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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서울 신당동 떡볶이 골목에서 얼굴의 상처가 심하게 괴사된 떠돌이 개가 신고됐습니다. 주변 상인 등 목격자는 있었지만 경계심이 강해 좀처럼 잡을 수 없고, 나서서 치료해 줄 사람도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삶을 포기한 듯한 슬픈 눈동자
▲ 빽돌이와의 첫 만남 삶을 포기한 듯한 슬픈 눈동자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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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바로 포획 장비를 챙겨서 현장으로 갔습니다. 주차된 차 밑에서 슬픈 눈의 떠돌이 개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녀석의 눈에서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이 떠돌이 개에게 우리가 희망으로 다가왔나 봅니다. 경계가 심하다는 말과는 다르게 금세 잡혔으니까요.

동네 주민들은 이 녀석이 오랜 시간 '빽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얘기했습니다. 신당동으로 흘러 들어와 터를 잡고 산 지 아주 오래 되었고, 주차장 안쪽 집에서 가끔 밥을 챙겨줬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1년 전 갑자기 없어져서 잊고 지냈는데 다시 나타난 이후로는 사람을 잘 따르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 떠돌이 빽돌이 개, 우리 집에 오던 날

빽돌이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두 달 정도의 입원치료 후 2012년 8월,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에 입소했습니다. 복지센터에 입소 후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녀석은 대부분의 시간을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혼자 보냈습니다. 특별히 따르는 사람도 없고, 친한 동물도 없이 홀로 생활하는 게 꽤 익숙해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밥을 주고 얇은 이불을 하나 깔아주니 순식간에 빽돌이가 어딘가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이불 중간은 다른 동물들에게 양보하고 이불 끄트머리에 겨우 자리를 잡는 빽돌이. 툭툭 튀어나온 뼈가 딱딱한 바닥에 쓸리지 않게 여러 번 자리를 고쳐 잡더니 이내 온 몸을 돌돌 말고 잠 잘 준비를 했습니다. 그 모습이 제 눈에는 퍽이나 고단해 보였습니다. 누구도 해를 가하지 못하게 자신만의 방패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우리 부부가 출근을 하면 문이 닫히기도 전에 저 방석으로 달려간다.
▲ 빽돌이가 처음과 마지막을 보낸 자리 우리 부부가 출근을 하면 문이 닫히기도 전에 저 방석으로 달려간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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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는 빽돌이를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녀석에게 온 몸을 감싸는 푹신한 이불 위에서의 하룻밤을 선물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현관문을 열고 빽돌이를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그 뒤로 제 뒤만 졸졸 따라 다니며 가방을 걸거나 옷을 갈아입는 모습 등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냉장고를 여는 모습과 가스레인지 불을 켜는 장면도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베란다로 나가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으니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들여다보는 모습까지 모두. 늘 우울하고 힘이 없던 눈동자에서 광채가 나던 그 순간을요.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신이 난 백돌이가 온 집안을 뛰어 다닙니다. 1년 넘게 빽돌이를 봐왔지만 그렇게 빨리 걷거나 달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방, 저 방, 거실과 부엌을 분주히 다니며 탐색을 합니다. 보살펴 주는 주인 없이 길에서 나고 자라 쫓겨 다니던 빽돌이. 길 한켠에서 쪽잠을 자던 빽돌이가 사람과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설레는 일인 듯했습니다.

집에서의 음주타임엔 항상 남편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는 빽돌이
▲ 빽돌이 전용 자리 집에서의 음주타임엔 항상 남편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는 빽돌이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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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소에서 생활할 때 빽돌이는 예민한 편이었습니다. 사람 주변을 맴돌기는 했지만 안으려고 하면 잽싸게 줄행랑을 치거나 갑자기 으르렁 대며 물려는 행동도 했습니다. 조급해 하지 않고 먼저 다가오도록 느긋하게 기다렸습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저희 집 개들 모두가 저와 남편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모여 듭니다. 그러나 빽돌이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빽돌이가 다가오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지나자 안쓰러운 마음에 옆자리로 끌어 와 눕혔던 일이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빽돌이가 제 품에 몸을 너무 밀착시켜 자는 바람에 다른 개들과 빽돌이 사이에서 칼잠을 자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을 빽돌이와 함께 했습니다. 처음으로 빽돌이와 애견펜션에도 가고 주말에는 삶은 감자와 고기를 사료에 섞은 특식도 먹였습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반겨주기도 하면서 빽돌이는 처음으로 사람과 함께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큰아들 빽돌이와 함께 한 1년, 행복했습니다

지난 봄,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을 하고 개들의 저녁을 준비하던 어느 날 식탁 주변을 둘러보니 빽돌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밥 시간이 되면 가장 적극적으로 달려들던 빽돌이가 거실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낮 동안 토를 한 자국이 여러 군데 눈에 띄었습니다.

"몸 안에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종양이 많아요. 떠돌이 생활을 오래 한 개들은 음식 쓰레기를 먹어 장기가 망가진 경우가 많아요.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2014년 7월 9일 수요일, 마지막을 집에서 보내기 위해 빽돌이를 퇴원시켰습니다. 목요일과 금요일, 빽돌이를 위해 휴가도 냈습니다. 토요일에는 소풍도 갔습니다. 애견펜션에 갔을 때 너무 신나하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며 울었다..
▲ 마지막 소풍.나도 울고 빽돌이도 울었다.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며 울었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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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를 못해 기운이 없었지만 빽돌이는 많이 걸어 다녔습니다. 먹지는 않고 물그릇 앞에서 서성이기만 하던 요 며칠과 다르게 빽돌이는 물 한 그릇을 뚝딱 마시고도 신기하게 토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소풍을 다녀 온 토요일 저녁, 빽돌이와 손을 꼭 잡고 거하게 한 잔 마셨습니다. 우리 부부의 술자리에는 늘 빽돌이가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술 자리에서 우리 부부가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한 번씩 입에 넣어주는 술 안주로 행복했던 빽돌이. 이런 시간을 빽돌이는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런 빽돌이가 일요일에는 급격히 기력이 떨어졌습니다. 극심한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귀띔이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빽돌이는 신음 소리 한 번 없이 낮은 숨을 고르며 차분하게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빽돌이는 비틀비틀 거리며 배변을 보던 패드로 걸어갔습니다. 몸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배변을 힘겹게 쏟아내는 빽돌이.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매일 먹던 사료를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던 식탁 밑과 보글보글 찌개 끓고 고소한 전 냄새를 맡던 가스레인지 밑 그리고 제가 볼일을 보는 동안 보디가드처럼 지키고 앉아있던 화장실 앞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던 푹신한 방석까지 천천히 돌아보며 하나하나 기억에 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 13일 일요일 오후 3시 15분. 빽돌이는 더 이상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떠돌이 개가 아닌, 우리 부부의 첫째 아들로 눈을 감았습니다.

보살핌의 기쁨,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혹시 동네 유기견인 줄 알고 잡아 갈까봐..
▲ 외출을 하게 되면 주인 있는 개처럼 보이도록 옷을 입힌다 혹시 동네 유기견인 줄 알고 잡아 갈까봐..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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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늑대소년>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요양 차 한적한 마을로 이사 간 소녀는 야생의 눈빛을 가진 늑대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이 소년에게 왠지 마음이 쓰인 소녀는 그에게 먹을 것을 보고 기다리는 법, 옷을 입는 법, 글을 읽고 쓰는 법 등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들을 하나씩 가르쳐줍니다. 소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어 준 소녀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낍니다.

저와 빽돌이를 소녀와 늑대소년의 관계로 보면 너무 과장된 얘기일까요? 오랜 떠돌이 생활로 사회성을 기르는 것부터 시작해 배변, 짖음, 다른 개들과의 다툼을 걱정하며 편견을 가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빽돌이는 저희 집 개들 중 가장 배변을 잘 가렸고 짖음도 없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장애가 있는 동물 앞에선 든든한 맏형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도 동물보호소에는 빽돌이처럼 힘겹고 고달픈 떠돌이 생활로 큰 상처를 입고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이런 동물들은 입양의 기회조차 거의 없습니다. 이들에게 사람과 함께 살아가며 사랑 받고 신뢰하는 방법을 가르쳐 보는 건 어떨까요? 시간과 정성이 동물들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하고, 우리에게는 보살피는 기쁨을 더 크게 안겨 줄 것입니다.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에는 주차장을 전전하며 살던 동자, 배에 큰 상처를 입고 떠돌던 가온이, 늙고 병든 몸으로 고단한 길 생활을 하던 멍이가 몸의 상처를 회복하고 입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족이 되어 보세요. 제가 느꼈던 '진심으로 행복해지는 순간'을 여러분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에는 빽돌이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떠돌이 개 가온이, 멍이, 만돌이, 동자가 입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일 수 있는 이들의 가족이 되어 주세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태그:#동물자유연대 , #유기견입양, #동물입양, #동물보호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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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는 동물학대 예방 및 구조, 올바른 반려동물문화 정착, 농장동물, 실험동물, 오락동물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중인식 확산과 연구 조사, 동물복지 정책 협력 등의 활동을 하는 동물보호단체이다. 홈페이지: www.animal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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