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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이번 해 들어 잔병치레가 많아졌다. 덕분에 병원에 자주 가고 있다.

병원을 간다는 의미는 의사 선생님의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라는 물음에 환자가 대답을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이 소통에 맞는 '처방'을 해주는 것이 병원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다녀온 병원은 환자와의 소통보다 '증상'에 초점을 맞췄다. 환자인 나는 내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주류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적 개인'

<인간회복의 경제학>(진노 나오히코 지음 / 김욱 옮김 / 북포스 / 2007.05 / 1만 2000원)
 <인간회복의 경제학>(진노 나오히코 지음 / 김욱 옮김 / 북포스 / 2007.05 /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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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문을 닫고 나오면서 내가 만나온 의사는 더 이상 환자의 병을 고쳐주는 따뜻한 '슈바이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의사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돈벌이를 위해 선택한 경제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인간회복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마주하게 됐다.

인간회복이라는 따뜻한 감성에 경제학을 어떻게 덧입힌다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경제인'은 누구보다 이성적이며, 철저하게 수지타산에 맞춰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의 생각은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철저하게 개인의 이기심만을 따른다는 가설에 근거한 것이다. 개인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가정은 주류 경제학 이론의 대표적인 전제다.

하지만 이 가설은 인간의 한쪽 측면만을 강조한 가설이다. 현실의 인간은 경제인도 아니며, 경제인으로 태어나지도 않는다. 또 반드시 경제인이 될 필요도 없다.

인간은 슬픔과 고통을 나누고, 온정과 애정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경제학 이론의 잔재가 인간생활에 침투했다. 모든 인간을 경제인과 비경제인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이에 <인간회복의 경제학> 저자인 진노 나오히코는 경제는 인간을 지향해야 하며,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고, 인간에게 행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제가 인간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서두에 밝히고 있다.

재정사회학에서 바라본 경제인

재정사회학에서 바라본 경제인은 자연을 유용한 방면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가족이나 커뮤니티를 활용한다. 재정사회학의 경제인은 인간 상호 간의 협력을 중요시하는 인간이다. 꿀벌이나 개미들도 서로 협력한다. 그러나 꿀벌과 개미의 활동은 수억 년 동안 변한 것이 없다. 그들은 언제나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구조의 공동체에 만족한다. 인간처럼 새로운 것을 설계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개미와 꿀벌에게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협력은 창조력과 구상력의 협력이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경제인이라 경제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고, 창조하고, 협력하다 보니 그 활동이 경제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를 '지식사회'라고 칭한다.

이처럼 '인간의 경제'를 지향하는 재정사회학은 20세기 후반 들어 르네상스를 맞는다. 당시 시대가 '위기의 시대'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 힘을 받기 시작했다. 국가재정을 정치, 경제, 사회와의 상호제약성으로 분석하려는 경제적 시도에는 인간의 본질이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인간)'라는 철학이 스며들어 있다.

단순히 경제 논리에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의 행동에 초점을 맞췄다. 재정사회학이 경제 논리인 동시에 사회 논리이자 국가 논리인 이유다. 그런 점에서 재정사회학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경제 정의를 풀어나가는 첫 걸음이다.

경제학의 실패 그리고 그 이후의 경제인

구조개혁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인간성을 상실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상실하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의 틀이 잡혀지면서 인간은 더 이상 사회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불신사회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불황은 더욱 장기화된다.

우리 사회는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경제학의 책임이 크다. 우리 시대의 구조개혁 실패는 한마디로 경제학의 실패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경제학의 현실 적용에 실패한 것이다.

경제 시스템의 창조주는 인간이다. 인간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경제 시스템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구로 경제 시스템을 이용할 수도 있다.

어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미래를 신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변한다. 보이지 않는 신의 손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주장이다. 그들은 인간이 경제를 제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경제 시스템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는 미래를 단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미래를 구상할 것이며, 우리의 구상대로 창조할 것이다. 물론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인간은 지혜를 갖고 있다.

신은 인간을 슬기로운 존재로 창조했다. 인간 스스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끔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일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우리의 미래를 보이지 않는 신에게 맡기는 것은 신을 인정하는 믿음이 아니라 신의 은혜를 배반하는 죄악일지 모른다.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라는 편협한 모형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를 지향해야 한다. 창조력과 구상력, 그리고 공감의 능력에 기초하여 '지식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행동기준으로 삼아도, 사회를 보다 인간다운 방향으로 인도해도 경제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인간회복의 경제학>(진노 나오히코 지음 / 김욱 옮김 / 북포스 / 2007.05 / 1만 2000원)



인간 회복의 경제학 - 공감과 연대에 기초한 21세기 인간중심의 새로운 경제

진노 나오히코 지음, 김욱 옮김, 북포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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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인간회복, #경제학, #호모이코노미쿠스, #호모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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