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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로 이사한 뒤 말로만 듣던 '층간소음'은 내 문제가 됐다.
 아파트로 이사한 뒤 말로만 듣던 '층간소음'은 내 문제가 됐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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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가 입학하기 전 학교가 가까운 집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집을 찾는 첫째 조건은 깨끗한 환경과 통학거리였습니다. 학교 바로 앞 아파트를 알아 보니 이미 전세는 물량이 없고 월세만 남아 있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달 내야 하는 관리비, 월세, 아이들 학원비, 생활비 등을 생각하니 너무 부담되는 액수 같았습니다. 그래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으로 학교 앞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사를 와서는 전에 살던 단독주택보다 평수는 작았지만, 아파트의 편리함에 이사를 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차장의 편리함과 더불어 택배를 안전하게 맡겨 놓을 수 있는 관리실과 웃으며 인사해 주는 경비원 아저씨, 걸어서 5분 거리의 초등학교는 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온 뒤 처음 받은 인터폰... "아랫집인데, 좀 조용히 해주세요"

이사온 지 며칠이 지나 처음으로 인터폰이 크게 울렸습니다.

"어, 이 시간에 누굴까... 네."
"네, 아래층 사는 사람인데요. 우리 아이들 자야 하는데 시끄러워서 못 자니 조용히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고,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도 냉랭하게 굳었습니다. 이사온 지 일 주일도 안 되어 처음 받은 인사는 조용히 해달라는 것이었고, 솔직히 아이들이 그리 떠들지도 뛰어다니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럴까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사왔다고 옆집에는 인사를 했지만, 아래층에는 인사를 못한 것이 이내 마음에 걸리기도 해서 한 번 인사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누군가 집앞 벨을 눌렀는지 큰 벨소리가 났습니다. "네, 누구세요?" 문을 열어보니 덩치가 큰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네. 아래층 사람입니다. 분명히 애들 뛰지말게 하라고 했는데, 왜 자꾸 돌아다닙니까? 자다가 아이들이 화장실 갑니까? 왜 어제 오전 2시에 걸어다니는 소리가 나죠?"
"아, 저도 몰랐네요. 둘째가 자다 말고 중간에 작은방에서 큰방으로 건너올 때가 있는데... 근데 그 발자국 소리도 들리세요?"
"우리 애들 자야 하니깐 조용히 해주세요. 우리 애들은 9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요. 핸드폰 벨소리도 다 들려요."

아래층에 사는 남자는 화난 표정으로 나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8시 45분, 9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얼굴을 첫 대면하게 되니 원래 계획한대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려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건은 계속 일어났고, 바닥에 매트를 깔아보기도 하고 아이들을 9시에 일찍 재워 보기도 했지만, 가끔씩 아이들끼리 싸움이 나거나 조금 잠자는 시간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아래층 남자의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아래층 남자의 얼굴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 뛰었습니다

아파트가 오래되어서인지 꼭 윗층에서 나는 소음이 아니더라도 사방에서 나는 소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아파트의 구조상 소음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 만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는 한 번도 윗층에 전화한 적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소리지르는 나와 주눅드는 아이들... "층간소음으로 고소했어요"

이후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소리지르게 되고, 점점 주눅드는 아이들의 모습에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아래층 남자는 아침에도 주말에도 쉴 새 없이 전화를 했습니다. 이러다간 내가 스트레스로 오래 살 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층 남자처럼 나도 이번엔 1층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참에 전세를 알아볼까 해서 부동산에 문의했지만, 1층에 나온 전세 매물이 없었습니다. 집주인에게 이런 사정을 얘기해 이사를 가야 할 거 같다고 이야기하니, 묵묵부답 알아서 하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월세 매물이 너무 많아서 이 집이 언제 빠질지도 모르는 절망감까지 들었습니다. 더욱이 기간 만료가 많이 남아서 중개수수료에 이사비까지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그러던 중 일 주일 넘게 아래층 남자가 방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다? 왜 요즘은 아래층에서 조용할까?'란 생각을 하다가 '이제 포기하셨나?' '우리 아이들 조용히 시키려고 하는 노력을 아셨던 걸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한 시간이 흘렀고 아래층 남자에 대한 생각이 희미해져가고 있었습니다. 2주 정도 지난 토요일 저녁 집 앞 공원에서 열리는 음악축제에 참여하고 집에 오니 9시가 넘었습니다.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자려고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다시 벨소리가 났습니다.

'아래층 남자다.' 나에게는 이미 공포의 대상인 아래층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빼꼼히 문을 여니 아저씨는 이야기 좀 하자며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내가 일 주일 동안 녹음기로 24시간 녹음해서 층간소음 고소를 했고, 동대표 불러서 녹음한 거 들려주니 이 정도면 심하다고 했습니다, 남편분 오면 절 찾아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오늘은 공원에서 공연이 있어 늦게 들어와 준비하느라 그랬고요. 신경썼는데 힘드셨나 봐요. 저도 이사를 가야 하나 알아보고 있었어요."

다음날 엘리베이터 앞에는 층간소음 경고장과 더불어 벌금 500만 원을 지불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전단지가 붙어 있습니다.

남편이 퇴근한 후에 아래층 고소사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당장 이사가기가 힘드니 돈을 좀 드려야 할지, 아니면 우리의 이사비를 지원해 달라고 할지 등등. 우선은 무조건 9시 전에 우리도 아이들을 재워 떠들거나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며칠이 지나 시골로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포도 몇 박스를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아래층에 들러 포도 한 박스를 건네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멋쩍어 하면서도 포도 한 박스를 받은 아래층 남자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미묘한 변화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의사소통에서 언어 그 자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7% 밖에 안 된다고 하니, 93%를 차지하는,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는, 비언어적 요소인 아래층 남자의 변화된 얼굴 표정과 목소리, 몸짓의 작은 변화는 무엇보다 크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마주한 아래층 남자... '진작 찾아올 걸' 후회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아래층 남자는 이야기합니다. 요즘 큰아이가 다쳐서 하루 종일 집에 있고, 자신은 밤중에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하고 종종 낮에도 집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소음에 민감하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아래층에서 왜 그리도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층 남자는 우리가 방문하기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고 합니다. 참,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는 거에 약해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저씨는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소통하고 싶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작에 찾아 뵈었을 걸' 하는 후회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세입자이다 보니 돈을 들여 따로 인테리어 할 수도 없고 매트를 깔아 소음을 줄이려고 노력밖에 할 수 없다고. 이사갈까도 알아보았는데 이사비가 만만치 않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 학교가 가까워 다른 아파트는 알아보지 않고 있다고 하니 자신들도 이사를 가려고 알아보았는데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집주인인 줄 알았는데 아래층 또한 똑같은 세입자였고, 아이들이 많아서 자신들도 1층으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아래층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고소를 하긴 했지만, 그에 대한 답변이 원만히 협의하라는 내용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래층 남자의 행동이 이해됐습니다. 작은 변화이지만 아래층 남자도 냉기가 사라진 나의 목소리를 느꼈나 봅니다. 우리 모두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좀 더 조심하자라는 결론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아래층 남자가 준 오렌지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후 거의 매일 들려오던 벨소리는 한 달에 한두 번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큰아이가 떼를 쓰며 발을 동동 구르는 바람에 큰소리가 오고갔는데 여지없이 벨소리는 나고 아이에게 소리지르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래층 남자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습니다. 아래층 남자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경고 전화가 미안했는지 아래층 남자가 아이들과 먹으라며 대봉을 건네줍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는 것을 나누며 정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냥 이야기해도 되지만 왠지 모를 쑥스러움과 미안함을 먹는 것으로 전하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상큼한 귤을 사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들러볼까 합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고...

아래층 대봉
▲ 대봉 아래층 대봉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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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층간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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