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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부터 8월 30일까지 일본 시코쿠 여러 곳을 방문하여 민속과 생활과 관련된 시설이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려고 합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정리하여 관심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시코쿠는 일본 본토 가운데 아래쪽에 섬을 사이에 두고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코쿠의 크기는 동서 230km 쯤, 남북 180 km 정도입니다. 섬은 동서로 길게 자리 잡고 있는데 아령 모습으로 가운데가 홀쭉합니다. 본토와 시코쿠 사이에는 고베 아와지 사이, 오카야마와 다카마츠시 사이, 히로시마와 이마바리 사이 등 세 곳이 다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사진 오른쪽 나무가 나무 나이가 3천 년이 넘습니다. 둘레는 20 미터가 넘고 높이는 60 미터를 넘습니다.
 사진 오른쪽 나무가 나무 나이가 3천 년이 넘습니다. 둘레는 20 미터가 넘고 높이는 60 미터를 넘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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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고치현 나가오카군 오토요초에 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삼나무를 보러갔습니다. 이곳 야사카 신사 경내에 있는 삼나무로 나무 나이가 3천 년을 넘었다고 합니다. 높이는 60미터가 넘지만 태풍 등으로 쓰러질 것을 대비하여 일부 가지를 자르기도 했습니다.

3천년이 넘은 삼나무는 속이 비어서 물이 스며들어 썩을 수 있기 때문에 나무속을 채우고, 물이 스며들어가지 못하도록 줄기 일부 겉을 구리판으로 덮어두었습니다. 나무가 쓰러지거나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일부 가지를 자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잘라낸 가지의 나무 나이를 확인해 보니 50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삼나무 가까이에는 일본에서 유명한 가수 미소라 히바리(1937-1989, 본명: 加藤 和枝)의 노래비가 있었습니다. 검은 돌로 된 노래비에는 이 가수의 젊은 때 사진과 '강물의 흐름처럼'이라는 노래 악보가 돌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가수와 삼나무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마을 사람에게 확인해 보았습니다.

  큰 나무에게 잘라낸 가지의 나이테와 나무 전체 모습니다.
 큰 나무에게 잘라낸 가지의 나이테와 나무 전체 모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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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이라면 가수 이미자를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수 이미자는 오랫동안 가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 가운데 한국 사람을 감동시킨 많은 노래가 있습니다. 아마도 가수 이미자는 한국의 국민 가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이미자와 같이 유명한 일본의 국민 가수가 미소라 히바리입니다. 미소라 히바리는 1989년 52세에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일본 TV에서는 어렵지 않게 미소라 히바리의 생전 콘서트를 방송하기도 하고 쉽게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미소라 히바리는 넓은 음역의 풍부한 성량과 넘치는 예술 기량으로 일본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비가 이곳 일본에서 제일 오랜된 삼나무 옆에 있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에 의하면 미소라 히바리가 9살 무렵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다니다가 이곳 오토요초에서 버스 사고를 당합니다. 부상을 당한 미소라 히바리는 이곳 오토요쵸 가까이에 있는 병원에 한 달 이상 입원 치료를 받습니다.

  이곳 오도요초 야사카 신사에 있는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비입니다.
 이곳 오도요초 야사카 신사에 있는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비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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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치료 중 미소라 히바리가 이곳 오토요초 야사카 신사에서 가장 오래된 삼나무를 구경합니다. 이때 미소라 히바리가 삼나무를 향해서 기원을 했다고 합니다. 이곳 삼나무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인 것처럼 나도 더 열심히 노래해서 일본 최고의 가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이 다짐 덕분인지, 이 삼나무 덕분인지 미소라 히바리는 14세 무렵 일본 최고 가수가 됩니다. 이후 미소라 히바리는 영화, 드라마 등에도 출연하면서 일본 최고 가수로서의 연예 인생이 지속됩니다. 이후 몇 차례 미소라 히바리는 이곳 일본 최고의 삼나무를 방문하여 기원한 적이 있다는 말을 하게 되고 그 말을 들은 지역 사람들이 이곳에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비를 세우게 됩니다.

노래비는 '강물의 흐름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 작사: 秋元康、작곡: 見岳章)의 악보와 가사가 돌에 새겨져 있지만, 이 노래와 다른 노래와 함께 세 노래 스위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스위치 셋 중 어느 것이나 누르면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필자가 나무 둘레와 노래비를 둘러보는 동안 강물의 흐름처럼이 가장 많이 들렸습니다.

     미소라 히바리 노래비에 새겨진 강물의 흐름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 노래 악보입니다.
 미소라 히바리 노래비에 새겨진 강물의 흐름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 노래 악보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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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와버린 좁고 긴 길
뒤돌아보면 흐릿하고 먼 고향길이 보인다.
울퉁불퉁한 길이나 굽어진 길,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그것도 또한 인생길
아, 강물의 흐름처럼 부드럽게 몇 세대가 지나서
아, 강물의 흐름처럼 망설임 없이 하늘은 석양으로 물이 들고

살아가는 것은 여행하는 것, 끝없는 이 길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꿈을 찾아서
비가 와서 젖은 길이라도, 언젠가 다시 맑은 날이 오니까
아, 강물의 흐름처럼 웃음진 얼굴에 이 몸을 맡기고 싶어
아, 강물의 흐름처럼 넘겨주면서 눈 녹는 봄철을 기다리면서
아, 강물의 흐름처럼 부드럽게 이 몸을 맡겨두고 싶어요!
아, 강물의 흐름처럼 언제까지나 푸른 물소리를 들으면서

      오토요초에 있는 야사카 신사 정면 모습과 안에 있는 사당과 에비스 신상입니다.
 오토요초에 있는 야사카 신사 정면 모습과 안에 있는 사당과 에비스 신상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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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일본 최고의 국민 가수로 인정을 받았고, 가수 미소라 히바리는 죽었지만 그 노래는 아직도 일본 사람들 속에 살아있고, 불리고 있습니다. 미소라 히바리는 조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재일교포였습니다. 그녀의 이름 미소라 히바리는 아름다운 하늘이라는 뜻의 미소라와 종달새라는 뜻의 히바리입니다.

미소라 히바리와 관련된 많은 책 가운데 조선인 아버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한 책은 거의 없습니다. 미소라 히바리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크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가정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조선인, 한국인의 피를 이어서 태어났지만 일본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일본인 어머니가 더 중요했는지도 모릅니다. 미소라 히바리가 조선인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일본인도 많지 않습니다. 재일교토 사회에서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일본에 사는 재일 교포의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미소라 히바리 비석과 사진입니다.
 미소라 히바리 비석과 사진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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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누리집> 미소라히바리 공식누리집, http://www.misorahibari.com/, 2014.9.1

강물의 흐름처럼(美空ひばり/川の流れのように) 유튜브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d_Ns_B23LT0, 2014.9.1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그:#오토요초, #미소라 히바리, #삼나무, #야사카 신사, #강물의 흐름처럼(美空ひばり/川の流れのよう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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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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