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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급하게 구입한 수의는 몇 가지 항목이 빠져도 그것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엄마의 걱정이다.
 장례식장에서 급하게 구입한 수의는 몇 가지 항목이 빠져도 그것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엄마의 걱정이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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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아버지를 돌보시느라 부쩍 몸이 쇠약해진 엄마는 요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하신다. 그러다 보니 쪽잠을 자면서도 가위에 눌리는 일이 자주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엄마의 꿈이다. 예로부터 죽음과 연관되었다고 해몽되는 꿈을 자주 꾸시며 꿈 때문에 더 우울해 하신다.

"엄마, 꿈은 반대라잖아요. 그리고 요즘 엄마가 몸과 마음이 허약해져 있어서 그런 꿈을 꾸는 거니까 너무 꿈에 마음 쓰지 마세요. 엄마 꿈대로 되었으면 벌써 우리 자식들 다 엄청 부자 되고 엄청 유명해지고 엄청 성공했을 거야. 로또도 몇 개 맞고... 하하하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엄마의 꿈 소동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새벽에 전화해서 간밤에 꿈이 좋지 않았으니 자동차 가지고 나가지 말라거나 아이들 찻길 조심시키라고 하셨다. 또 뜬금없이 누가 임신하지 않았냐며 태몽을 꾸었다는 이야기도 자주 하셨다. 하지만 엄마의 꿈 대부분은 웃고 넘기는 한편의 에피소드였고 자식들에 대한 관심과 걱정의 또 다른 표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 번이 아니라 수차례 비슷한 꿈을 연작(?)으로 꾸다 보니 당신도 은근히 걱정이 되신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 아버지 여든둘이신데 아직 수의도 장만하지 못했더라. 막상 돌아가시고 나면 허둥지둥 장례식장에서 바가지 쓰고 사서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채 염을 하는 경우도 있어. 이번 9월이 마침 윤달이니 네 아버지 수의나 해드려야 할 것 같아. 미리 준비해 두면 너희들도 좋잖니."

계속 미루게 되는, 부모님 죽음 준비하는 일

엄마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자식이 넷인데 그 누구도 부모님 수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님을 모시고 영정사진을 찍으러 간다거나 수의를 맞추러간다거나 하는 일들이 편치는 않다. 남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잠깐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건강하신 모습을 보면 공연한 걱정을 하는 것 같아 뒤로 미루는 게 바로 부모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일 것이다.

"실은 엄마가 심란한 마음도 가라앉힐 겸 해서 광장시장에 몇 번 다녀왔다. 가서 수의 가격도 물어보고 수의 만드는 베 가격도 물어보고 수의 만드는 공임은 얼마나 드는지도 물어봤어. 비싼 건 500만 원도 넘고 중국산 싼 건 몇 십 만 원이면 하겠더라."
"엄마도 참, 거길 왜 혼자 가. 자식들 다 있는데. 우리가 다 해 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다리도 아픈데 버스 타고 다니면서… 그게 뭐 그리 급하다고… 수의하면 오래 산다며. 우리가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오는데 그것이 화인지 서러움인지 안쓰러움인지 죄송스러움인지 알 수 없어 얼른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보름 뒤인 음력 9월 15일로 날을 잡았다. 윤 9월이 시작되려면 15일이 남았지만 윤달에 들어서면 수의가격이 오르니 미리 맞춰야 한다며 잡으신 날이다. 그리고 엄마는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날부터 보름 동안 들떠 하셨다.

엄마는 마약김밥에 정말 마약이 들었냐고 물었다. 당연 마약은 안 들었지요.
 엄마는 마약김밥에 정말 마약이 들었냐고 물었다. 당연 마약은 안 들었지요.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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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약속한 음력 9월 보름날 엄마와 세 딸이 손을 잡고 광장시장에 들어섰다.

"엄마가 딸들 귀찮게 해서 미안한데 이것도 다 공부라고 생각해라. 어제 뉴스에 보니 어느 상조회사에서 수의로 엄청 사기를 쳤더라. 그래서 이렇게 미리 장만을 해두어야 해. 젊은 니들이 뭘 알겠니. 그저 부모님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300만 원이든 500만 원이든 그쪽에서 하자는 대로 돈 주고 나면 그만이지. 그때나 효도한다고 비싼 수의 해봐야 그런 사기꾼들 배만 불리는 거야."

5년 전 시어머니 장례를 치른 막내 동생이 엄마 말을 거든다.

"그러게. 나도 우리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마지막 옷이라도 좋은 거 해드린다고 350만 원짜리로 했었잖아. 그것도 싸구려 중국산이었던 것 같아. 그런 상황에 속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 그리고 수의 해 놓으면 오래 사신다잖아. 미리 해놓는다고 나쁠 거 없지 뭐. 다 좋은데 오랜만에 동대문 시장 왔으니 맛난 것 먹고 구경도 하자."

생소한 수의 단어... 자식들끼리 왔으면 어쩔 뻔했나

수의 장만하러 광장시장에 간 날. 운 좋게(?) 개그맨 정준하를 보았다
 수의 장만하러 광장시장에 간 날. 운 좋게(?) 개그맨 정준하를 보았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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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을 바라보는 엄마와 세 딸은 그날 작은 소풍을 간 기분이었다. 유명하다는 마약김밥도 먹고 순희네 빈대떡도 먹고 수제비에 비빔국수까지 싼 값에 거하게 배를 채우고 만 원짜리 바지도 몇 개 사고 싸구려 귀걸이도 몇 개 사는 등 신나게 쇼핑도 했다.

"어머, 정준하네. 엄마 정준하예요. 저기 뭐 방송 찍고 있나 봐. 죽 먹고 있네. 우리도 죽 먹을까?"
"그러게. 정말 TV에 나오는 사람이네. TV에서는 뚱뚱하게 보이더니 안 그렇네. 잘 생겼다야. 여자처럼 화장도 했네. 아이고, 시장 와서 저런 사람을 다보네."

먹고 마시고 쇼핑하고 연예인까지 구경하며 시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본 후 우리는 마침내 수의 가게에 들어섰다. 이미 엄마는 몇 번이나 들른 가게였지만 가게 주인은 워낙 많은 손님들이 드나드니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이고, 할머니 딸들하고 오셨네. 복도 많으셔라. 수의 장만하시게요. 매장 하실 건가요? 화장 하실 건가요? 여기 국산 강포는 한 필에 50만 원짜리도 있고요, 30만 원짜리도 있고요... 가격은 싼 거부터 비싼 거까지 다 있어요. 중국산은 저렴하고요. 국산 좋은 베를 쓰면 350만 원부터 550만 원까지 다 있어요. 어떤 걸로 보여드릴까요? 보통 매장하시면 좋은 거 쓰시고 화장하시려면 중간급으로 하시면 돼요. 어떻게 좋은 걸로 보여드릴까요?"

수의를 파는 상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국산 삼베부터 저렴한 중국산 삼베까지 다양한 상품이 전시되어 있다.
 수의를 파는 상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국산 삼베부터 저렴한 중국산 삼베까지 다양한 상품이 전시되어 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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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가게 사장님은 이때다 싶었는지 숨도 안 쉬고 수의를 설명하는데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어제 뉴스에 보니 국산도 다 속인다는데 중국산으로 보여줘 봐요. 뭐 수의하는데 몇 백씩 들여. 그러려면 뭐 하러 미리 장만을 하러 와. 중간 가격으로 한 번 내놔 봐요. 내가 며칠 전 사촌이 죽어서 염하는데 들어갔다 왔는데 수의 가짓수가 빠집디다. 아무리 봐도 속바지도 없고 속곳도 없더라고요. 자식들이 알아서 하는데 뭐랄 수도 없고 애들은 돈 다 주고 했을 텐데 속곳이 빠진지도 모르고… 암튼 하나도 빠짐이 없어야 해요."

"아 네, 할머니. 당연하죠. 빠지면 예가 아니죠. 남자는 스물한 가지 여자는 스무 가지가 돼야지요. 여기 보세요. 제가 다 세어서 보여드릴 게요. 할머니가 확인하세요. 저고리, 속적삼, 속바지, 두루마기, 도포, 도포띠… 장메, 악수, 가두, 행전, 조발량… 멧베까지… 맞죠? 하나도 빠진 게 없죠? 이렇게 확인해도 빠진 게 있을 때가 있어요. 할머니처럼 꼼꼼하게 확인하시는 게 맞아요."

세상에나! 수의가게 사장님과 엄마의 대화를 들으니 '자식들끼리 왔더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이 말하는 수의에 대한 용어가 무척 생소해서 도무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에 들어가면 타서 없어질 것에 뭐 많은 돈을 들이냐"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수의를 입는단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의 상징이 들어간 수의. 금박이 들어간 수의는 웬만한 사람 수의보다 비싸다고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수의를 입는단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의 상징이 들어간 수의. 금박이 들어간 수의는 웬만한 사람 수의보다 비싸다고 한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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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사장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른 가게에서 이것저것을 둘러보던 동생들이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나에게 황급한 손짓을 한다.

"언니, 이리와 봐. 이것 좀 봐. 너무 웃긴다. 이거. 이런 게 다 있네."

동생이 가리킨 손끝에는 강아지 인형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언니, 이게 강아지 수의래. 강아지 인형에 입혀 놓은 거야. 요즘 반려견 장례식이니 납골당이니 그런 게 있다더니 수의까지 있네. 비싼 건 200만 원까지 간데. 웬만한 사람 수의보다 비싼 거야.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쪽에서도 많이 사간다네."

한바탕 유쾌하게 웃고 다시 돌아오니 엄마는 이미 거래를 끝내고 계셨다.

"이걸로 합시다. 수의는 두 번 다시 풀어 보는 게 아니라니까 한 번에 잘 묶어 주세요. 거기에 좀약도 넣어주고."

엄마는 이미 시장조사를 끝내셔서 그런지 결정이 빨랐다. 하지만 딸들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기왕에 장만해 드리는 거 최상품은 아니라도 중고가 정도로는 해 드리고 싶었다. 중고가라 해도 장례식장에서 급하게 장만하는 수의 가격에 비하면 저렴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완강하게 당신이 고른 중가제품을 고집하셨다. 화장을 하실 생각이기 때문에 더 좋은 수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합리적인 주장이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아쉽기만 했다.

수의 장만도 식후경. 광장시장의 명물 녹두빈대떡을 먹지 않을 수 없다.
 수의 장만도 식후경. 광장시장의 명물 녹두빈대떡을 먹지 않을 수 없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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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식들에게 부담주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불에 들어가면 타서 없어질 것에 뭐 많은 돈을 들이냐. 그래도 자식들이 두말 않고 장만해 준다며 이렇게 같이 와주니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이제 됐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말고 엄마 뜻에 따라줬으면 좋겠어. 알았지."

하긴 우리가 여기서 고집을 부린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처럼 엄마와 세 딸이 손잡고 다니며 기분 좋게 시장도 구경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실컷 떨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하지 않나 싶다.

태어날 자식이 입을 첫 옷인 배냇저고리를 지으시느라 촉 낮은 백열등 아래서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시던 엄마의 젊은 시절 모습이 환상처럼 스쳐간다. 그렇게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첫 옷을 입고 자란 자식이 엄마의 마지막 옷을 준비하는 날. 가을 하늘은 유난히 맑고 네 여자들의 웃음소리는 유난히 높았다.

자식들은 어떤 것이 좋은 수의인지 알 수 없다. 당연히 구성 중에 뭐가 빠졌는지도 알 수 없다.
 자식들은 어떤 것이 좋은 수의인지 알 수 없다. 당연히 구성 중에 뭐가 빠졌는지도 알 수 없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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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동대문시장, #수의 , #윤달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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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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