짐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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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23일째 마을 어린이집 선생님이 단식하시는 날, 아이들과 소풍가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그래도 도시락 한 입 먹어보라며 권했는데, 유혹을 이겨내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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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56일째 우리 마을에 있는 실상사에서는 8월 30일부터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천일기도를 올리고 있다. 기도소에서 56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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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실종자 아홉 분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고, 논란 속에 통과된 특별법은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너무도 부족하다.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세월호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그만 잊으라'는 강압과 유혹, 이겨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동안 많은 참사를 당하면서, 놀라고 흥분하고 욕하다가 세월과 함께 잊기를 반복해왔다. 그것의 결과가 지금의 세월호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이런 우리의 망각의 습성이 이번 세월호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눈 앞에서 잠겨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이제 조금은 더 제대로 알게된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도대체 어떤 사회인지를,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나는 어떤 역할을 해왔던지를.

고등학생 설문조사에서 위기 시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데 7.7%만이 '그렇다'고 답하는 사회는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작더라도 그것을 놓지 않으려 한다. 암담하고 절망적일수록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그렇게 끝까지.

절망감이 엄습할 때, 곳곳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계신 많은 분들의 소식을 전해들으면, 우리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가족들이 앞으로 살아내야 할 일상을 생각해보면, 그 슬픔의 무게가 상상이 되질 않았고, 그저 마음이 막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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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45일째 얼굴 드러내기가 싫었나보다. 실상사작은학교 2학년 학생이다. 학생들은 이틀 이상은 단식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서 신청자에 한해 하루씩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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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100일째 12월 2일 100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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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차에 안산에 치유센터 '이웃'이라는 공간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들이 편안하게 와서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고 수다 떨 수 있는 공간, '천천히 오래' 가족들과 함께 삶을 나눠갈 공간,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씨를 비롯해서 많은 전문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을 모으고 있는 곳.

그곳을 위로와 치유의 따뜻한 공간이 되도록 하는 데 우리도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태고 싶었다. 시골 마을에서 농사짓고 살아가는 우리 학교는 그럼 농산물로라도 마음을 보탤 수 있을까? 선생님들은 그렇게 마음을 모았고, 3학년 아이들이 졸업여행에서 돌아오면 함께 의논해서 결정하려 한다.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게서 힘을 얻어가면서, '이제 그만 잊으라'는 강압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정의롭고 안전하고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겠지?

76일 농성을 마치며 이제 더 이상 대통령에게 만나달라 애원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유가족들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우리들이 의지할 곳은 근본적으로 청와대도 국회도 아니고, 이름 없는 우리들끼리 의지하며 만들어가는 위로와 치유의 공동체임을.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위로받고 위로하며, 앞으로의 먼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