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감독, 궁리와 천따오밍 주연의 영화 <5일의 마중>은 울지 않고 보기 힘든 영화다. 스필버그 감독이 "한 시간 동안 울었다"고 상찬한 작품답게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신파의 정조 속에 잠겨 있다. 그러나 신파에만 안주한 영화는 아니다. 이야기의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감독과 주연 배우의 명성에 걸맞은 품격 또한 끝까지 잃지 않는다.

궁리 등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일품이었고, 연출이며 만듦새까지 흠잡기 힘든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평론가와 블로거들의 리뷰가 두 주인공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바, 조금 다른 시각의 감상을 남기기 위해 몇 자 글을 보탠다.

* 아래 글에는 영화의 줄거리와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가해자를 찾지 못하는 피해자

 <5월의 마중>

<5일의 마중> ⓒ 찬란

전반부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학 교수였던 루옌스(천따오밍 분)는 반동분자로 몰려 사상범 수용소에 갇힌다. 10년 만에 탈옥한 루옌스는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 자신이 살던 집에 도착하지만, 아내 펑완위(궁리 분)와 끝내 조우하지 못한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아내를 보고 싶어 감시원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탈옥범 루옌스와, 문을 열어줄 수 없어 괴로워하는 아내 펑완위의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명장면 중 하나다.

후반부는 시대가 지나 문화대혁명 이후의 시기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루옌스도 무죄를 인정받아 수용소에서 풀려났다. 당연히 제일 먼저 집을 찾았다. 둘을 만나지 못하게 말릴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별의 충격으로 아내는 정신을 잃어 버렸다. 심인성 기억 상실증에 걸려 남편인 루옌스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루옌스는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그녀 곁을 맴돌지만 펑완위는 기억을 회복하지 못한다.

여기서 재밌는 설정 중 하나는 펑완위가 어딘가에 피아노 조율을 부탁하는 부분이다. 상표도 기억할 수 없고 치지 않은 지 20년이 넘은 피아노다. 조율을 부탁받은 곳에서는 요청을 쉽게 승낙하지 않는다. 이때 아내가 피아노 조율을 원하는 걸 알아챈 루옌스가 조율사 행세를 하며 아내 곁에 선다. 루옌스는 피아노를 주로 누가 치냐고 묻고, 펑완위는 남편이 친다고 답한다. 애초에 펑완위는 루옌스의 귀환을 대비해 피아노를 고쳐 두려던 것이다.

망가진 피아노, 즉 피아노의 줄이 늘어진 설정은 피아노와 함께 집 안의 공간을 차지하며 루옌스를 기다리고 있는 펑완위의 늘어진 기억, 곧 기억상실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한편 피아노 조율을 부탁받은 곳에선 청을 완곡하게 거부하는데 이 부분에서 자신들이 안긴 상처에 책임지지 않는 당국의 현실이 포개어진다. 사회가 가한 상처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펑완위를 고치려고 백방으로 애쓰는 이는 피아노 줄을 조율하고 있는 남편 루옌스뿐이다.

조율이 다 된 피아노로 루옌스가 과거 두 사람이 좋아하던 곡을 연주할 때 펑완위는 루옌스를 거의 알아볼 뻔한다. 둘은 눈물을 흘리며 포옹을 하는데, 작품 전체에서 이때가 둘이 서로에게 가장 가까이 갔던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펑완위의 상처는 쉽게 치유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펑완위는 끝내 기억을 회복하지 못하고, 남편의 '마중'을 위해 매달 5일마다 피켓을 들고 역으로 향한다.

이후 맨 마지막 장면에선 세월이 훌쩍 흘러, 루옌스도 펑완위도 모두 노년에 이른 모습을 비춘다. 머리가 하얗게 센 펑완위는 여전히 5일을 맞아 자동 반복적으로 남편인 루옌스를 찾아 기차역으로 향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펑완위는 완전히 기력을 상실했다는 것. 해서 '옆집 아저씨' 루옌스가 끄는 인력거를 타고 딸 단단(장혜문 분)과 함께 '남편' 루옌스를 만나러 떠난다는 것뿐.

이전과 마찬가지로 펑완위가 기다리는 루옌스는 오지 않고, 기차역의 문은 야속하게 걸어닫는다. 역에는 루옌스, 펑완위, 단단 이렇게 세 사람만 남는다. 가족이 말없이 화면을 응시한다. 문화대혁명이 할퀴고 간 작품 속의 사회는 한 가족의 삶을 철저히 파괴했다. 정확하게는 가장인 '루옌스'를 앗아갔다.

루옌스가 없는 자리엔 죄책감만이 피해자들의 내면을 깊게 채웠다. 루옌스는 이 모든 비극이 자신 탓이라고 생각한다. 펑완위는 자신이 탈옥범 시절 루옌스를 받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기억상실에 걸린다. 단단은 아버지를 밀고했다는 죄책감에 무용을 그만둔다.

<5일의 마중>의 한 장면 조율이 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루옌스와 그를 '거의 알아본(!)' 펑완위

▲ <5일의 마중>의 한 장면 조율이 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루옌스와 그를 '거의 알아본(!)' 펑완위 ⓒ 찬란


가족의 파멸...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이렇게 루옌스가 부재한 가족은 파멸에 이르렀다. 대학교수였던 지식인 루옌스는 혁명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 자기 삶의 근원적 기반인 일과 사랑을 되찾지 못했다. 펑완위 역시 부재한 남편의 존재를 끝내 배상 받지 못했다.

루옌스는 작품의 중반부에서 자신이 수용소에 있을 때 아내를 밥숟가락으로 때린 적이 있다던 펑 아저씨에게 복수하기 위해 헤매다 그 역시 과거의 자신처럼 사상범으로 몰려 수감 됐음을 알게 된다. 이는 주인공이 가해자가 부재한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의미한다.

가해자는 없다. 혹 있어 봤자 사실 주동자와는 거리도 멀다. 진짜 가해자는 폭력적인 사회였다. 사회는 꼭꼭 숨은 채 아무 말이 없다. 그동안 피해자들만 또렷하게 부각되며 끝없이 망가진다. 피해에 대한 구제 역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을 '마중' 나가지만 만날 수 없고 남편은 '편지' 속의 존재로 과거 속에만 머물며 끝내 현재로 손 내밀지 못한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둘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그리워하고 기다린다. 슬픔과 아름다움의 진한 여운이 남는다. 더불어 영화의 엔딩 장면은 여기에 더해 사회에 대한 분노라는 한 가지 감정을 덧붙이게 한다.

5일의 마중 공라 진도명 장예모 장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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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반려견 '라떼'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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