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현장 모습.
 4월 16일 세월호 참사 현장 모습.
ⓒ 해양경찰청 제공

관련사진보기


세월호 참사 168일째인 9월 30일, 살인죄로 기소된 선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죄송하다, 죽을죄를 졌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승객들을 죽게 할 의도는 없었고, 당시 너무 당황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박아무개(53) 기관장이었다. 이날 열린 19차 공판(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에서 재판부는 그의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박 기관장은 이준석(69) 선장, 강아무개(42) 1등 항해사, 김아무개(46) 2등 항해사와 세월호가 침몰하고, 승객들이 사망할 것임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부작위 살인죄' 혐의를 받고 있다.

'살인'이라는 민감한 죄명에 상관없이 박 기관장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참사 당일 조타실에서 사고가 일어나던 순간을 목격했고, 이후 3층 기관부 선원 객실 쪽으로 이동했다. 배가 기울어졌지만 선원들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는데도 승객들을 위해 그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그러나 박 기관장은 자신도 움직이기 어려워서 5층 조타실에서 3층으로 내려갈 때 아기처럼 기어갔다고 했다. 또 단지 탈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발전기를 보호하라'는 선장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이동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관부 선원들과 함께 선실 복도에서 대기하다가 좌현 갑판으로 나온 뒤 해경 고무보트에 올라탔다.

이날 재판부는 박 기관장에 앞서 김아무개 조기수의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기에 시간 관계상 검찰 쪽 신문만 이뤄졌다. 변호인단은 10월 1일 열리는 20차 공판에서 그를 신문할 예정이다.

다음은 9월 30일 그의 법정 증언을 정리한 내용이다.

[4월 16일 오전 8시 반~9시 조타실] "변침하자마자 '안 돼, 안 돼' 하더라"

"4월 16일 오전 4시까지 침실에서 대기하면서 비상근무를 했고, 아침 8시 반쯤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이준석 선장인지 양대홍(45·사망) 사무장인지는 모르겠는데 '커피나 한 잔 하자'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선장 선실로 갔다. 이준석 선장은 벽에 기댄 채 휴대폰을 들고 있었는데 팬티만 입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조타실로 가서 박아무개(25) 3등 항해사에게 '선장님에게 문자 보내고 그런 것 가르쳐주지 말라'고 한 뒤 게이지(각종 수치)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박 항해사가 140도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그런데 불과 10초도 안 지나서 '거기선 안 돼, 안 돼' 했다. 저도 따라서 '뭐가 안 돼냐,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조아무개(55) 조타수가 당황한 목소리로 '아 조타기가 안 돼요'라더라. 고장은 아니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안 돌아간다는 취지였다. 곧 '반대로, 반대로'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기울다가 2~3분쯤 멈췄다. 박 항해사는 당황해서 계속 울고만 있었다. 배가 기운 다음에는 조타실 왼쪽에 완전히 처박혀 있다가 나중에 엔진텔레그라프(엔진 조정 장치) 쪽으로 다시 걸어 올라왔고."

"제가 엔진텔레그라프 레버를 잡아당겨서 엔진을 정지시켰는데, 선장한테 '빨리 정지해'란 이야기를 듣고 한 걸로 기억한다. 그 뒤 제 판단으로 기관실에 전화를 걸어 퇴실을 지시했다. 침몰을 예상해서는 아니었다.

당시 강아무개 1등 항해사가 해경에게 구조 요청하는 걸 봤다. 저는 전반적인 부분은 갑판파트 식구들이 (판단하는 게) 빠르고, 브릿지(조타실)에서 엔진을 쓸 수 있으니까 기관실에선 일단 벗어나자고 결정했다. 엔진 재가동은 기관실에서 에어를 보충하지 않고, 조타실에서도 할 수 있다. 기관부원들이 잘 몰라서 (검찰이나 법원에서) 그렇게 진술한 것이다."

"주발전기가 오래 못가리란 점은 감지했다. 펌프를 돌렸을 때 물이 빨려오지 않는 걸 보고 냉각수가 안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우엔 발전기가 오래 못 가겠다는 생각을 갖고는 있었는데, 시간이 그렇게 촉박한지, 엔진이 그렇게 빨리 멈출지는 몰랐다."

"세월호가 다시 서지 못할까봐 두려웠지만... 침몰할 줄 몰랐다"

"배가 다시 서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은 있었지만 이런 경험을 한 적도 없어서 어찌된 일인가만 했다. 그렇게 급속하게 침몰할 줄 몰랐다."

"그때 조타실에선 뭘 잡거나 해야 했다. 자기 몸 하나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배가 기운 초기에는 방송설비 쪽으로 접근할 수는 있었을 텐데, 엄청 기운 뒤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제가 있는 위치는 조타실 맨 뒤편이라 누가 손을 안 잡아주면 미끄러지니까 방송설비까지 가기 힘들었다."

"선장의 비상배치 명령은 못 들었다. 사고 발생 경위를 파악하는 일도 없었다. 당시 조타실에 있던 다른 선원들은 한쪽에 무리지어 있어서 누가 어떻게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승객 선실로 가려는 사람도 없었다."

"선장이 당시에 '기관장, 지금 빨리 발전기 전원을 보호해'라고 했기에 직접 움직였다. 그 부분은 잘못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안 가고) 기관부원들에게 지시할 경황이 없었다. 당시에는 승객 구조도 중요하지만, 발전기를 돌리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움직였다."

"(오전) 9시 5분쯤 조타실에서 나간 걸로 안다. 직선코스로는 배가 기울어도 움직일 수 있었다. 아기 기어다니듯해서 4층으로 내려왔는데, 무의식 중에 서니까 팍 밀리면서 좌현에 있는 냉동실 쪽으로 떨어졌다. (필리핀인 부부는 5층 선실 복도에서 승무원 고 정현선씨가 쓰러져있다고 진술했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관련 기사 : "조타실은 패닉상태... 선장은 떨고 있었다"

[4월 16일 9시 5분~9시 37분 3층 복도] "당황해서 정신이 없었다"

전라남도 진도군 인근 해역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4월 16일, 해양경찰이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인근 해역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4월 16일, 해양경찰이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관련사진보기


"3층에선 선내 대기 방송을 못 들었고, 브릿지에서 들은 적은 있다. 선장에게 발전기 있는 쪽으로 못 갔다, 어떤 조치를 해야 하나 등을 얘기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난 사고라 당황했던 것 같다. 승객 구호 지시가 있을까봐 일부러 연락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또 당시 정신없었는데 같이 있는 직원들이 '구명조끼를 가져 오세요'라고 했다. 방문은 다 열려 있었고. 그래서 무의식중에 구명조끼를 꺼내 입었다."

"(승객들을 구할 뜻이 없었던 것 같다는 검사 지적에) '사람들 숫자가 만만찮은데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누구 하나 답변을 못하더라. 어떤 해결 방안도 못 찾고 당황해서 빨리 나갈 방법만 찾고 있었다. 저희들은 꼼짝없이 갇힌 상태였다."

"선내 전화로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담배와 라이터를 갖곤 있었지만 피운 사실이 없다. 제가 21살부터 담배를 폈는데, 금연장소에선 일절 펴 본 적이 없다. 습관이다. 맥주는 마셨다. 김아무개(60·사망) 조리수가 떨어졌을 때였다. 손아무개(57) 1등 기관사가 당황하면서 (가까이) 왔는데, 이아무개(25) 3등 기관사가 자기 방에 맥주가 있다고 했고, 손 기관사가 나중에 벌벌 떨면서 '이거 드세요'라고 권했다. 아무 정신없어서 한두 모금 마셨다. 겁이 나서. 제가 술을 마신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죽을죄다. 하지만 탈출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맥주를 마신 것은 절대 아니다."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지만, 맨 위층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건지 어떤 조치를 취하는 건지 몰랐다. 김아무개 조리수와 이아무개(56·사망) 조리원이 저희 쪽으로 떨어진 시기와 얼마만큼 차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희가 밖으로 나가기 불과 3~5분 전에 이 조리원이 떨어졌다."

"김 조리수는 전혀 못 봤다. 박아무개(59) 조기수 앞에 있었던 건 기억한다. 제가 호흡이 될 수 있게끔 하라고 했더니 박 조기수가 '머리가 터져서 즉사했다, 아무 미동도 없어요'라고 말하더라. (박 조기수 진술과 다르다는 얘기에) 그쪽에서 '즉사했어요'라고 했다. 사망했는지 직접 확인하진 못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휴대폰 사용할 생각도 못했다. 죽을죄를 지었다."

"'좌현 출입문 쪽을 보면서 물이 차면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진술은 제가 말한 내용과 조금 차이가 있다. 당시에 퇴선하려는 의지를 갖고 계속 복도에 있었던 건 아니다. 저희들은 조리부원 두 명이 떨어지니까 시간이 지체되고, 정신도 몽롱해졌다. 제 머릿속에는 '로프 어디 없나, 밧줄 어디 없나'는 생각밖에 없었다. 승객들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쪽으로 갈 수가 없었다. 시도를 못했다."

"조리부원들 떨어지니 숨도 못 쉬겠더라... 상황 파악 못해"

"조리부원들을 못 데리고 나온 건… 상황 파악할 시간이…여건이 안 됐다. 사람이 처박히고, 또 한 사람 떨이지고 하니까 숨을 못 쉬겠더라. 나중에는 '주위에 누가 있다'도 파악 못했다. 해경이 3~5분만 늦게 왔더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구하기 어려워서 안 데리고 나온 건지는 모르겠다. 정신이 없어서 해경한테 두 사람이 복도에 있다는 말도 못했다. 하지만 선원들에게 그 사실을 함구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정신이 없었다. 기관부원들이 다 내려왔는지 확인도 못했다."

☞ 관련 기사 : 피흘리는 동료 외면한 선원들... "무척 반성한다"

"밖으로 나갈 생각도 못했는데, 손 기관사가 먼저 나가자고 했고 누가 저한테 '손을 잡고 나가면 된다'고 했다. 제일 먼저 나간 것은 저였다."

"(승객들이 선내에 있으면 탈출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지 않았냐고 묻자) 누구든 한 사람이 거기(자신들이 대기한 복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어서… 너무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이 다 나가버린 건가, 우리 좋다고 나가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너무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었다. '나부터 살고 보자' 어떻게 인간이 그런 생각을… 조리부원들 사고가 나니까 정신이 없었다."

"(사고 당시 단원고 학생들이 침착하게 대기하고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검사가 다시 한 번 '어떻게 단원고 학생들이 있었냐? 침착하게 기다렸죠?라고 말하자) 가슴이 찢어집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갑판으로 나가자 2시 방향 쪽에 멀리 경비정이 있었고 고무보트가 오고 있는 걸 알아서 간신히 서 있었다. 만약 해경이 2~3분 늦게 왔다면,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승객들 상황 등을 확인했을 텐데…, (구조될 때는 사고 발생시간부터 50분 후였다는 지적에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사람이 죽고 그런 걸 처음 봤는데…."


태그:#세월호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