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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승객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인 택시들.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승객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인 택시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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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의 무법자'에 '난폭 운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택시. 최근에는 콜택시 안심 앱은 물론 안심귀가 서비스에 '1333'으로 통일된 전국 택시 통합콜센터까지 생겨났다. 그만큼 택시 이용하기가 편리해졌지만, 이용객들이 체감하는 서비스는 별반 나아진 게 없다.

밤늦은 시간대엔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앱조차 무용지물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여성은 밤늦게 택시라도 타게 되면 번호판부터 확인하고 조수석에 붙은 택시 운전자의 자격증 사진과 기사 얼굴부터 대조한다.

과연 그들만의 탓일까?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만든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일부 택시 기사의 불친절에 대해서만 성토할 줄 알았지, '따블'과 '따따블' 먼저 외쳐놓고 돈 몇 푼에 '갑질'부터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택시 기사들도 나름의 고충은 많다. 숱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택시제도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택시 노동자'가 '막다른 직업'으로 낙인 찍히는가 하면, 과속과 불친절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며칠 전의 일이다. 회식을 마치고 자정이 넘어가자 택시 잡기가 여의치 않았다. 콜택시를 부르려는 순간 반대편 차선에서 '빈 차' 등을 켜고 지나가는 택시가 보인다. '오늘 운이 좋네!'라고 생각하며 택시 기사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비록 말을 하지 않았지만, 택시 기사에게 보내는 '택시를 타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유턴하여 나를 태우러 돌아와 달라'는 무언의 신호이기도 했다. 속력을 내며 달려가는 저 택시, 아마 유턴 신호에서 신호를 받고 곧 올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어느새 내 앞에 선 다른 택시. 도롯가에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다른 택시가 정차한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차창을 내리고 재촉하는 택시 기사에게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휑하고 가버린다. 이럴 땐 말을 아낀 것이 참 다행이다.

이미 나는 아까 그 택시와 암묵적으로 동의한 무언의 약속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잠시나마 그 약속을 깨고 싶은 충동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잠시 후 유턴하여 도착한 택시에 타고나니 약속을 깨지 않았다는 생각에 오히려 편하다. 택시에 오르자마자 미소 짓는 기사분의 얼굴을 보며 서로가 통한 듯 또 한 번 웃고 말았다.

기사분도 혹시라도 내가 아까 그 택시를 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했단다. 이런 경우, 건너편 택시를 기다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승객을 가로채는 택시는 말할 것도 없고, 수신호를 보낸 손님이 다른 차를 타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단다. 하지만 그까짓 일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라고….

콜택시 부르고 다른 택시 타는 사람들... 분노 폭발

10년 경력의 이 기사분은 가장 큰 스트레스로 콜택시를 부르고 다른 택시를 타버리는 '얌체 승차'를 꼽았다.

"택시 기사의 시간은 곧 수입이지요. 택시 불러놓고 10분만 지나도 기사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긴 시간입니다. 불러놓고 도착해 보면 무슨 이유인지 집에 있으면서도 아예 안 나오는 승객들이 꽤 있어요. 전화도 안 받고…. 저런 사람을 고객이라고 태우러 간 기사는 뭔 잘못인지…."

특히 말도 없이 택시를 불러놓고 다른 택시를 타고 가버릴 경우 기사도 인간인지라 감정적 폭발이 일어나곤 한단다.

"콜택시를 장난으로 부른 것도 아닐 텐데, 혹시라도 제 시간에 오지 않았다면 다른 차를 이용한다 해도 할 말이 없지요. 아무리 손님이 같은 택시를 다시 만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하지만, 말도 없이 다른 차를 타고 가는 경우 아주 난감해요.

빨리 도착하는 것이 기사의 매너라면, '콜'을 했으면 기다려 주는 것도 승객의 매너죠. '콜' 또한 약속이며 계약입니다. 손님 입장에서는 바쁘다는 단순한 이유겠지만, 기사들은 생계가 걸린 일입니다. 그것도 아침부터 그러면 온종일 일진도 안 좋아요. 그러니 그대로 표정에 전해지는 거죠, 뭐…."

택시 운전은 온종일 승객들을 상대하는 일이라 감정노동에 버금간다. 보통 2교대를 하는 기사들은 하루 10만 원 안팎의 사납금을 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결코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10시간 이상은 부지런히 손님을 찾아다녀야 기름(LPG)을 채우고 겨우 입금을 맞출 수 있다. 제대로 끼니를 챙길 시간도 없다. 이렇게 해서 한 달에 받는 봉급은 기껏해야 100만 원 안팎이다.

사납금의 폐단을 막기 위해 지난 1997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제정됐지만 유명무실이다. 다행히 일부 지역의 택시회사가 내년부터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를 도입기로 했다. 이 제도는 택시기사가 승객에게 받은 운임 전액을 회사에 내고, 회사는 일정액의 급여를 주는 제도다. 앞으로 각 지역의 노사 협상에 따라 전액관리제가 확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납금 제도가 전면 개정되면 입금을 채우기 위해 불가피하게 행하던 승차거부나 과속운행에 불친절 등의 부작용까지 막을 수 있을까? 택시의 서비스 향상도 승객들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다는 전제 하에 가능하다.

콜택시를 불러놓고도 오는 사이 다른 택시를 타는 사람들 탓에 허탕을 치고 마는 택시. 늦은 밤, 술 취한 손님들의 주정과 폭언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운전 중 폭행을 당하거나 요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에겐 언제부터 이런 자잘한 잘못들이 평범한 일상이 되고 말았을까?

이제는 택시노동자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근무 조건도 한번 생각해 보자. 누군들 새벽에 졸린 몸 이끌고 거리로 나서고 싶겠는가? 그들만을 탓하기 전에 돈 몇 푼에 던져놓고 '갑질'했던 우리 자신부터 돌아보는 계기로 삼자.


태그:#택시, #감정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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