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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은 1000세대가 넘게 사는, 지방의 대단지 아파트다. 이곳에 산 지 얼추 20년이 다 돼가지만, 지금껏 큰 하자 없이 나름 만족하며 살아 왔다. 베란다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사시사철 푸른 숲이 있고, 학교도 아이들이 충분히 걸어 다닐 만한 거리다. 유흥가는 아예 없고, 대형 마트는 아니지만 웬만한 물건 정도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상권도 형성돼 있다. 지금도 이만한 환경의 아파트는 주변에 많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과 큰 다툼이 있었다. 직후 홧김에 당장 이사를 가야겠다며 여기저기 공인중개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여태껏 월 관리비는 자동이체로 꼬박꼬박 냈고, 그것이 헛되이 쓰이거나 비리에 연루돼 있을거란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다. 도리어 영수증에 적힌 직원들의 임금이 너무 박하다는 생각에, 한 번은 각 세대에서 십시일반 더 내서라도 현실화 시킬 필요가 있다고 입주자대표회의에 건의한 적도 있다.

관리사무소의 존재 이유, 정말 궁금하다

 입주민의 민원에도 나 몰라라 하는 아파트 관리소.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걸까. 그리고 아파트 관리비는 어디에 쓰이는 걸까(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나름 '모범적인 입주민'이라고 자부해 왔는데, 관리사무소 측의 무책임한 태도로 갈등을 빚고 나니 관리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등을 제외한, 이른바 '순수 관리비'가 월 십만 원 정도인데, 이게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괜한 의심까지 했다. 고지서에는 수십 개 항목의 사용처가 몇 백 원 단위로 적혀 있어, 따져 묻기는커녕 챙겨 읽는 것조차 솔직히 버겁다. 여하튼 이번 일로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존재 이유가 궁금해졌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어느 날 아래층에 사는 이웃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마 전부터 거실 벽을 타고 물이 샌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래층에 내려가 직접 확인해 보니 벽지가 축축하게 일어나 있었다. 만져 보니 흘러 내린 물의 양이 적지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당장 원인을 찾아 보수하기 위해 방수공사 전문업체를 수소문했다.

수압을 체크해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업체는 일 주일간 변기 사용을 제외하고 화장실을 쓰지 말 것을 주문했다. 화장실 바닥의 방수 불량이 의심된다면서, 바닥에 물기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 4~5일 정도 지켜보자고 했다. 그때쯤이면 아래층에서 물이 새는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도 벽지가 축축하다면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는 거였다.

기껏해야 일 주일이었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매일 한두 번씩 하던 샤워는 엄두도 못 내고, 고양이 세수 정도만 하며 버텨야 했다. 때문에 퇴근 후 목욕탕에 들러 샤워를 한 후 귀가하기도 했다. 용변 후 손을 씻다가 물이라도 바닥에 튈 새라, 조심 또 조심하며 생활했다. 아래층 이웃을 생각하면, 위층에 사는 '가해자'로서 그 정도의 고통은 견뎌내야 한다고 여겼다.

온 가족의 '인내'가 무색하게도, 아래층 이웃의 벽지는 마르지 않았다. 되레 물기가 손에 잡힐 만큼 더 축축해졌다. 헛다리 짚은 업체는 새로운 진단을 내놓았다. 비가 벽면을 타고 수평으로 스며든 것이거나, 옥상의 비트를 통해 벽을 타고 수직으로 흘러내린 것, 두 가지 중 하나라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전날 이틀 동안 큰 비가 내렸고, 아래층 이웃은 비온 뒤 벽지가 더욱 눅눅해졌다고 말했다.

진단은 내놓았으되 업체는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외벽에서 족히 4~5미터는 떨어진 화장실 쪽 거실 벽이라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다는 것이 첫 번째요, 원인이 옥상의 비트라면 일단 벽을 터서 확인할 수밖에 없어, 자칫 애먼 공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두 번째 문제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업체가 못 미더워 몇 곳을 더 불렀지만, 진단도 조언도 엇비슷했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위층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도다.

결국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건물의 노후에 따른 누수 문제가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닐 테고, 누수로 인한 다양한 갈등 해결 사례와 관련 업체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또, 주변 지인들로부터 그 아파트를 줄곧 관리해온 업체가 있을 테고,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다.

그런데, 관리사무소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매몰찼다. 저간의 사정을 말하기도 전에 무슨 전화기의 기계음처럼 이렇게 못 박았다.

누수 문제는 입주민끼리 알아서 처리하는 게 원칙?

아파트가 진정한 공동주택이 되려면 관리사무소가 새로 나야 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자료사진).
 아파트가 진정한 공동주택이 되려면 관리사무소가 새로 나야 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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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수 문제는 위아래 층 입주민끼리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게 원칙입니다."

우리 아파트를 관리해온 업체의 연락처라도 알려 달라는 요구에도 "자신들이 업체와 결탁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어 말씀드릴 수 없다"며 일언지하 거절했다. 숫제 귀찮다는 투였다.

외벽이 원인일 수 있다는 업체의 지적을 두고는, "왜 작년 세대별 외벽 방수공사 때 신청하지 않았느냐"며 되레 나무랐다. 그때 집을 장기간 비운 탓에 듣지도 못한 내용이지만, 홧김에 "미래에 샐 걸 대비하지 않은 것도 죄가 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더욱 황당한 건 아파트의 외벽 보수를 개별 신청 받아 처리하려 한 관리사무소의 방침이다. 정작 관리비가 쓰여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 단층의 단독주택과는 달리 위층의 건물 상태가 아래층 이웃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더욱이 노후화된 건물 외벽은 입주민의 관리 부실을 탓할 수도, 또 어떻게 손 써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원인이 어디에 있건 누수 문제는 입주민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라며 나 몰라라 하는 관리사무소 측의 행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파트마다 관리사무소를 두는 이유는 개별 입주민들을 대신해 아파트 시설을 관리하고, 제반 행정, 민원 업무를 대행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시청이나 구청, 주민 센터와 같이 주민들의 편익을 위한 아파트 단위의 행정 기관이다. 국민 대부분이 도시에서 살며, 도시민 대다수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현실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곧, 그 마을의 주민 센터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규정 상' 적혀있는 내용일 뿐, 실제 관리사무소에서 하는 업무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화단과 계단 청소와 가끔씩의 소방 점검, 그리고 이태 전 크게 벌였던 외벽 도색 작업이 기억 속 관리사무소 업무의 전부다. 보일러야 개별난방이니 상관없고, 전기 두꺼비집과 세탁실 배수구에 문제가 생겨 전화를 걸어도, 각 가구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답변뿐, 관리사무소의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

세금처럼 통장에서 꼬박꼬박 빼가는 관리비가 아깝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승강기가 고장이 나 급히 경비실에 알렸는데, 한참이 지나도 수리가 안 되어 직접 관리사무소를 찾았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그제야 부랴부랴 업체에 전화를 걸어 조치를 요구했다. 정말 당혹스러웠던 건, 경비실과 관리사무소 사이의 소통이 제대로 안 돼 지연됐다는 사실보다도, 관리사무소에서 하는 일이 고작 업체에 전화를 거는 게 전부였다는 점이다. 그럴 거면, 승강기 문에 붙어 있는 업체 연락처에 아무나 바로 전화했으면 될 일이었다.

바로 어제 겪은 이 해프닝은 또 어떤가. 집에 낡은 가구가 몇 점 있어 내다 버리려던 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폐가전 제품과 가구 등은 관공서에서 따로 수거해 가는 품목이므로, 관급봉투나 재활용함에 넣어서는 안 된다. 카트에 싣고 나가 경비실에 처리를 부탁하며 비용이 얼마인지 여쭸더니, 대뜸 수거업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 처리하라고 말했다.

기실 입주민이 경비실이나 관리사무소에 처리를 의뢰하는 건, 아파트 단지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폐가전과 폐가구를 한데 모아 일괄 처리하는 게 비용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작은 서랍장 하나 버리려고 개개인이 매번 수거업체 트럭을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도 다짜고짜 손사래를 쳤다. 처리 비용에 대한 입주민들의 불만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설혹 그렇다 해도, 처리 비용에 대한 꼼꼼한 기준을 만들어 그들을 납득시키는 것이 옳다. '민원'이 생길 때마다 입주민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나 몰라라 하면 관리사무소는 대체 무슨 필요인가. 모든 게 입주민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다 보니, 아파트는 건물의 형태만 공동주택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마치 세금처럼 통장에서 꼬박꼬박 빼가는 관리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누수 문제로 아래층에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이웃과 정이 들 만큼 가까워졌다. 5년 넘게 위아래 이웃으로 지냈지만, 이번처럼 많은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누수 문제부터 아이 키우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불과 며칠 동안이지만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피해자'이면서도 되레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착한 이웃'이며, 관리사무소의 무책임한 행태에 함께 분노하는 '동지'이기도 하다.

보수 공사를 시작하기는커녕 누수의 분명한 원인조차 아직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그들은 되레 미안하고 고맙다며 이렇게 말했다.

"덕분에 관리비 고지서를 챙겨보게 됐네요. 지금껏 우리 집과 비교해 다른 아파트와 평수에 따른 관리비의 많고 적음에만 신경 썼을 뿐, 단 한 번도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거든요. 관리비가 허투루 쓰이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눈을 부릅뜰 밖에요."


태그:#아파트 관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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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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