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라이온즈가 지난 25일 한국야구위원회에 제출한 보류선수 명단에 강명구, 채상병, 이영욱(투수)을 제외했다. 이들은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나이와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자리를 잃게 됐다.

2000년대 중후반 삼성의 전문 대주자 요원으로 활약하며 통산 111개의 도루로 이름을 날렸던 강명구는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내년 시즌부터 삼성의 전력 분석원으로 새 출발할 예정이다.

특히 프로 입단 당시 대형 포수가 될 재목으로 주목 받았던 이른바 '79년생 포수 3인방'은 이미 은퇴 또는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거나, 경쟁력이 떨어져 지도자로 변신하는 등의 말년을 보내고 있다.

강귀태, 끝내 폭발하지 못한 대학야구의 거포

79년생 포수 3인방의 선두주자는 강귀태(은퇴)였다. 인천 동산고 출신의 강귀태는 지난 1998년 신인 드래프트 고졸 우선지명을 통해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될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동국대로 진학한 후 타격 실력이 일취월장한 강귀태는 2002년 2억 1천만 원이라는 높은 계약금을 받고 프로에 데뷔했다. 신인 시절 박경완의 백업 포수로 타율 .272의 쏠쏠한 활약을 올렸던 강귀태는 박경완이 SK와이번스로 이적하면서 주전 확보의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노장포수 김동수가 가세하면서 다시 백업으로 밀려났고, 강귀태는 김동수가 은퇴를 앞둔 2008년 비로소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시절부터 경기 출장 기회가 적었고, 잦은 부상까지 시달리던 강귀태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주전으로 활약한 3년 동안엔 썩 인상적인 활약도 펼치지 못했다.

결국 2011년 신고선수 출신의 허도환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긴 강귀태는 2012 시즌이 끝나고 방출돼 KIA타이거즈로 이적했다. 하지만 KIA에서조차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작년 시즌을 끝으로 12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했다.

프로 12년 동안 한 번도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한 강귀태는 '기록 종결자'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2007년에는 9회 1사 후에 다니엘 리오스(전 두산 베어스)의 퍼펙트 기록을 깼고, 2010년에는 고교 후배 류현진(LA다저스)의 30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행진을 저지하기도 했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강귀태가 프로 입단 후 최형우(삼성 라이온즈)나 최준석(롯데 자이언츠)처럼 타격의 재능을 살려 포지션 변화를 시도했다면 그의 야구 인생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통산 홈런은 31개에 불과하지만 강귀태는 호쾌한 스윙이 돋보이던 포수로 기억되고 있다.

 '79년생 포수 3인방'의 쓸쓸한 말년

'79년생 포수 3인방'의 쓸쓸한 말년 ⓒ pixabay


현재윤, 신일고의 만능 포수, 부상이 앗아간 재능

1999년 고교 야구는 신일고가 주름잡았다. 마운드에는 메이저리그가 주목하던 2학년생 괴물 봉중근(LG트윈스)이 있었고 타선의 중심에는 초고교급 강타자로 불리던 안치용(SK)이 있었다.

더불어 당시 신일고의 안방에는 작은 체구에도 민첩한 움직임을 앞세워 봉중근을 리드하고 타석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하던 포수가 있었다. 바로 79년생 포수 3인방의 두 번째 주인공 현재윤이다.

삼성에 2라운드 4순위로 지명을 받고 2002년 프로에 입단(계약금 1억 8천만 원)한 현재윤은 진갑용의 백업포수로 순조롭게 성장했다. 하지만 2004년 병역 비리사건에 연루되면서 군에 입대했고, 전역한 후에도 쇄골, 척골 부상으로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정식과 이지영의 가세로 점점 입지가 좁아진 현재윤은 2012년 12월 LG로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LG에서도 좌우 손등과 손가락 부상에 시달렸고 올 시즌엔 '신데렐라' 최경철에 밀리며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프로 데뷔 후 한 번도 주전으로 뛴 적이 없는 현재윤은 37세가 되는 내년 시즌에도 최경철의 백업포수로 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동기 포수들에 비하면 현재윤의 상황은 조금 낫다. 적어도 현재윤에게는 내년에도 뛸 수 있는 소속팀이 있기 때문이다.

채상병, 신경현의 백업에서 진갑용의 백업으로

한화 이글스 입단 당시 2억 원의 계약금을 받았던 채상병은 신경현, 심광호 등 경력이 더 많은 선배들에게 밀려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03년 문동환과의 트레이드로 두산으로 이적한 채상병은 이적 첫 해 병역 비리사건에 휘말리며 공익 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채상병은 군복무를 마친 후 2007년 홍성흔의 부상을 틈타 안방 마님 자리를 꿰찼고 2008년 홍성흔이 지명 타자로 변신하면서 생애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 해 타율 .215 4홈런에 그치며 김경문 감독(현 NC다이노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결국 2009 시즌 최승환(은퇴), 용덕한(롯데)과의 경쟁에서 밀린 채상병은 2009년 7월 좌완투수 지승민(은퇴)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으로 이적했다. 진갑용, 현재윤 등의 부상으로 포수난에 시달린 삼성의 고육지책이었다.

2010 시즌에는 17경기에서 타율 .355를 기록하는 '반짝 활약'을 하기도 했지만 이듬 해 다시 타율 1할대로 추락했고 급기야 2012년에는 1군 무대에서 10경기(7타수무안타)밖에 나서지 못했다. 심지어 도루저지 등 수비에서조차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12년을 마지막으로 1군무대에서 사리진 채상병은 지난 2년 동안 퓨처스 무대를 전전하다가 결국 삼성의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내년 시즌부터 삼성의 코치로 활동할 예정인 채상병은 FA 보장액 30억과 40억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휘문고 동창 박용택(LG)의 고민이 배부르게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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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강귀태 현재윤 채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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