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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결국 칼을 빼 들었다. 담뱃세를 2000원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국민건강이다. 담뱃값을 올려서 담배 소비를 줄이고,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말 담뱃값 500원 인상 후 10년 만이다.

그동안 세계적인 금연추세 속에 국내 담뱃값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선진국에 비해 값이 너무 싸다는 의견부터 오히려 소득대비 비싸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정부 역시 부처마다 입장이 사뭇 달랐다. 결국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가 팔을 걷었다. 금연정책 주무 부처와 나라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부처가 나선 것이다.

하지만 뭔가 불편하다. 담뱃값과 흡연율 사이의 관계도 명확치 않다. 반면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금연정책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담뱃값에 새로운 세금까지 붙여가며 손쉽게 세수를 늘리려는 꼼수만 드러나 보인다.

이번 인상안이 확정되면 정부는 2조8000억 원의 돈이 새롭게 들어온다. 문제는 이런 부담이 고소득층보다 서민과 저소득층에 더 집중된다는 것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조차도 정부 안에 갸웃거리는 이유다.

1) 담뱃값 비싸면 흡연율 추락?... 나라마다 상황달라

기준:담뱃값(2012, 더 토바코아틀라스 제4판/말보로 1갑 기준), 흡연율(OECD 2014)
▲ 주요국가별 담뱃값과 성인흡연율 기준:담뱃값(2012, 더 토바코아틀라스 제4판/말보로 1갑 기준), 흡연율(OECD 2014)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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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부는 담뱃값 인상을 통해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우리나라 남성 흡연율(37.6%)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가운데 2위라는 점도 상기시켰다. 이어 지난 2004년 말 담뱃값 500원 인상에 따라 흡연율이 떨어졌다는 사실도 내놨다. 또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미국 등의 해외사례를 들면서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 소비나 흡연율도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통계 수치와 해석도 자기 입맛대로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흡연율만 봐도 그렇다. 실제 올해 OECD가 내놓은 성인 흡연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23.2%다. 여성과 남성 등을 모두 합친 흡연율이다. 정부는 남성만 따로 떼서 37.6%라고 발표했다. 성인 흡연율 순위는 OECD 국가 중 11위에 해당한다. 중간 정도 수준이다. 

또 이들 국가들 사이의 담뱃값과 흡연율 상관관계도 들쭉날쭉하다. 프랑스는 담뱃값이 8.3달러(약 9000원)로 우리나라보다 4배 가까이 비싸다. 하지만 흡연율은 23.3%로 우리와 비슷하다. 10.9달러(약 1만1000원)인 아일랜드는 흡연율이 29%에 이른다. 인도와 러시아의 경우 담뱃값이 각각 2달러와 1.7달러로 비슷하다. 하지만 흡연율은 인도가 10.7%이지만 러시아는 33.8%나 된다. 값은 비슷하지만 흡연율에서 3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4년 담뱃값 인상 전후의 담배 판매량은 어떨까. 정부 발표대로라면 판매량은 크게 줄어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담배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 2004년 말 1065억 개비에 달했던 담배판매량은 2005년 823억 개비로 감소했다가 이후 다시 증가추세를 보였다. 2009년말 판매량이 948억 개비에 달하면서 5년 만에 사실상 원상태로 돌아갔다. 결국 담뱃값과 흡연율 사이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2) '개별소비세' 신설... 지방세 줄고, 국세만 늘고

정부 요구대로 담뱃값이 오르면 정부는 2조80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가로 거둬들일 수 있다. 담뱃값 인상에 따른 소비량 감소보다 가격 인상 폭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현재 담배 1갑(2500원짜리)을 보면 제조원가와 유통 마진이 950원(38%)이다. 나머지 1550원(62%)은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다.

정부의 2000원 인상안을 보면, 담배소비세(641원->1007원), 지방교육세(321원->443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354원->841원), 부가가치세(234원->433원) 등이 크게 오른다. 특히 그동안 있지도 않던 '개별소비세(594원)'를 새롭게 추가했다.

문제는 이런 세금 증대가 열악한 지방재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점이다. 오히려 지방 세수입은 줄고 국세 수입만 크게 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담뱃세 가운데 지방세는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가 해당한다. 정부안대로 담뱃값이 오르면 담배소비세는 매년 1000억 원이 증가하지만 지방교육세는 1200억 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지방세수는 200억 원 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안대로 값이 오르면 담배 소비량이 34%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지방세 상승폭이 (담배 소비량 감소폭보다) 상대적으로 적다보니까, 지방세수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중앙정부 입장에선 2조8000억 원에 달하는 추가 세수를 기대할 수 있다. 건강증진부담금과 부가세 등이 많게는 2배 이상 늘었고, 개별소비세가 새롭게 적용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방 자치단체 입장에선 이번 담뱃세 인상에 박수를 칠 수 없게 됐다.

3) 부자감세 떼우기 위한 전형적인 서민증세

담뱃세 인상에 따른 세금 형평성 논란도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우선 담배와 함께 국민건강을 해칠 수 있는 술과 비교했을 때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이 너무 많다는 주장이다. 주로 담배소비자와 업계 쪽에서 내세우고 있지만 타당한 지적이다.

실제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지난 15년 동안 맥주와 소주에 붙는 세금은 꾸준히 떨어졌거나 동결된 상태다. 맥주에 대한 세금이 2000년 출고가의 115%였던 것이 2005년에 90%, 2007년에 72%까지 떨어졌다. 소주는 2000년 이후 출고가의 72% 세금이 그대로다. 반면 담배의 경우 2001년 한갑당 934원이던 세금이 꾸준히 올라 2007년에 1550원까지 올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술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18조6000억 원으로 담배의 5조6000억 원보다 3배 이상 큰 것으로 조사돼 있다"면서 "하지만 세금은 술(약 4조 원)보다 담배(6조8000억 원)에 훨씬 많이 부과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세금 부담도 고소득층보다 서민층 흡연자가 훨씬 크다. 담뱃세와 부담금 등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고소득층보다 서민이나 저소득층의 흡연율이 훨씬 높다. 이 때문에 서민층의 부담이 늘어나면서 역진세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난 이명박 정부 이후 각종 세금감면 혜택이 대기업과 부유층에 집중된 것을 감안하면 계층 간 반발도 부를 수 있다.

야당을 비롯해 담배소비자단체 등을 중심으로 정부의 담뱃세 인상을 적극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담배소비자협회는 "담뱃값 인상은 국민 건강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정부의 세수 보전을 위한 서민들 주머니 털기"라고 주장했다.


태그:#담뱃값, #담뱃세, #흡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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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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