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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추가 안 달렸는데 그것 때문인가."
"배추가 열무처럼 생겨 버렸어."
"지금은 외국서 만든 것이라 씨앗 받아도 소용없어."
"그런데 씨앗이 왜 그렇게 돼버렸어?"

F1종자의 배추에서 채종한 씨앗으로 키운 2세대 배추. 제 모양이 안나온다
 F1종자의 배추에서 채종한 씨앗으로 키운 2세대 배추. 제 모양이 안나온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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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클럽 농장에서 일하는 노인들과 '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분들은 과거처럼 씨앗을 받아 채종한 후, 농사를 지었다가 낭패를 본 경험들이 있었다.

원래의 형질을 보존한 채 대대로 자손을 남기는 씨앗이 사라지게 된 배경에는 생명 과학 기술의 발전과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기업의 탐욕이 있다. 지금도 종자 기업들은 새로운 씨앗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특허를 가지고 종자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씨앗이 가진 고유의 형질을 없애거나 조작해 크기와 맛을 바꾸고, 많은 수확이 가능하고 병충해에 강하다고 선전한다. 이들 씨앗의 공통점은 자식 세대로 부모가 가진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하고, 한 세대에서 끝난다는 것. 그리고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것이다.

금보다 비싼 파프리카 씨앗

기업이 만든 씨앗으로 농사를 지으면 해마다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고, 사용료(로얄티)를 내야 한다. 파프리카 씨앗은 같은 무게로 가격을 비교하면 금값보다 1.5에서 2배나 더 비싸다. 청양고추는 농사를 많이 지을수록 거대 다국적 기업인 미국 '몬산토'기업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다른 작물도 마찬가지로 외국 기업 소유의 씨앗 판매로 생긴 수익은 그들의 몫이다.

올해 국정 감사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외국에 지불한 씨앗 사용료(로얄티)만 510억 원이라고 한다. 반면 2011년부터 올해 7월까지 한국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사용료는 2억 원에 불과하다. 그것도 네델란드에 장미꽃 5개 품종을 판매한 것이라고 한다.

씨앗에 다른 생명체의 유전자를 넣어서 조작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종자 외에도,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낸 씨앗들이 있다. 1세대에서만 형질의 우수성을 나타내고 다음 세대에서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이는 F1(first filial generation)씨앗이다. 현재 한국에서 많이 재배하고, 가격이 좋은 환금 작물들 대부분이 'F1'이다. 씨앗 포장지에 F1종자 표시를 하는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표시하지 않고 있다.

F1 배추로 추정되는 씨앗을 봄에 채종해 심었다. 처음 발아가 되고 제대로 자라는 것 같았지만, 점차 모양이 안 나오더니 결국에는 요상한 배추가 되고 말았다.

본래의 형질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자손을 남기는 토종배추
 본래의 형질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자손을 남기는 토종배추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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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으로 넘어간 씨앗의 위기

'끝낸다'는 종결자의 의미가 있는 터미네이터(terminator)씨앗은 다음 세대에서는 전혀 발아가 되지 않는 즉, 싹이 나지 않는 불임 씨앗이다. 또한, 트레일러(trailer)씨앗은 종자 기업이 만든 특정 약품(농약, 비료)을 같이 사용해야만 발아가 되거나 생육이 되는 씨앗이다. 몬산토 기업의 대표적인 유전자 조작 작물인 콩과 옥수수의 품종인 라운드업 레디(round up ready)를 재배하려면 라운드업(round up) 제초제를 같이 사용해야 한다. 다른 기업이 만든 농약이나 비료는 맞지 않도록 씨앗의 유전자를 조작한 것이다.

아직, 국내에는 F1종자 정도만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강대국과 체결한 FTA는 식량위기 뿐만 아니라,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토종 종자의 말살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도 종자 기업들은 수익을 더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종자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기업이 생명 과학 기술로 조작한 씨앗에 맞서 농부의 자존심을 지키고 종자 주권을 지키는 길은 이 땅에서 대를 이어가며 지속 가능한 농사를 해준 토종 종자를 확대 보급하고 농사를 짓는 일이다. 농부의 손에서 손으로 씨앗을 서로 나누었던 농사가 진짜 농사 아니겠는가.


태그:#F1종자, #터미네이터, #토종종자, #유전자조작, #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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