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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은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된 지 꼭 10년째 되는 날이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이에 전국 12개 지역 반성매매운동을 위한 여성인권 단체들의 연대체인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성매매정책과 운동 10년을 다각도로 정리하고 평가해 5~6편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성매매는 전 지구적인 현상으로 산업화와 국제화의 양상을 띠고 있다. 올해 2월 유럽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성매매 시장의 규모는 연간 186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약 4000만∼4200만명이 성매매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 중 75%가 13∼25세 사이의 사람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 지역 국가들에 성매매 '수요'에 대한 원천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노르딕 모델(Nordic Model)을 채택하는 국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노르딕 모델이 기존의 정책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성매매와 인신매매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하여, 지난 2월 유럽의회에서는 성매매 축소를 위해 성매매 여성이 아닌 성구매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성매매는 그것이 강요되었든 자발적이든 관계없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유럽의회 소속 국가들에게 성매매 수요 축소를 위한 전략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노르딕 모델의 개념과 특성

성매매여성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피켓
 성매매여성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피켓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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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딕 모델(the Nordic Model)은 스웨덴을 중심으로 노르딕 국가 중 일부가 채택하고 있는 성매매 관련 법, 제도, 정책을 지칭하는 말이다. 1999년 세계에서 최초로 성 구매자만 처벌하는 법과 관련 제도를 도입한 스웨덴의 정책 모델이 인근 노르딕 국가로 확대되면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애초 스웨덴 모델(the Swedish Model)은 성매매를 젠더 불평등의 원인이자 결과로 보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의 한 형태로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스웨덴 모델은 성매매시스템이 수요에 의해 작동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성매매 수요의 차단에 우선적인 관심을 둔다.

스웨덴 모델은 2000년대 후반부터 유럽 내에서도 인접한 다른 노르딕 국가들에 의해 먼저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노르딕 인접 국가인 동유럽 등지에서 이주해 온 여성들의 성매매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스웨덴 모델을 숙고하게 된 것. 이러한 스웨덴 모델을 2009년 노르웨이, 2010년 아이슬란드에서 채택함으로써 '노르딕 모델'이 형성되었다.

현재, 노르딕 모델을 채택한 국가는 강요나 강압에 의한 성매매가 아니더라도 성매매를 했을 시, '성 구매자에게 최대 1년까지의 구금 혹은 벌금형을 부과'하고, 성매매 여성이 미성년자이거나 강압에 의해 성매매를 했을 시에 성 구매자를 가중처벌한다. 또 성매매 알선, 중재자의 경우 최대 5년형까지 처벌 받을 수 있고, 인신매매범의 경우 최대 10년〜12년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성매매 정책에서의 노르딕 모델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성매매는 분명한 사회적 불평등, 젠더 불평등의 결과로 이해되고, 정책의 목적을 성매매 수요의 억제와 전체 사회의 성평등 증진에 둔다.

둘째, 노르딕 모델은 성 구매자의 처벌을 통한 성매매 수요 억제 뿐만 아니라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인식의 변화를 꾀한다. 다시 말하면, 노르딕 모델은 성 구매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대중들의 사회적 태도와 규범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 노르딕 모델은 성매매 축소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의 경우 실질적으로 성매매 규모가 축소되고, 성 구매에 대한 인식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스웨덴 정부의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운 법 시행 이후 거리 성매매 종사자가 약 절반 가량 감소하였고, 성매매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성 구매 금지법 시행 전후 성 구매 실태 변화에서는 법 시행 전 13.6%, 법 시행 이후 7.8% 남성이 성 구매를 한 것으로 나타나 결과적으로 성 구매 감소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최근 유럽 주요 국가의 성매매 정책 변동

최근 몇 년 사이 노르딕 모델을 채택하고 있지 않은 많은 유럽 국가들도 의회나 정부 차원에서 정책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성매매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각 나라별 현황을 잠시 보자.

① 영국 : 2008년 영국 의회에서는 '성매매와 글로벌 성적 거래에 관한 범정당 모임'이 결성되었는데, 이 모임의 목적은 정부가 성적 거래의 수요 감소에 초점을 두는 정책적 개입을 하도록 촉구하고 제안하는데 있다.

2009년엔 성매매와 관련 "강요된 것으로 보이는" 성판매자에게 성적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들을 범법화 하기로 '치안범죄법'을 개정하였다.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는 성 구매 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법안 제안서가 2012년 9월 제출되어 현재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② 아일랜드 : 아일랜드는 의회를 중심으로 스웨덴 모델의 채택을 정부에 권고하는 위원회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3년 6월 아일랜드 의회의 '사법·국방·평등위원회(the Committee on Justice, Defence, Equality)'는 성매매와 관련한 법과 정책의 개선을 요청하는 일련의 보고서들을 발간하였는데, 여기서는 스웨덴 모델을 지지하면서 정부에게 채택을 권고하였다. 

③ 네덜란드 : 유럽에서 성매매를 합법화한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인 네덜란드에서는 최근 성매매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의 성매매 규제에 앞장서고 있는 곳은 암스테르담과 같은 대도시 지역의 자치정부이다.

2006년과 2008년 헤이그와 암스테르담 시는 성매매 업소 밀집지역을 폐쇄시켰고, 최근 암스테르담 시는 성매매 허용 최소 연령을 18세에서 21세로 상향하는 규제를 통과시켰다. 성매매 허용 최소연령의 상향은 현재 네덜란드 의회에서도 관련 법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④ 프랑스 : 2011년 4월 프랑스 의회 위원회 보고서는 스웨덴 모델 채택을 권고하였고, 사회부 장관인 로슬린 바슐러(Roselyne Bachelot)도 그 제안을 지지하였다. 2013년 10월과 11월 정부의 입법가들은 성구매자 처벌을 제안하는 논의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변화들은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당 정부가 출범하면서 보다 강력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이전의 사르코지 정부가 주로 성매매 종사자의 통제에 초점을 두었다면, 현재의 정부는 성매매 수요의 통제와 성매매 종사자의 탈 성매매에 초점을 둔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2년 6월에 여성부(Ministry of Women's Rights) 장관으로 임명된 나자 발루-벨카셈(Najat Vallaud-Belkacem)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매매 관련법을 강력하게 추진해왔다. 2013년 12월 새로운 법안이 하원에서 268대 138로 가결되었고 상원에서의 통과 절차를 앞두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 및 정책 방향

해마다 9월이면 '민들레 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여성단체들과 활동가들이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을 찾았다.
 해마다 9월이면 '민들레 순례단'이라는 이름으로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여성단체들과 활동가들이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을 찾았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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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 지역의 상황은 한국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성 산업의 활성화, 성매매 시장의 거대화를 특성으로 한다는 점에서 성매매는 일상적인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다시 성매매 수요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따라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향후 한국의 성매매 정책 방향은 성매매를 방지하는 정책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강력한 성 구매 제재 정책과 아울러 성 구매 대상자(성매매 여성)를 비범죄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사실상 성매매를 하는 대다수의 여성이 성 불평등 사회 구조의 피해자라는 젠더 관점이 보다 강력하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성매매 및 인신매매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인신매매 피해 지원에 대한 법적·제도적 기반이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UN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 협약을 보충하는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 비준동의안(2014년 7월 10일)'이 상정되어 있고, '인신매매 등에 의한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2013년 5월 14일)'이 발의되어 있다. 관련 법안의 제정과 함께 인신매매에 대응하는 국가계획을 수립해, 인신매매 방지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정책이 체계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셋째, 탈 성매매 정책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유럽 등 여러 국가에서는 성매매를 성폭력의 한 형태로 본다. 성매매를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탈 성매매를 유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적극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정책연구실장입니다.



태그:#성매매, #해외 성매매, #노르딕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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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전국 12개 지역 반성매매운동을 위한 여성인권단체들의 연대체입니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착취에 반대하고 성매매여성의 비범죄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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