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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 기자말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 일처럼 여기고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고 참석자들은 노래했다.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 일처럼 여기고 서로 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고 참석자들은 노래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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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는커녕 방 안에 누워 있다. 엄마는 화를 낸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른다. 아들은 미동하지 않는다. 왜 아들이 바뀌지 않을까 고심하던 엄마는 비폭력대화에 대해 공부했다. 엄마는 자신이 달라졌다고 확신한다. 아이도 바뀔 거라 생각한다. 비폭력대화를 배운 후에 시험 전날 놀기만 하는 아들에게 말한다.

"얘야, 네가 그러고 있으니 엄마가 많이 걱정이 되네."
"엄마, 엄마보다 내가 백배 천배 더 걱정돼요."

이 이야기에서 부모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존재로만 있다. 그런데 아들은 엄마가 걱정하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아이를 존중하고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가치를 존중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존중받지 못한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말투는 부드러워졌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의 현실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많은 학생들은 배려받지 못하고 고통을 겪고 있다. 보통의 부모와 자녀들은 잘못된 교육 제도 안에서 희생자일 수 있다. 그 속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는 위의 이야기는 먼 이야기다.

그러나 한쪽만 헤아리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는 교육에 대한 대안이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는 언명이 될 때, 상대를 극진히 위하는 것에만 집중해서 정작 바로잡아야 할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이런 현실을 설명하며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대표)은 영화 <카트>에서 손님이 판매원에게 잘못된 행동을 해도 직원이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게 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학생들을 우선에 두는 교육이 자칫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자본주의 체계의 관계 맺음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관계 맺고 있는 쌍방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경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파커 팔머 씀 / 이종태 옮김 / IVP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파커 팔머 씀 / 이종태 옮김 / IVP
ⓒ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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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7번째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서론부터 4부까지를 읽고 토론했다.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에서 더 깊은 관계성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저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배움이 일어날 수 없고 온전히 관계 맺기가 불가능하다. 

가르침과 배움은 변화를 요구한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의 저자 파커 팔머는 가르침과 배움은 변화를 요구한다고 단언한다. 이는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에서 지식이 오고 가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그 안에서 살아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안에서 물론 지식과도 진실하게 만나야 한다.

그러나 보통의 교육은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은 권위적으로 이야기하고, 듣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임한다. 지식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익히는 방식으로 수업은 진행된다. 이것은 가르치는 이나 배우는 이가 서로 안전하려고 일종의 협약을 맺은 것과 같다. 선생님은 강의를 통해 권위를 득하고 학생들을 통제할 힘을 얻는다. 학생들은 편하게 앉아서 그저 그대로 머무른다. 서로가 변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참여를 권유하면 오히려 겁을 낸다. 그 상황에 맞서지 않으려고 한다.

파커 팔머는 이러한 교육의 위기를 호기심과 지배욕에서 비롯된 지식관에서 찾는다.

"호기심은 도덕과 무관한 열정으로서, 알고자 하는 욕구를 방해하는 어떠한 지시도 거부하려 든다. 지배욕은 권력욕의 다른 말에 불과하며, 도덕과 무관할 뿐 아니라 부패하기 쉬운 것으로도 악명 높다. 만일 우리 앎의 주된 동기가 이러한 호기심과 지배욕이라면, 결국 우리는 우리를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끄는 지식을 낳고 말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54쪽)

새들마을학교 학생이 조별 토론 후 발표하는 모습.
▲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새들마을학교 학생이 조별 토론 후 발표하는 모습.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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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는 어떤 지식을 만나야 할까. 그는 호기심과 지배욕이 아닌 자비와 사랑에서 기인한 지식을 역설한다. 사랑은 깨어진 자아와 세계의 재연합과 재구축을 목표로 하는 지식이고, 자비는 세계와 자신의 화해를 추구하는 지식이다. 여기서 앎의 행위는 타자의 실재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포용하는 행위, 타자로 하여금 자신의 실재 속으로 들어와 그것을 포용하도록 허락하는 행위다.

멈추어서 잠잠히 거하게 되면 진실을 포착하게 된다. 명상하는 학생들.
 멈추어서 잠잠히 거하게 되면 진실을 포착하게 된다. 명상하는 학생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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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팔머는 사랑과 자비에서 비롯된 가르침과 배움을 위해서는 영성을 새롭게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성 회복을 위해서는 기도가 충만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기도하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진리(본질)를 추구하는 것이다. 자신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과 진리가 나를 향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동시에 인식하고 열려 있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리를 만나는 것은 유기적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인격적 진리이다.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이 개별적이고 객관적으로 구분되고 구별되는 게 아니다.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은 상호적으로 반응한다.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앎의 주체가 되어 세계를 바꾸기를 원할 뿐, 변화를 요구당하면서 앎의 대상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배운다 함은 변화와 대면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배운다 함은, 주도할 뿐 아니라 반응하고, 얻을 뿐 아니라 주기도 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는 관계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진리의 공동체적 요구에 자신을 연다면, 우리에게는 회심이 필요하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106~107쪽)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은 파커 팔머의 글에 감응했다. 한 참석자는 진리 앞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며 진심으로 본질 앞에서 변화할 마음이 있는지 돌아봐야겠다고 소감을 나눴다. 다른 이는 인식 주체와 대상이 괴리되지 않은 공부를 하고 싶고, 그를 위해서는 관계성을 견고히 다지는 가운데 가르치고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관계 맺음의 역량을 잘 키워가고 싶다는 참석자도 있었다.

한 참석자는 지금도 여전히 지식 전달 차원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참석자는 지금도 여전히 지식 전달 차원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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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교육을 받아오면서 느낀 어려움도 나눴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지식을 전달하고 습득하는 차원의 관습적인 교육에 물들여져 왔고 자라왔는데,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지식 전달 차원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참석자는 수동적인 교육 환경이 전복되고 전환되기를 염원해 왔다며 지금의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자기의 몫을 성실하게 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다음 세대에서라도 영성을 회복하는 교육이 실행되기 위해선 지금 굳건한 토대를 놓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바로 시작해야 하겠다고 했다.

최봉실 교장은 실제 현장에서 영성을 회복하는 교육을 하면서 누리게 된 지혜를 나눴다. 지난 '충(忠)의 만남' 강의에서 이미 이야기했듯이, 중심(본질)을 만나기 위해서는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 파커 팔머가 말하는 기도가 바로 그 중심을 만나기 위한 작업이다.

"하루를 바쁘게 지냈어요. 피곤하잖아요. 빨리 드러눕고 싶죠. 하루를 다 지내고 나면 그게 다인 거 같죠. 그런데 딱 멈추어서 잠잠히 거하게 되면, 그냥 잠들었으면 몰랐을 오늘 하루의 참된 진실을 포착하게 됩니다. 그걸 기도라고 할 수 있지요.

수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수학 문제만 마주하면 얼어 버려요. 우선 긴장을 완화고 두려움을 없애도록 온갖 사투리를 써 가며 아이를 재밌게 해 주었죠. 그래도 안 되니 집에 가서 자기 전에 눈을 감고 수학 시간에 내가 어떤지 잠잠히 생각해 보라고 했어요. 어땠을까요. '아, 내가 할 생각을 안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 다음부터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도 위축되지 않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수학 수업 시간에 만든 3단 책상.
 아이들이 수학 수업 시간에 만든 3단 책상.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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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장은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참된 진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와 그렇지 않은 자세는 차이가 크다고 했다. 이를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나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피곤했으면 그냥 잠들었을 하루를 그냥 보내지 않고 잠잠히 돌아보는 것은 '생과 사'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 수업 시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수업을 하고 나면 새들마을학교 학생들은 그 시간의 평가를 적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잠시 멈추어 서서 '내가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 너머 나에게 다가오는 진실을 포착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임하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고, 내가 하루를 바쁘게 지낸 게 다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최 교장은 당부했다.

이어서, 최 교장은 교육 현장에서 모든 질문이 선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책임 있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의 아담과 하와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질문은 호기심과 지배욕에 좌우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꼭 죽는다고 그러디?'라는 뱀의 질문을 봅시다. 성경이라는 종교 고전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이 참으로 간사한 질문이었습니다. 관계를 파괴하는, 사이를 갈라놓는 질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봅시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자 하나님이 아벨을 찾았습니다. 가인은 "내가 아벨을 지키는 자이니까?"라고 질문합니다. 회피와 공격의 질문입니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의 질문은 사랑에 근거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 가고 배워 가기 위해 질문하는 것에는 물론 정성껏 답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차차 질문의 동기가 순수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순수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늘 자신을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문을 놓치지 않고 잘 물어가고 답을 찾아가면서 또한 성실하게 질문해 가면서도 내가 던지는 질문이 불신을 조장하고 나의 잘못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철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은 "피곤해서 그냥 잠들었으면 몰랐을 진실을 잠잠히 돌아보아 알게 되는 것은 '생과 사'의 문제"라고 말했다.
 최봉실 새들마을학교 교장은 "피곤해서 그냥 잠들었으면 몰랐을 진실을 잠잠히 돌아보아 알게 되는 것은 '생과 사'의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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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최 교장은 진리를 만나기 위해서는 직관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에서 말한 기도의 힘을 직관이라고 한다. 어렵거나 힘든 일을 만날 때, 손쉽게 해결하고 싶을 수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진다. 내 삶의 문제를 타인에게 떠맡기는 것이다.

최 교장은 어렵고 해결하기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이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잠잠히 물어볼 때, 진리가 나에게 와서 그 답을 이야기해 줄 거라고 했다. 우리 삶에 대해 스스로 어떤 판단도 못한 채 늘 전문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로 알고자 한다면 우리의 길을 알아갈 수 있다고 최 교장은 힘주어 말했다.

직관의 능력은 우리 모두를 삶의 주인으로 세워 내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세워 낸다. 이성과 감각으로뿐만 아니라 직관과 감정과 그 모든 노력으로 진리를 만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가운데서 서로가 배우고 가르치고 돕는 자로 만나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해결해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오늘 내가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면서 다른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책임 있게 만나야 합니다."

이렇게 최 교장은 우리를 파편화시키려고 하는 이기심과 이 이기심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서로를 지키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다음 시간(11월 28일)에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5부부터 7부까지 읽고 토론한다. 파커 팔머는 "가르친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를 위한 영적인 덕목과 훈련의 과정에 대해 참석자들이 함께 공부한다.

교육문화연구학교 전체 모임 시간, 웃음이 터졌다.
▲ 새들마을학교 친구들 교육문화연구학교 전체 모임 시간, 웃음이 터졌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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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새들마을학교, #교육문화연구학교, #교육, #파커 팔머, #가르침과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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