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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계의 비정규직, 외주업체 직원들

작가나 PD들이 정권의 언론 탄압으로 각 본사 앞에 진을 친 지 3년이 되었다. 이명박 정권 증기부터 크고 작은 파업에 들어간 이들은 가지각색의 인물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방송국 정규직이라는 것. 반면 정규직들이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에 살지만,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방송계의 비정규직인 외주제작사 직원들이다. 2014년 현재 지상파 3사 편성물의 절반 이상은 외주제작사를 통하여 만들어 지고 있다. 본사 제작에 걸림돌이 생기거나 위와같이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간 경우에 투입되는 외부인력도 바로 외주제작업체의 직원들이다. 각종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들은, 제작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외주제작 대행을 검토하겠다'라고 선언하고, 이에 시청자들은 강한 반감을 보이는 것이 현 실정이다.

방송의 메카인 여의도에는 방송국들과 갑을 계약을 맺은 약 300개의 외주업체들이 있다. 크게는 200명 이상의 업체부터, 한 두명의 독립피디들 까지, 외주업체는 방송산업의 보이지 않는 인력으로 그들 나름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유령직원이다. 그 어떤 양식의 근로계약서나 근로자로서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출발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방송은 정말 못해먹을 짓'이라고 고백한다.    

방송국의 횡포와 보이지 않는 학대, 벌써 15년 째

오늘날 현사회는 국내 특유의 '비정규직' 문제로 뜨겁다. IMF 시절이 남긴 슬픈 유물 중 하나는 값싼 노동력의 고착화였다.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내산업의 특성 상, 가장 효과적인 비용절감이 바로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좋은 방법은 비정규직 제도이다. 대부분의 국내 산업시장에서 다양한 명목 하에 발견되는 이 비정규직 제도는, 각종 법망과 상식의 선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며 지난 10년간 명부명실한 사회악으로 자리잡았다. 방송산업도 마찬가지다.

방송계의 외주제도, 즉 비정규직 제도를 이해하려면 그 출발을 알아야 한다. 1995년 시장경제에 입각한 뉴미디어의 꿈을 안고 출발한 케이블 방송국들은 IMF 전후로 순식간에 연쇄 부도를 겪으며 대량의 방송계 실업자들을 양산했다. 초기정착의 적자를 고려한 시작이었지만, 금융위기로 인한 국내 기업들의 투자를 잃은 것이다. 실업자들은 대부분 80년대 지상파나 국영방송국에서 경력을 쌓고 스카웃된 피디와 작가이며 잘나갔던 간부들이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카메라 감독이며, 음향과 조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이기도 했다. 바로 이들이 국내 외주제작사의 1세대이며, 현재 대표직을 맞고 있는 사장들이다. 이들은 케이블TV로의 이직 직전 몸담았던 '친정' 방송국들의 인맥을 활용하여, 90년도 후반부터 각종 교양 및 예능, 다큐 프로그램들을 수주해왔다. 그리고 2010년 전후로 종편채널과 CJ를 중심으로 한 민영 케이블 채널들이 부상하면서, 현재 다양한 방송국들과 갑을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그들은 파산 중이다.

시키는 것 다 해도 무조건 적자... 왜?

외주제작사들이 대부분 적자를 내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대표들은 일반적인 정서에 입각하여 직원들을 착취하는 관행을 반복하고 있다. 월급이 밀리는 것은 기본이며, 밀린 급여도 받지 못했다는 외주 PD들은 숱하게 많다. 점심값이 없어서 전원 편의점 삼각김밥만 6개월을 먹어야 했다는 외주업체의 직원들. 그 배후에는 지상파 방송국이 있다. 국내 '3사'라 불리우는 방송국들은 공영방송국임에도 불구하고, 외주제작의 단가를 낮추어 큰 수익을 내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그 뒤를 케이블 방송국들이 잇고 있다. 기업은 이윤이라도 추구하지만, 방송국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모든 TV 프로그램에는 제작비라는 것이 있다. 편당 적게는 500만원부터 많게는 5000만원까지, 다양한 제작비를 산출하는 것은 방송국의 몫이다. 대부분 정해진 관례가 있지만, 이 산출에는 순수 제작비와 '인권비' 측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미 받은 몫으로 같은 인력을 더욱 값싸게 이용하는 방법이 외주업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방송국은 정산업무까지 외주업체에 떠맡기며, 본인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완성된 녹화물만 받는 관행을 수년 째 저지르고 있다. 심지어 간혹 외주제작사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질 높은 프로그램을 제작하여도, 방송국은 모든 지적 재산권을 앗아간다. 그것을 그대로 표절하여도, 호소할 곳은 아무데도 없다. 현재까지 여기에 대한 대책이 아무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결국 방송국의 간부들은 불공정한 게약으로 을쪽을 착취하여 본인의 성과금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로비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개선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2001년 KBS는 이러한 '단가후려치기'를 자랑스럽게 여겨, 2000년의 외주제작 단가가 1998년보다 10% 낮아지자, '외부 용역 계약을 3단계 등급으로 낮추어 예산절감에 크게 기여했다'라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일은, 2000년 이후로 외주제작의 단가가 조금도 상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외주업체 대표들은 혹시라도 눈밖에 날까봐 노심초사다. 대기업과 하청업체들과의 수직문화가 방송계에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자본의 착취가 이루어지자, 그 다음은 예상대로 흘러간다. 갑을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본사 직원들은 외주업체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며, 폭력을 행사한다. 방송국 정직원들은 외주제작업체를 완전한 남으로 소외하며, 둘 간의 소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0년간 방송국을 들낙거리는 외주PD들에게 인사를 거는 정직원은 아무도 없다. 남이기 때문이다. 본사인력을 쉽게 채워주기만 하는 '소모품' 역할을 담당하는 외주PD 문화. 그것이 직원들을 밀린 월급보다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무력한 하청업체들... 결과는 직원들의 몫

10년차 외주업체 직원들의 수입은 통상적으로 월 250정도. 시급으로 치면 5000원 수준도 못 된다. 하루 20시간과 주말 내내 일하는 것이 고착화 되어있기 때문이다. 업무의 비효율성은 이루 말할 수도 없는데, 이는 유독 '을'을 만날 때면 시간관념이 사라지는 본사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촬영 전날 젊은 직원들이 회사에서 밤을 샌 후 활영지에 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복리후생과 4대보험은 커녕, 퇴직금 조차 없다. 신입이 정식 PD로 인정받기 위하여 걸리는 기간은 약 3년 정도. 조연출은 PD가 되기 위하여 매달 80만원 가량을 받으며 3년이 넘게 일한다. 아예 교통비만 지급하는 곳도 수두룩 하다. 막내작가 역시 마찬가지. 시급으로 전환하면 2000원도 안 된다. 하지만 바라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방송국의 정직원이 되려면 필요한 각종 학벌과 시험성적을 보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야근은 당연한 일이다. 방송국들은 무리한 단가를 요구하면서, 외주업체로 하여금 일정 하청업만 수급하게 만든다. 따라서 촬영, 조명, CG 등의 기술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모든것이 외주업체 직원들의 몫이다. PD들은 사전촬영에 대한 준비부터 현장감독, 이후의 편집과 종합편집 모두를 스스로 해야 한다. 가령 MBC PD들은 전문 편집기사들과 작업한다. 10대가 넘는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물들을 가편집하는 데는 전문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외주PD들은 모든 영상을 직접 보고 골라 직접 편집해야 한다. 당연히 질이 떨어지고 노동력은 올라가는 것이다. 스케쥴 역시 모두 방송국에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외주PD들이 일하는 시간은 새벽대이다. 우습게도 방송국은 본사의 자료실과 장비실을 외주업체에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외주직원들은 각 지역에 흩어진 촬영지, 편집실, 종합편집실, 음향실, 더빙실 등을 전전하며 이동으로만 십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일단 외주의 손으로 넘어오면, 둘은 철저히 따로 움직인다. 외주업체는 그들만의 촬영팀, 카메라팀, 출연진 섭외를 동원하여, 자체 작가들이 써내린 방송대본으로 촬영.편집 후, 외주들만 이용하는 종편(종합편집)업체에서 CG효과를 입히고 사운드를 믹싱한다. 사실 본사가 주는 안은 제목과 포맷 뿐 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국은 모든 공헌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외주행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담당 프로듀서는 누구일까? 각종 르포, 다큐, 토론물을 기획하는 방송국 국장들이다. 그들은 <그것이 알고싶다>와 <PD수첩을>을 제작한다. 하지만 이들이 자회사의 '협력업체'인 외주 직원들을 대하는 자세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다.

'M부심'과 'K부심'... 자체 시트콤 찍는 방송국 PD들

유사이례 국내 언론인들은 갑이었다. 특히 대형 매체에 소속될 경우, 그들이 누리는 권력과 복지혜택은 어마어마 하다. 그래서인지 그들 중 다수는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40대 외주업체 본부장이 20대 방송국 정규직 앞에서 하인처럼 구부정하게 서있는 모습은, 기타 모기업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음 2가지 사례는 필자가 실제로 목격하거나 인터뷰한 사건들 중 몇 가지이다.

8년차 외주PD T씨는, MBC 사회복지 교양 프로그램 <XX>의 연출팀이었다. 빈민층 가정을 방문하여 기부금 모금도 하는 이 프로그램의 책임 프로듀서는 MBC의 한 국장이다. 본사 직원들과 회식자리를 갖게된 외주제작사 직원들은, 술자리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본사PD가 술에취해 외주 PD의 머리에 이유없이 술병을 던진 것. 그러나 문제는 그 후였다. 본사와 제작사 직원 모두 머리를 다친 PD에게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라', '네가 참으라'는 것이었다. 급기야 화까지 내기 시작했다.    

10년차 외주PD K씨는, MBC 다큐프라임에서 정부기관 홍보 영상을 수주했다. 당 기관은 영상에 담을 내용을 간략하게 서류화해서 넘겼고, 담당 PD는 AD(조연출)들과 작가팀을 데리고 1달 동안 영상을 완성했다. 본사 제작진과 프리뷰하는 날, 담당 프로듀서인 국장은 2시간이나 늦게 왔다.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영상을 시청한 그는,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직업정신'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너는 평생 '외주피디'나 할 작정이냐고 묻더니, 언론의 역할에 대한 설교를 지루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본이 너무 순종적이고 뻔하다는 것이었다. 본사의 밥그릇을 위해 수주받은 홍보물에, 저널리즘을 요구하다니. 어불성설이다. 홍보할 가치가 없는 것을 홍보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방송국에서 수주를 거부했으면 그만이다. 인격에 큰 손상을 받은 K씨와 작가들은 그 와중에도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정신이 없었다. 

무형적 학대는 결국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MBC는 자체의 모순에 대한 분노를 자신의 '동료들'에게 풀며, 이내 그것을 영원히 잊어버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숱한 고발물을 제작하면서, 지난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코앞에서 벌어지는 착취에 대해 공개하지 않았다.

꽉 막힌 현실... 모든 게 외주인 탓

최근 SBS의 논란거리였던 '일베 보도'.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고 노무현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포토가 지상파에 걸렸다. 그러나 SBS사는 "'구글 검색이 위험하다'고 몇 번이고 주의를 시켰는데 외주 제작사 피디라서 지침이 잘 내려가지 않았다"라고 밝히며, 그 책임을 오롯이 외주제작사에 전가하였다. KBS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8월, KBS 1TV <걸어서 세계속으로> 방송에서, 자막 논란에 공식적으로 사과한 담당 국장은 "해당 프로그램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맞아 긴급 기획해 외주제작사에 맡겨졌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건들은 상호간의 '프리뷰'라는 제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외주제작사와 소통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얼마나 본인의 기획 의도가 담긴 결과물에 관심이 없는 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누누히 반복하지만, 다수의 방송국 직원들은 외주직원들을 기본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내 지식인들이 반복하는 것처럼, 소통할 자리에서 명령을 내린다. 외주 직원들이 처한 비효율적 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은연중 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더욱이 학벌사회와 본사의 자부심이 더해져, 두 프로듀서 간의 양극화는, 기타 방송계의 양극화와 함께 더욱 심화되고 있다. 자본가와 서민, 정부와 국민, 지식인과 노동자의 정신적 양극화를 최대한 억제하는 데 이바지 해야 할 분야가 바로 방송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격화되어 있는 것이다.가령 드라마 제작은 90퍼센트 이상이 외주제작사들의 몫이다. 그러나 외주 제작사 스태프들은 일당 5만원도 받지 못하며, 출현료가 억대인 스타과 함께 일하며 멸시까지 당해야 한다.  

방송이란 근본적으로 깊이가 없으며 소비적인데, 이는 고급문화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장점으로, 일반 대중들을 사회와 정치에 참여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중과 소통하려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되, 그것을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평가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바로 여기에 외주PD의 당위성이 있다. 국가나 기업이 지분을 소유하는 방송국과 달리, 민간업체나 개인은 대중의 현실을 제약없이 흡수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교육배경과 지역, 정치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현실의 다각화에 유리하다. 실제로 언론의 선두를 달리는 영국과 미국에서는 독립PD의 영역이 크게 발달되어 있다. 그들은 공채나 명문대라는 인증 없이도, 전세계로 유통되는 질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현재 국내 지상파는 포화상태에 머물러 있다. 약 70퍼센트가 베테랑 간부들로 구성되 있으며, 공채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제는 케이블 채널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지상파는, 지난 20년을 청산하는 의미에서라도 외부인력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한 지상파 뿐 아닌 여러 국내 방송국들은 먼저 자사의 현실과 부조리를 청산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진정성은 더욱 추락할 것이라 사려된다.      


태그:#외주피디, #외주PD,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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