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봄>에서 정숙 역의 배우 김서형이 1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봄>에서 정숙 역의 배우 김서형이 1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저에 대한 편견은 없었나요?" 영화 <봄> 출연 제의를 받은 김서형이 제작사 대표에게 먼저 꺼냈던 말이었다. 중풍을 앓게 된 천재 조각가를 위해 헌신했던 여자 정숙은 말 그대로 정숙한 1960년대 여성상이었고, 김서형 정숙 역으로 자신을 택한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물론 확신은 있었다. 대중에겐 드라마 <아내의 유혹> 등으로 강하고 드센 여자상으로 알려졌지만 김서형은 "(그간 맡았던 역할들이) 겉은 내지르는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 모성애와 멋진 여성상의 요소가 담겨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정숙이 새로운 캐릭터라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이런 시나리오를 제게 줬다는 것에는 놀랐죠. 김서형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겠죠? 배우는 주어진 배역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잘 안됐을 때 절망감이 참 크지만 편견을 갖고 애초부터 특정 역할을 배제하게 되는 건 더 무서운 일이죠."

"<봄>, 너무 일찍 만난 건 아닌지 노파심 들기도"

 영화 <봄>의 한 장면.

영화 <봄>의 한 장면. ⓒ 스튜디오 후크


지난 11월 20일 개봉해 국내 극장에서 상영 중인 <봄>은 스크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무래도 중소 배급사가 담당했고, 영화의 상업성 또한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 때문이다. 국내 흥행과는 별개로 이미 <봄>은 마드리드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김서형), 밀라노국제영화제 대상, 촬영상(김정원), 여우주연상(이유영) 등을 휩쓸며 주목을 받았다. 

한 남자의 아내로 묵직한 감정선을 연기했던 김서형은 "어쩌면 너무 빨리 <봄>을 만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결혼을 안 하고 상상해서 하기엔 좀 내가 부족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속마음을 공개했다.

"조각가 준구(박용우 분)와 정숙이 어떻게 만났고 결혼까지 했을까 궁금증이 들었어요. 시나리오엔 나오지 않아서 감독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죠. 군더더기 없이 그저 정숙을 받아들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특히 영화 중반 이후에 나오는 논둑 위를 걷는 장면을 찍을 땐 많이 지쳐있었어요. 촬영 순서가 바뀌곤 해서 감정선을 지키려고 음악을 듣곤 했거든요.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참 궁금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사진 혹은 판화 같이 아름답게 나왔더군요. 드라마 <기황후>와 <개과천선> 전에 찍은 작품이었고, 그걸 1년 6개월이 지나 다시 보니까 새롭더라고요. 당시엔 몰랐는데 잠시나마 제 마음을 치유했던 작품이었죠."

편견에 대한 정면 도전 "꾸준히 다양하게 작품 해왔다"

 영화<봄>에서 정숙 역의 배우 김서형이 1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서형 "엄밀히 말하면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사랑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사랑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 출연한 거예요. <봄>도 어떤 이미지 변신을 해야겠다고 선택한 게 아니에요." ⓒ 이정민


사실 마드리드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에 김서형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보기에 따라 정숙이 주연일 수도 있지만 조연일 수도 있다"며 "갑작스러운 수상이었고, 이유영씨가 이미 밀라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기에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당시를 소회했다.

"시나리오 자체만 보면 다들 제가 조연이라 생각하시더라고요. 비중을 떠나서 전 그저 한국영화에서 이런 작품이 나온다는 게 좋았던 거고요. 제가 잘했다고 하기보다는 감독님과 스태프에게 큰 도움을 받은 거였습니다. 사실 제 분량에서는 감독님이 멀리서만 찍어 섭섭함도 있었는데 실제로 화면에 나온 모습을 보니 참 잘 찍으셨더라고요(웃음)."

앞서 잠시 편견에 대해 언급했지만 김서형 스스로도 본인에 대한 편견이 있진 않았을까. "스스로는 단순한 이미지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라는 작품을 했잖아요. 그땐 에로배우 취급도 당했어요. 드라마에서 한동안 안 보이다 영화를 갑자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나 봐요. 여전히 저보고 '에로배우 출신이냐'는 댓글도 달리더라고요. 엄밀히 말하면 그 영화는 사랑이야기입니다. 수많은 사랑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 출연한 거예요. <봄>도 어떤 이미지 변신을 해야겠다고 선택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김서형에겐 또 다른 모습이 있고 에너지가 있는데 감독이나 PD들이 잘 모른다며 답답해하는 분도 있어요. 감사한 일이죠. 센 캐릭터의 드라마만 한 게 아니라 작은 영화도 꾸준히 했고, 스스로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봄>에서 정숙 역의 배우 김서형이 1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서형 '제 마음이 추워서 겨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이 아닌 순수한 세상을 찾는 의미에서 겨울을 좋아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인생은 지금 겨울인 거 같아요." ⓒ 이정민


<봄> 상영 이후 김서형은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딱히 작품을 정해놓은 건 없다고 한다. "그저 건강했으면 좋겠고, 사랑 역시 얻으려 하기보다는 내버려 두면 언젠간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김서형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 김서형의 상태는 사계절 중 어떤 것에 해당할까. 희한한 궁금증이 들었다.

"제가 눈을 좋아해요. 여행을 가서 펑펑 내리는 흰 눈을 보고 싶네요. 영화 <러브레터>를 참 좋아하는데 늘 그곳을 가고 싶어 했으면서도 못 갔어요. 이참에 순백의 땅을 밟고 싶어요. 제 마음이 추워서 겨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이 아닌 순수한 세상을 찾는 의미에서 겨울을 좋아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인생은 지금 겨울인 거 같아요."

김서형 박용우 이유영 조근현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