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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안 것은 대학 때였다. 초등 6년과 여중, 여고 6년을 다니는 동안, 결석은 천재지변이나 일어나야 가능한 것인 줄 알고 살았다. 당연히 개근상은 꼭 타야 하는 상으로 알았고. 학교가 정해놓은 규율을 어긴 적은 거의 없었다.

도쿄에서 만난 풍경-1
 도쿄에서 만난 풍경-1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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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던 나... 여행에서 발견했다

아주 평범한 학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당연한 순서대로 대학에 들어갔고, 여전히 착실한 학생으로 새 학기를 맞았다. 그런데, 점점 동기들이 수업을 빼먹기 시작했다.

지각과 결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 '대리 출석'까지 하는 친구도 있었다. 처음에야 충격이었지만, 그렇게 하나씩 금기(?)를 깨는 데 나도 동참하면서, 내가 사실은 남들이 정해놓은 틀에 갇혀 사는 것을 싫어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진짜 내 모습은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었던 거다.

어느 날부터는 비가 오면 학교를 가지 않게 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 오는 날 버스를 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젖은 옷과 우산들이 나를 마구마구 공격하고, 때때로 기분 나쁜 냄새들이 코를 마비시켰다. 그래서 결심했다.

"비 오는 날은 학교에 가지 말자!"

그 대신 아늑한 내 방에 누워 빗소리를 듣는 것으로 비 오는 날을 즐겼다. 노란색 커튼을 통과한 노란 빛들이 방 안을 노랗게 만들었고, 꽃무늬 벽지들이 적당히 로맨틱한 무드를 조성했다. 빗소리와 어우러진 잔잔한 음악들... 조성모, 이승환의 발라드를 들으며 그렇게 나는 나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불안했다. '이래도 되나? 동기들은 지금쯤 열심히 필기하고 있을 텐데, 나중에 안 보여주면 어쩌나...' 새로운(조금은 비장한) 나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면서도 소심한 물음들이 내 마음을 세 근 반 두 근 반 하게 만들었다. 선은 처음 넘기가 힘든 법! 한번 넘고 나면 두 번째 넘기는 더 쉽고, 세 번째는 말해서 무엇하랴...내 마음의 선을 다시 긋는 일에 점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도쿄에서 만난 풍경-2
 도쿄에서 만난 풍경-2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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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 속에서 찾은 인생의 맛

내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여행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내가 태어난 부산 또는 내가 일하는 서울에 여러 이유로 머물러 있으면서도 항상 다른 땅, 다른 문화권, 다른 사람들과의 삶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30대가 되도록 온전히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자각도 태어난 지 30년 후에야 왔다.

이윽고 혼자 여행을 해야겠다는 큰(?) 결심을 하게 됐고, 그 장소는 도쿄였다. 5년 전 여름, 3박 4일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수 있는 그 시간 동안 도쿄에서 최대한 현지인처럼 보냈다. 3일 내내 롯본기 힐스 북카페에 출근했고, 쇼핑도 하고, 미술관도 갔다. 그리고 호텔 주변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서 눈도장을 찍고, 나 여기 들렀노라 인증샷을 남기고,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신주쿠에 호텔을 정한 나는 여유 넘치는 아침을 맞았다. 신주쿠 역과 불과 5분 거리라는 소개를 보고 정한 호텔이었는데, 역시 일본 호텔답게 공간이 오밀조밀했다. 혼자 쓰기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답답함이 없지 않았다. 때때로 우울하게도 만드는 공간이었다. 그나마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 신주쿠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게 위로가 됐다.

그때 알았다. 나란 사람은 어디에서든 머무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다음 여행부터는 숙소를 정하는 일이 내 여행의 최우선 순위가 됐다. 이렇게 여행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30년 동안 내가 몰랐던 내 모습들...난 나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을까?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브런치를 먹은 나는 신주쿠 골목골목을 후비고 다녔다. 쇼핑 센터가 즐비한 대로변도 좋지만, 난 오히려 주택들이 모여있는 후미진 골목을 좋아한다. 동네 사람들의 삶의 향기가 배여 있는 곳. 난 어릴 적 사진관을 했던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30년도 넘은 팬택스 수동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도쿄에서 만난 풍경-3
 도쿄에서 만난 풍경-3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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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음료 광고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풍경, 한 스님이 적선하는 모습, 허름한 국숫집 안에서 주방장이 혼신의 힘으로 국수 반죽을 때리고 또 때리는 모습.

난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프레임 속 인생들이 결국은 우리 이웃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풍경들을 만나고 나서야 어디든 인생은,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구나 안도했다.

덧붙이는 글 | 이지영: 에세이 <당신이 나를 부족하게 한다>, E-BOOK <파리세레나데>를 출간. 블로그 http;//blog.naver.com/klimt1862 운영,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를 위로하는 한 줄의 글로 정제되길 바라며, 오늘도 새로운 여행지를 꿈꾸고 있다.



태그:#힐링, #여행, #도쿄, #롯본기,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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