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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3년 전 폐지를 줍다 넘어진 이후 적절한 치료를 못해 구부정한 허리가 되었다.
 할머니는 3년 전 폐지를 줍다 넘어진 이후 적절한 치료를 못해 구부정한 허리가 되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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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1kg에 7~80원해요. 그 전에는 160원, 재작년에는 140원, 120원... 해마다 가격이 떨어져요."

어둠이 내리는 여수 학동의 거리에서 할머니가 폐지 더미를 정리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폐지는 할머니가 사는 주차장 근처의 공터로 옮겨진다. 할머니의 손수레에 실려 화물차 한 대 분량의 폐지가 모아지면 순천에 있는 고물상에 연락해 폐지를 실어낸다. 

"지난 번에는 한 차 했는데 비에 젖었다고 1000kg를 빼 불었어. 2톤에 16만 원 받았어. 여수보다 순천이 10원 더 줘서 1kg에 80원에 팔았어."

할머니가 폐지 한 차(3t)를 모으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이번에는 20여일 만에 모았다. 그런데 장마철 잦은 비로 인해 폐지가 빗물에 젖었다며 고물상 관계자는 1톤을 공제하고 2톤의 폐지 값만 셈을 치러줬다.

가게를 돌며 모은 폐지는 할머니의 손수레에 실려 공터로 옮겨진다.
 가게를 돌며 모은 폐지는 할머니의 손수레에 실려 공터로 옮겨진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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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지는 차곡차곡 쌓아 밧줄로 묶어두었다 할머니가 손수레에 실어 나른다.
 폐지는 차곡차곡 쌓아 밧줄로 묶어두었다 할머니가 손수레에 실어 나른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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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여수에서 10년째 폐지를 모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아들의 사업 실패로 인해 광주의 집까지 빚쟁이들에게 넘어가 10여 년 전 무일푼으로 여수에 내려왔다.

"우리 아들이 사업하다 옴팡 망해 부렀단 말이요. 어쩌꺼요~ 혼자 방 얻어놓고 살아."

김종이(73·가명)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허리가 유난히 굽었다. 꾸부정한 허리로 손수레를 끄는 할머니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3년 전 폐지를 줍다 넘어져 크게 다친 이후 적절한 치료를 못해 구부정한 허리가 되었다.

"이 일을 하다 미끄러져 3년 전에 갈비뼈가 두 대나 나가 부렀어요."

이렇게 옮기는 도중에 할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다른 사람들이 모아둔 폐지를 훔쳐가기도 한다.
 이렇게 옮기는 도중에 할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다른 사람들이 모아둔 폐지를 훔쳐가기도 한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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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하루 종일 폐지가 있을 만한 시내의 상가를 돌아다니며 폐지를 주워 모은다. 이렇게 모은 폐지는 차곡차곡 쌓아 밧줄로 묶어둔다. 저녁 무렵이 되면 손수레에 옮겨 싣고 집 근처 공터로 향한다.

이렇게 옮기는 도중에 할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차를 가지고 폐지를 줍는 다른 사람들이 이따금씩 할머니의 폐지를 통째로 훔쳐가기도 한다. 할머니는 잃어버린 자신의 폐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여수시청에 신고해도 안 찾아준다며.

"차 갖고 다닌 사람이 훔쳐가기도 해요. 시청에 신고해도 도움을 안 줘요."

"자초지종을 자세히 얘기하면 도움을 줄 겁니다. 시청 민원실에 다시 한 번 가보세요"라고 기자가 말하자, 전혀 도움을 안 준다며 "시퍼 보인께 그란 갑소, 내 생각이 그래"라며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연락처를 묻자 할머니는 당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는 채 손수레를 끌고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연락처를 묻자 할머니는 당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는 채 손수레를 끌고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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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알아보겠다며 연락처를 묻자 "자식들이 알면 안 된다"며 당신의 신분도 밝히지 않는 채 손수레를 끌고 이내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훔쳐간 그분도 삶이 오죽 팍팍했으면 "벼룩의 간을 빼먹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세상 참 씁쓸하다. 어려운 이웃들을 힘들게 하는 건 큰 죄악이다. 할머니가 정부의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아 안정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블로그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 맛'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폐지, #여수시청, #할머니, #맛돌이, #기초생활수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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