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개봉한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는 한국 사회에 작지만 의미 있는 파문을 일으켰다. 재일동포 민족학교인 '훗카이도조선초중고급학교'의 일상을 통해 '조선학교'를 지키기 위한 재일동포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따뜻한 시각으로 잔잔하게 기록했다. 이 영화는 공동체상영을 포함해 8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워낭 소리>의 등장 이전까지 <우리 학교>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기록영화였다.

<우리 학교>는 조선학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김명준 감독과 배우 권해효씨가 주축이 된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 '몽당연필'은 2011년부터 매달 1회씩 공연을 이어가며 벌써 4년째 조선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금단의 영역이었던 조선학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9월 18일 개봉한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60만 번의 트라이>는 <우리 학교>와 마찬가지로 조선학교를 다룬 기록영화이다. 그래서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마치 <우리 학교>의 후속편처럼 느껴지는 작품이다. <60만 번의 트라이>는 지난 5월 전주영화제의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돼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무비꼴라쥬' 상을 수상했다.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60만 번의 트라이>는 9월18일 개봉했다.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60만 번의 트라이>는 9월18일 개봉했다. ⓒ 인디스토리


럭비로 세상을 바꾼다

2010년 오사카 조고(조선고급학교) 럭비부는 일본 최고 권위의 고교럭비대회인 '하나조노' 4강에 진출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한국에서 럭비는 비인기종목이지만 일본에서 하나조노는 전국 방송으로 중계될 만큼 인기가 여전하다.

일본의 고교 럭비부는 1천여 개가 넘는다. 하지만 오사카 조고의 학생 수는 단 300여 명에 불과하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여학생이다. 때문에 오사카 조고의 하나조노 4강 진출은 한마디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사카 조고의 열악한 환경은 그들의 승리가 왜 기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잔디는커녕 배수시설조차 변변히 없는 오사카 조고의 운동장은 비가 오면 갯벌처럼 진흙범벅으로 변한다. 샤워장도 없어 한 겨울에도 선수들은 식수대에서 찬물로 먼지를 씻어낸다. 그나마 갯벌운동장마저도 시 당국에 빼앗길 뻔했다. 2007년 히가시오사카 시는 오사카 조교의 운동장이 시의 소유라며 반환소송을 걸었다. 동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지원으로 천신만고 끝에 운동장을 지켜 냈지만 불안한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교육환경 속에서도 오사카 조고의 아이들은 조금도 기죽지 않는다. 여느 고등학생들과 다름없이 밝고 명랑하다. 오히려 더 순수하고 티 없이 맑다. 하지만 운동장에 서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오직 승리를 위해 마치 '성난 황소'처럼 돌진한다. '전국 제패'는 그들의 소원이자 '60만 동포의 소원'이기 때문이다.

동포를 위하여,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60만 번의 트라이>이 영어제목은 <All for One, One for All>, 즉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이다. 럭비부 아이들은 고된 훈련을 묵묵히 여겨낸다. 그들은 일본의 명문 고등학교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전국 제패'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한다. 그리고 11월, 오사카 조고 럭비부는 하나조노 4강 무대에 다시 한 번 오른다.

<60만 번의 트라이>는, 기록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뜨겁다.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우리말조차 서툰 아이들이 마치 만주벌판에서 말을 달리던 독립투사들처럼 오직 동포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온몸을 내던지며 거침없이 전진하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그렇다고 <60만 번의 트라이>가 민족주의이나 애국주의에 전적으로 호소하는 영화는 아니다. 민족적 정서가 강하게 흐르지만 스포츠영화로도 매력이 있다. 때문에 일본매체들도 "스포츠 다큐멘터리로서 균형 잡힌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 3월 일본에서 개봉해 10여 개 안팎의 적은 상영관 수에도 불구하고 이미 1만 명이 훨쩍 넘는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상영관을 확대하고 있다. 관람 후 일본 관객들은 "내가 조선학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걸 깨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60만 번의 트라이>에는 '조선인'(혹은 한국인, 또는 북한인)만이 느낄 수 있는 뜨거운 그 무엇이 흐른다. 일본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배제하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재일동포들과 조선학교 학생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사카 조고 럭비부는 '60만 동포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다.

오사카 조고 럭비부는 '60만 동포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다. ⓒ 인디스토리


오영길 감독은 3학년 선수들이 수학여행(조선학교 학생들은 수학여행 대신 북한으로 '고국방문'을 간다)을 떠난 사이 저학년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다. 그는 특강에서 학생들에게 "스포츠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가르친다. 럭비를 통해 재일동포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사회의 편견과 왜곡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이 럭비부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조선인'들에게 럭비는 스포츠 이상의 것이다. 그들의 '태클'은 사회적 편견을 향한 격렬한 저항의 몸짓이고, 그들의 '트라이'는 차별의 장벽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비상이다. 그래서 그들의 승리는 '60만 동포의 소원'이며 단 한 번의 트라이도 60만 번의 트라이가 된다.

다시 하나조노 4강에 오른 오사카 조고를 응원하기 위해 멀리 도쿄에서 동포응원단들이 달려온다. 경기 중 도착한 응원단은 경기장 담벼락에 "60만 동포의 소원"이라는 현수막을 내건다. 그때 선수들은 전율이 일었다고 말한다. 그 전율은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60만 번의 트라이>는 박사유 감독의 데뷔작이다. 모든 데뷔작이 그렇듯이 <60만 번의 트라이>도 거칠고 투박하다. 화면은 오사카 조고의 갯벌운동장처럼 거칠고 구성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튀지 모른다. 게다가 두 감독은 기록영화의 불문율을 거침없이 무시한다. 등장인물들과 거리두기는 기록영화의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대부분의 기록영화 작가들이 피사체와의 거리와 객관성이 정비례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박사유 감독은 등장인물들과 경계를 거리낌 없이 넘나들며 스스로 팀의 일원이 된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운동장에서 갑자기 날아온 축구공에서 맞아 쓰러진 채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하는가 하면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4강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권유인 선수가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자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순간 카메라가 허공을 향하며 렌즈가 뿌옇게 흐려지기도 한다. 때론 등장인물의 자전거 뒷자리 앉아서 몸을 밀착하고 그의 시선으로 오사카의 밤거리를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60만 번의 트라이>에서 행위자와 기록자, 피사체와 카메라와의 경계는 사라지고 하나가 된다. 이러한 몰입적인 연출방식은 기록영화에서 금기처럼 여겨지지만 적어도 <60만 번의 트라이>에서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학교'라는 전체와 하나의 경계가 사라진 독특한 역사적 공간을 기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60만 번의 트라이>는 인종차별이 만연된 일본 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일동포에 대한 왜곡인식은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사카 조고는 하나조노 4강 진출로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초청경기에 출전한다. 이 대회를 통해 조고의 아이들은 각 국의 청소년들과 우애를 다진다.

개막식 날, 호주 선수들은 조고 아이들에게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이에 김상호 선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임 코리안"이라고 당당하게 답한다. 그때 한국 선수들이 나타나고, "아니야, 너는 일본인이야. 내가 진짜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울적해진 상호는 박사유 감독에게 "상처받았다"고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 놓는다.

아마도 이 장면에서 대부분의 한국 관객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 동포들을 차별의 굴레 묶어 둔 것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고교 무상화' 지원 못 받게 된 조선학교

오사카 조고의 럭비부는 상대선수들 뿐 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선수들은 훈련 틈틈이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 무상화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도 참여한다. 때론 기자회견에도 나서 지원을 호소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노사이드 정신'(경기 종료 후에는 편을 가르지 않는다는 럭비의 정신)을 배우지만 현실 세계에는 '사이드'가 뚜렷하다.

2010년 4월부터 일본 정부는 일본 내 공립고등학교의 수업료를 무상화하고, 사립고등학교 인가를 받은 외국인 학교에 대해 취학지원금을 보조하는 '고교 무상화' 제도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2010년 4월부터 일본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1인당 연간 12만 엔에서 24만 엔의 취학지원금을 받는다.

하지만 시행 직전 일본인 납치자문제담당상이 "조선학교를 배제할 것"을 제안하면서 조선학교는 지원대상에서 빠졌다. 일본 정부는 납치자문제를 구실로 내걸었지만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과 탄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방 직후 재일동포들은 자비로 책걸상을 마련하고 버리진 공장들에 조선학교를 세웠다. 1950년대에는 전국에 540여 개의 조선학교가 세워졌다. 하지만 일본 당국과 차별과 우익세력의 탄압으로 현재 조선학교는 64곳만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이마저도 없애려고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고교 무상화 배제도 이러한 조선학교 말살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학교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편향적 태도는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정부는 조선학교를 '친북'으로 규정하고 지원은 고사하고 <우리 학교> 이전까지는 그들과 접촉하는 것조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했다(지금도 법리적으로 언제든지 처벌이 가능하다) 반면 북한 정부는 해방 직후부터 조선학교를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2012년 아베 정부는 일본 정부에서 만든 조선학교에 대한 심사기준 자체를 없애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그리고 2013년 2월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학교가 (북한과 가까운) "총련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배제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국민 3만510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물었는데 조선학교를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은 1만5천846명, 반대하는 의견은 1만4천164명으로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영화의 후반부 두 감독은 하시모토 도루 당시 오사카부 지사의 기자회견장을 찾는다. 이 자리에서 박돈사 감독은 하시모토 지사에게 왜 조선학교의 지원을 중단했냐고 묻는다. 이에 하시모토는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에 강경책을 쓰지 않느냐"며 "만일 한국에 북한과 연관된 학교가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도 우리와 똑같이 할 것"이라고 반문한다.

만일 한국에 조선학교와 같은 특별한 교육기관이 있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할까? 과연 지원을 할까? 하시모토의 반문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내놓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은 재일동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silchun615 에 중복 게재됩니다.
60만 번의 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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