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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00일째다. 달 수로는 7개월째로 접어든다. 그런데도 이른바 구조의 '골든 타임'에 해당되는 '대통령의 7시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난 10월 28일 국회 운영위의 청와대 국정감사는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경호실 차장, 이른바 '문고리 권력' 중의 하나인 총무비서관까지 출석한 터였다.

당연히 문제의 7시간 의혹이 풀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산이었다. 오히려 이들이 출석한 국감에서마저 의혹이 해소되지 않음에 따라 7시간 의혹은 오히려 부풀려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우선, 일단 숨기고 보는 청와대의 방어 본능이 문제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일정 자료를 요구한 야당 의원들에게는 주지 않고 여당 의원에게만 제공했다. 대표적 '친박계' 인사인 김재원 의원(경북 군위-의성-청송)은 이날 청와대가 제공한 답변자료를 토대로 "대통령은 사고 발생 후 7시간 동안 7회에 걸쳐 지시했고 총 19회 관련보고를 받았다"고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를 근거로 '7시간 의혹'을 허위사실 유포(관련기사 : "박 대통령의 7시간 의혹, 허위사실 유포다")라고 못 박았다.

'21회 보고, 3회 지시'에서 '19회 보고, 7회 지시'로 바뀐 까닭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28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실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선서하는 김기춘 비서실장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28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실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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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언론은 답변자료에 대한 검증 없이 "대통령이 사고 발생 후 7시간 동안 7번 지시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공개한 답변자료는 지난 8월 13일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새누리당 간사이자 또 다른 친박계인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이 공개한 청와대 답변자료의 '재탕'이다.

당시 조 의원은 대통령비서실의 답변서를 공개하면서 "4월 16일에 대통령은 청와대 밖의 외부 행사가 없어 줄곧 청와대에 계시면서 20~30분 간격으로 21회(안보실 서면 3회·유선 7회, 비서실 서면 11회)에 걸쳐 유선 또는 서면 보고를 받고 필요한 지시를 했다"(http://omn.kr/9smx)고 밝혔다.

이른바 '팩트'(fact)를 중시하는 언론의 시각에서 두 답변자료를 보면, 조원진 공개본은 '사고 당일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김재원 공개본은 '사고 발생후 대통령이 7번 지시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조원진 의원의 자료에서는 21회 보고받고 3회 지시한 것으로 돼 있는 반면에, 김재원 의원의 자료에는 19회 보고받고 7회 지시한 것으로 돼 있다.

보고 회수에서 차이가 나는 까닭은 전자는 4월 16일 하루를 기준으로 했고, 후자는 사고 발생후 7시간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시 회수에서 4회의 차이가 나는 까닭은 전자는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지시한 것을 기준으로 한 반면에, 후자는 대통령이 보고를 받으면서 지시를 한 것까지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오후 3시께 박 대통령이 김장수 안보실장에게 중앙재해대책본부 방문준비를 하라고 지시한 것을 빼곤 전자와 후자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알다시피 '7시간 의혹'은 일본의 극우매체인 <산케이신문>이 8월 초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증권가 정보 등을 인용해 박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확산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원진 공개본은 대통령이 사고 당일 '외부인'을 만났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대응한 '물 타기'일 가능성이 크다. 김재원 공개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알리바이'(범죄현장 부재증명)를 제시한 셈이다. 쉽게 말해, 대통령이 '7시간 동안 19번 보고받고 7번 지시'했는데,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친박계 의원들의 박근혜 7시간 알리바이?

문제는 청와대의 답변과 친박계 의원들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7시간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야당과 국민들이 '7시간 의혹'에 관심을 갖는 것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니다. 구조의 '골든 타임'을 참모들의 잘못된 보고와 대통령의 틀린 지시로 허비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은 '대통령이 7시간 동안 19회나 보고받고 7번이나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잘못된 보고와 틀린 지시의 연속이었다. 청와대 답변자료를 보더라도, 대통령비서실은 오후 1시 7분 6회째 서면보고에서 "총 370명 구조, 사망 2"라고 잘못된 보고를 했다.

국가안보실 역시 오후 1시 13분 4회째 유선보고에서 "190명 추가 구조, 현재까지 총 370명 구조"라고 잘못된 보고를 했다. 재난구조를 총괄하는 중앙재해대책본부조차도 오후 2시 브리핑에서 "13시 기준으로 구조자 368명, 사망자 2명"이라고 발표했다.

부실하고 엉뚱하기는 대통령의 지시도 마찬가지였다. 오전 10시 15분 김장수 안보실장에게서 유선보고를 받으면서 대통령이 내린 첫 번째 지시는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세월호 선체는 108도로 기울고 90% 이상이 잠긴 상황이었다. 사실상의 '뒷북 지시'였다.

대통령의 세 번째 지시는 10시 30분 해양경찰청장에게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한 것이었다. 이 또한 '뒷북 지시'였다. 그로부터 1분 뒤 세월호는 완전히 뒤집혔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구조가 이뤄진 시각은 10시 21분이었다. 해경특공대(7명)는 대통령 지시가 나오기 전에 목포에서 헬기로 출발했지만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세월호 침몰 3분 전인 11시15분이었다. 결과적으로 특공대는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했다.

오후 4시 10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가 처음 열렸다. 그런데 '대수비'(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가 아니고 '실수비'(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였다. 오후 3시 30분경 비서실에서 집계 오류를 확인받고 구조인원을 160명으로 정정한 7번째 서면보고를 한지 40분 뒤였다.

300여 명이 죽어가는데 왜 '대면보고'를 한 번도 안받았나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를 방문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후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서자,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세월호 가족 외면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국회를 방문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후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회 본청을 나서자,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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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후 5시 15분 중앙재해대책본보를 방문해서 였다. 대통령은 이곳에서 "많은 승객들이 아직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드냐"고 했다. 그 시각은 10시 21분 마지막 구조자가 나온 지 7시간, 11시 18분 세월호가 선수만 남기고 침몰한 지 6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대통령이 7번이나 지시했다지만 그 지시 가운데 이행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7시간 의혹'은 대통령이 19차례에 걸쳐 서면 또는 유선으로 관련 보고를 받았다는데 그 어디에도 '대면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는 데서 출발한다. 청와대가 수학여행 간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사망자가 300명이 넘는 대형참사가 벌어지는 동안 누가, 무엇을, 어떻게(어떤 내용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를 밝히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국민적 의구심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보수와 진보, 여야를 떠나서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는 비극적 트라우마이다. 국회가 국정조사특위에 이어 특별검사까지 채택한 것도 진상을 규명해, 300명이 넘는 승객들이 배에 갇혀 죽어가는데도 지켜보기만 하는 무능한 국가의 부작위로 인한 비극적 과오를 후세에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니 '7시간 의혹'은 대통령이 국가자원을 총동원해야 할 '골든 타임'에 왜 엉뚱한 지시를 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에서 나온 진상규명의 첫 단추이다.

미국이 9·11 테러 이전과 이후로 달라졌듯이, 한국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달라져야 한다는 명제에 공감한다면, 대통령의 '7시간 의혹'은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숙제다. 미 의회가 주도한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는 수사권은 없었지만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그리고 CIA 책임자까지 직접 방문해 조사했다. 세월호 국정조사특위는 청와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14일  청와대 국감에서 김장수 안보실장은 업무보고에서 "위기관리센터장은 업무 특성상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출석하지 못하였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면서 국가위기관리 대응과 관련 이렇게 보고했다.

23개 핫라인 갖춘 위기관리센터 전자상황판, 가동 안돼

"국가안보실은 안보-재난 분야 위기징후를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지난 7월 안보 분야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을 개정하고 8월에는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을 개정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국가위기관리 업무 수행 체계를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초기대응에서 보듯, 국가안보실(위기관리센터)이 재난의 위기징후를 24시간 모니터링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번 청와대 국감에서 확인된 가장 중요한 '팩트'는 김경협 의원이 질의한 것처럼, 23개의 핫라인을 갖춘 위기관리센터의 전자상황판이 가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가안보실은 정부 핫라인을 통해서 보고받은 게 있냐는 김 의원의 질의에 "없다"고 했다.

결국 '7시간 미스터리'의 본질은, 대통령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은폐가 아니라면, 대통령 참모들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한 술책인 셈이다.

<표> 세월호 사고 발생 후 대통령 보고 및 지시 내역(* 조원진-감재원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답변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임).
 <표> 세월호 사고 발생 후 대통령 보고 및 지시 내역(* 조원진-감재원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답변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임).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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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박근혜,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 #7시간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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